‹ 목록으로 손끝에서 번진 소유욕

5화

그날 이후로 학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문서현이 나에게 고백했다는 소문이 하루도 안 돼 학년 전체에 퍼졌다. "야, 진짜야? 문서현이 이도윤한테 고백했다고?" "강태희 선배는 어떻게 됐대?" "그날 옥상에서 셋이 다 모였다던데." "완전 대박이네. 근데 왜 하필 이도윤이야?" 복도를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리에 앉아 있던 애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가 급하게 다른 곳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 시선들이 무겁게 느껴져서, 되도록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피신하듯 자리를 비웠고, 급식실에서는 되도록 사람이 적은 구석 자리를 찾았다. 강태희는 그날 이후로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었다. 교문 앞에도, 급식실 앞에도 여전히 서 있었지만, 예전처럼 다가와 말을 걸지는 않았다. 복도 끝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가, 내가 시선을 돌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등을 돌리는 식이었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차라리 예전처럼 다가와서 "타." 한마디 던지던 게 익숙했는데, 지금은 그 짧은 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멀리서 서 있는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 한편, 문서현의 무리는 그날 옥상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현아, 진짜 좋아하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교실 뒤편,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문서현이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책상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흔들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친구들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발견한 표정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런데 강태희 선배가 그렇게 화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오히려 잘됐지. 반응이 더 재밌잖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진짜 고백 한 번 더 받아줄까 봐." "진짜로?" "응. 이번엔 확실하게 찍어서." 문서현이 휴대폰을 흔들며 웃었다. 화면을 켜서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잡아 보이며, 무언가 재미있는 장난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눈이 반짝였다. "영상으로 남기면, 강태희 선배가 어떻게 반응할지 진짜 궁금하지 않아?" "위험하지 않을까···." 친구 하나가 미간을 좁히며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강태희 선배 성격 알잖아. 잘못 걸리면 우리까지 골치 아파질 수도 있어." "괜찮아. 몰래 찍을 거니까." 문서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대화가 오가는 사이, 무리 중 한 명이 낮게 물었다. "그런데 도윤이 상처받으면 어떡해." "그게 뭐 대수야." 문서현의 표정에서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그 잠깐의 표정 변화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넘겼다. "어차피 재미로 하는 거잖아." 그 말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나는 그때 전혀 알지 못했다. - 같은 시간, 나는 도서실 구석에서 강태희를 만났다. 책장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먼지처럼 흩날리는 시간이었고, 도서실 특유의 종잇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었다. "선배, 여기서 뭐 해요?" "책 좀 보려고." "선배가 책을 봐요?" "왜, 이상해?" "조금요." 강태희는 짐짓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피식 웃었다. 예전처럼 편안한 웃음이었다. 며칠 만에 처음 보는 그런 얼굴이라, 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옆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은 반쯤도 읽지 않은 듯 첫 페이지 그대로였다. "저기, 며칠 전 옥상 일···." "말 안 해도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문서현이랑 그런 사이 아니에요." 강태희가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그 손끝이 페이지 위에서 잠깐 멈춰 있는 게 보였다. "알아." "그런데 왜 그렇게 화났었어요?" 강태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네가 다른 사람 좋아하는 게 싫어서." 그 말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나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는 게 느껴졌고, 손끝이 미세하게 저려왔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강태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평소의 여유로움 대신, 뭔가 절박한 듯 조급함이 서려 있었다. 책을 덮는 소리가 도서실의 정적을 깨고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 너 좋아해." 짧고 명확한 문장이었다. 주변의 소음이 순간 다 사라진 것 같았다. 책장 넘기는 소리, 누군가의 발소리, 창밖에서 들리던 새소리까지 모두 멀어졌다. "···네?" "두 번 말 안 해." 강태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손끝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귓불이 살짝 붉어진 것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도서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 너머로 지는 해가 붉게 번지고 있었지만, 그 풍경이 눈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옆에 앉은 강태희에게 그 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몇 번이나 숨을 삼켰다가 뱉었는지 모른다. "···저도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태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라고?" "저도, 선배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뱉는 순간, 강태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은 어디로 가고,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는 모습만 남았다. 책상 위에 놓인 손이 괜히 책 모서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말하면 어떡해." "선배가 먼저 말했잖아요." "그건 다르지." "뭐가 달라요." 강태희는 대답 대신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귀가 여전히 붉었다. 그 모습이 평소의 카리스마와는 완전히 달라서,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선배, 지금 얼굴 왜 그래요." "조용히 해." "귀까지 빨개졌어요." "이도윤." 낮게 부르는 그 목소리에도 위협은 없었고, 오히려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감정은 그날, 도서실 구석에서 조용히 확인됐다. 창밖으로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그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용한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문서현에게서 또 다른 문자를 받았다. 〈어제 못 한 얘기가 있어. 오늘 방과 후에 다시 옥상에서 볼까?〉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가 바뀔 리 없는데도,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확인했다. 나는 그 문자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강태희와의 관계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그 조심스러운 감정 위에, 문서현이라는 이름이 다시 얹히는 게 영 불편했다. 이 문자에 답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냥 무시해버릴까. 문서현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하지만 지난번 옥상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무시했을 때 어떤 식으로 일이 커질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그 답장을 보내고 나서,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휴대폰 화면을 끄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태희에게 이 문자에 대해 말해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불안은, 며칠 뒤 현실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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