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가 저를 쫓아옵니다

1화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세 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 산이 사라지고 빌딩이 나타나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논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서 있었고, 소나무 대신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 진동이 그대로 전해졌는데, 그 미세한 떨림마저도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옆자리에서 계속 휴대폰으로 이삿짐센터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목소리를 배경음처럼 흘려들으며 창밖만 바라봤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반, 새로운 얼굴들. 그 단어들이 하나씩 머릿속에서 굴러다닐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전학 첫날 아침, 나는 교문 앞에서 오 분이나 서 있었다. 건물이 너무 컸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았다. 강원도 산골 중학교의 전체 학생 수보다 이 학교 한 학년 학생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나는 교문 앞에서야 실감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지나갔고, 저마다 웃고 떠들며 익숙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만 혼자, 그 물결 속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얼굴로 삼 년을 버티고 싶었다.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계획이었다. 전학 온 학생이 흔히 겪는다는 그 어색한 관심, 호기심 어린 시선, 자기소개 시간의 부담 같은 것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그저 조용히, 존재감 없이, 무사히 졸업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이라는 건 언제나 첫날부터 무너지는 법이었다. 복도는 좁고, 학생들은 많았다. 나는 담임이 알려준 교실 위치를 종이에 적어 손에 쥐고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서 종이 끝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2학년 3반, 2학년 4반, 표지판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숫자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복도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종이를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2학년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쳐야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아니, 부딪힌 게 아니라 넘어지는 사람을 내가 붙잡은 거였다. 순식간이었다. 누군가 균형을 잃고 내 쪽으로 쏠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 사람의 허리를 감쌌다. 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하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은발에 가까운, 그런 색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나는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염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고,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까지 반사하고 있었다. 허리를 감은 내 팔 안에서, 그 사람은 잠시 숨을 멈췄다. 숨이 멈췄다는 걸, 나는 팔에 닿은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눈동자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그 안에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그게 더 오래 시선을 붙잡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주변이 조용해졌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걸음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이쪽을 향해 서 있었다. 몇몇은 옆 사람에게 팔꿈치로 신호를 보내며 눈짓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 한설 선배 아니야?" "헐, 진짜네." 한설. 그 이름이 왜 그렇게 무겁게 들렸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름 하나가 복도의 공기를 바꿔놓는다는 게, 그 순간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선배는 몸을 세우더니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뿌리쳤다. 동작이 지나치게 정확하고 차가웠다. 차가운 눈빛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구두, 다리, 교복 재킷, 그리고 얼굴. 그 시선이 지나가는 궤적이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사람의 시선처럼 느껴져서, 나는 그 자리에서 옷깃을 조금 여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시선이 얼굴에 닿는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뭐야, 넌." 짧고 낮은 목소리였다. 반말이었다. 존댓말을 쓸 필요조차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목소리에 억양조차 거의 없었다. 높낮이 없이 던지는 그 짧은 문장이, 오히려 더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전학생인데요, 죄송합니다."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혀가 입천장에 붙는 것 같았고,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걷는, 리듬이 어긋나는 발소리였다. 짙은 색 재킷을 입은 남학생 몇 명이 우리를 둘러싸듯 접근하고 있었다. 교복 재킷의 소매를 걷어 올린 모습이나 넥타이를 반쯤 풀어놓은 모습에서, 이 학교의 규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게 한눈에 느껴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중 하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얼음공주한테 손댔다며?" "이 자식, 죽으려고." 주먹을 쥔 손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관절이 하얗게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여러 문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실수였다고, 넘어지는 걸 붙잡았을 뿐이라고,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저, 저기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 사람 제 여자친구입니다." 복도가 완전히 멈췄다. 정말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눈을 크게 떴다. 내 뒤편에 서 있던 학생 하나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그대로 떨어뜨릴 뻔했다. 한설 선배도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놀람도, 분노도 없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처음 보는 무언가가 스쳤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 그게 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알 수 있었던 건, 내가 방금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뱉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남학생 무리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뭐? 여자친구?" "저 얼음공주가?" "장난치냐?"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복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미심쩍은 얼굴로 나와 한설 선배를 번갈아 쳐다봤다. 교실 문이 하나둘 열리며 안에 있던 아이들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 순간을 후회할 시간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한설 선배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그대로 나를 지나쳐 걸어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졌다. 교복 치마 아래로 뻗은 다리가 성큼성큼 복도 끝을 향해 멀어지는 모습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남은 건 나와, 나를 둘러싼 시선들뿐이었다. 누군가 휴대폰을 들어 나를 찍고 있었다. 플래시가 터졌는지, 짧은 빛이 눈앞을 스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오늘부터 나는, 절대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 될 수 없다는 걸. 교실 위치를 적어놓은 종이는 이미 손안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산골에서 서울까지 세 시간, 그리고 조용한 학교생활까지의 거리는 앞으로 내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다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 전학생, 이제 어떡하냐."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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