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미성년자인 줄 몰랐습니다

4화

네일샵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손끝에 젤을 올리고 큐어링 기계에 손을 넣었다 빼는 반복. 라디오에서는 오후 프로그램 진행자가 사연을 읽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매니큐어 병들을 알록달록하게 반짝이게 했다. 나는 그 반짝임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손님의 손톱 위에 글리터를 얹고, 탑코트를 바르고, 다시 큐어링. 기계적인 손놀림 속에서 어제 일이 자꾸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옆자리 원장님이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나를 힐끗 봤다. “소영씨, 오늘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대충 웃어넘겼다. “어제 좀 마셨어요.” 그 말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굳이 꺼낼 이유가 없었다. 원장님은 별로 더 캐묻지 않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손님의 손톱을 하나씩 마무리하면서 속으로 안도했다.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게 제일 두려웠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명한다 해도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휴대폰이 울린 건 오후 세 시쯤이었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잠깐 앉아 있던 나는 진동 소리에 화면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카톡 프로필에 낯익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강 다리 불빛. 그 사진을 보자마자 심장이 한 번 쿵 내려앉았다. 도윤이었다. 문자는 짧았다. 누나, 오늘 시간 되세요. 저 친구들이랑 있는데 잠깐 볼래요.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친구들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왜 친구들 앞에서 보자는 걸까. 그날 한강에서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도 아는 걸까. 별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또 다른 종류의 위험 신호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답장을 쓰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요.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고 머리가 뒤늦게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퇴근하자마자 지하철을 탔다. 퇴근길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는 손잡이를 잡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터널을 바라봤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스물넷이나 먹은 여자가 스무살도 안 된 애를 만나러 가는 이 상황이 뭔가 우스웠다. 근데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약속 장소는 홍대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창가 자리에 도윤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남자애 하나, 맞은편에 여자애 하나가 있었다. 나를 보고 도윤이 손을 흔들었다. “누나, 여기요.” 그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순간 주변을 둘러봤다. 카페 안 손님들이 다들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자리로 걸어갔다. 남자애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박민준입니다. 도윤이 친구예요.”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손을 흔드는 폼이 벌써부터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옆의 여자애가 팔꿈치로 그를 툭 치며 웃었다. “최하은이에요. 저희 원래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거든요.” 두 사람 말투가 경쾌했다. 어미가 살짝 늘어지는 게 요즘 애들 특유의 리듬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짧게 목례를 했다. 김소영이에요. 그 말이 어색하게 공중에 떠 있다가 사라졌다. 민준이 불쑥 물었다. “누나가 그 한강에서 만났다는 분이세요?” 도윤이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 그런 거 왜 말해.”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뭘 어디까지 말한 거야. 한강에서 있었던 일을 얼마나 자세히 얘기했는지 알 수 없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하은이 낌새를 눈치챈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도윤을 번갈아 봤다. “뭔데, 둘이 뭐 있어?” 나는 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니야, 그냥 아는 사이야.” 목소리가 너무 급하게 나온 것 같아서 스스로도 이상하게 들렸다. 민준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날 도윤이 완전 정신 나간 표정으로 학교 왔었는데요.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며칠 동안 그러던데.” 나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못 들은 척했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도윤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거고, 이따 저녁 뭐 먹을지 정하자.” 그 다급함이 오히려 더 티가 났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가도, 그날 한강 다리 위에서의 일이 도윤에게 그렇게 큰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민준과 하은은 두 달째 사귀는 중이라고 했다. 하은이 팔짱을 끼며 자랑하듯 말했다. “저희는 원래 친구였는데, 얘가 갑자기 고백해서요. 완전 웃겼어요, 손 떨면서 편지 써온 거.” 민준이 옆에서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야, 그건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 그 모습이 꽤 풋풋해서 나는 순간 웃음이 났다. 애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어린 애들이 연애를 하고, 고백을 하고, 그걸 또 서로 놀리면서 즐거워하는구나. 나는 그들 나이 때 뭘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은이 카페 창밖을 보다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언니는 몇 살이세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스물넷.” 하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도윤보다 여섯 살이나 많으시네요.” 그 말에 테이블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컵에 담긴 얼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도윤이 급하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지만 하은의 시선은 이미 나와 도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뭔가를 눈치챈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려고 애꿎은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카페를 나설 때 하은이 나를 살짝 붙잡았다. “언니, 잠깐만요.” 민준과 도윤이 먼저 앞서 걸어가는 사이, 하은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 눈치 없는 애 아니에요. 도윤이 요즘 좀 이상해요. 그것만 말할게요.” 그러고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가 앞으로 뛰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그 말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이상하다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 하은이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는 도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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