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1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학교 전체 유행어가 되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지나가면 시선이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속삭이고, 누군가는 대놓고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 봐, 얼음공주 남자친구."
"진짜야? 대체 무슨 사이래?"
"몰라, 근데 오늘 아침에 복도에서 봤다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발밑이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 끝으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여자애 두 명이 나를 힐끔거리며 웃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이 쏠렸다.
누군가는 대놓고 휴대폰을 들어 내 쪽을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2교시가 끝나고, 나는 책상에 이마를 박은 채 엎드려 있었다.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를 다시 되짚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넌.〉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박혀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옆자리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야, 너 진짜 대박이다."
박준서였다.
반 배정표를 보고 처음 인사를 나눴던, 유일하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애였다.
"뭐가."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뭐가? 너 지금 전교생이 다 아는 유명인이야."
박준서는 씩 웃으며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SNS 게시물이 떠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얼음공주 남자친구 등장?!〉
조회수가 벌써 세 자릿수를 넘겼다.
댓글창에는 이미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체 누구야', '얼음공주가 저런 애 만난다고?', '사진 더 없어?'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망했어."
"망하긴, 이거 완전 로또지."
박준서 옆에 앉아 있던 김하은이 끼어들었다.
밝은 목소리, 짧은 단발머리.
첫날부터 유독 친절하게 다가와준 애였다.
"진짜야? 한설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나는 설명을 시작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자꾸 갈라졌다.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오해가 좀 생긴 거지."
"오해? 근데 왜 게시물 제목이 저래?"
결국 자초지종을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서 부딪힌 일, 남학생들이 몰려든 일, 그리고 내가 뱉어버린 그 한마디.
말을 하는 내내 손바닥에 땀이 났다.
다 듣고 난 박준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졌다.
"야, 너 미친 거 아니야?"
"왜 하필 여자친구라고 했어,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됐잖아."
"나도 몰라,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놀리지 말고 도와줘, 나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하냐니, 이미 학교 전체가 다 알잖아."
김하은이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왜 부정 안 했어? 한설 선배가."
그 질문에 나는 말을 잃었다.
사실 나도 몰랐다.
그냥 지나쳐 걸어갔을 뿐이었다.
대답도, 반박도 없이.
〈뭐야, 넌.〉
그 목소리가 자꾸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낮고, 짧고, 어딘가 서늘한 목소리였다.
이상하게도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한설 선배라는 사람, 유명해?"
내 질문에 박준서와 김하은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뭔가 대단한 걸 물어봤다는 표정이었다.
"너 그거 몰라?"
"모르니까 물어보잖아."
박준서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한설 선배, 2학년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야. 성적도 전교 1등이고, 외모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근데 진짜 무서운 건 그거 아니야."
김하은이 말을 이었다.
"철저한 남혐이라는 거지. 지금까지 누구한테 웃어준 적도 없대. 고백한 남자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전부 다 그냥 무시당했다더라."
"어떤 애는 사물함에 편지를 백 통 넣었는데 하나도 안 뜯어봤다는 소문도 있어."
"또 어떤 선배는 졸업식 날 꽃다발 들고 기다렸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그냥 지나갔대."
"완전 얼음이라 얼음공주라는 거지, 별명이."
박준서가 검지로 자기 팔을 문지르며 덧붙였다.
"소름 돋는다, 그 얘기만 들으면."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여자친구라는 말을 뱉어버린 거였다.
정확히는, 아니라고 말할 기회조차 놓쳐버린 거였다.
"그럼 나 죽는 거야?"
"어, 아마도."
박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하은도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자퇴를 고민했다.
전학을 갈 수는 없을까, 아니면 그냥 오늘부터 등교를 하지 않는 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스쳤다.
"야, 근데."
김하은이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선배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갔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해."
"뭐가 이상해?"
"보통이면 바로 화냈을 거잖아. 그런데 그냥 갔다는 건···."
김하은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대신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소리가 크게 울리며 문이 벽에 부딪혔다.
순간 교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떠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한설 선배였다.
하얀 머리카락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교복 셔츠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고, 걸음걸이는 느릿했지만 무게감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몇몇은 숨소리조차 죽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서, 선배의 눈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너."
낮은 목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나는 심장이 목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박준서와 김하은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마치 이제 죽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옆자리 아이들이 슬금슬금 의자를 뒤로 빼는 게 느껴졌다.
선배는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하나, 둘, 셋, 정확하게 귀에 박혔다.
"이름이 뭐야."
"이, 이도현입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중간에 한 번 갈라졌다.
"이도현."
그 이름을 한 번 되뇌더니, 선배는 자리에서 몸을 숙여 내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숨이 멈췄다.
가까이서 본 눈동자는 생각보다 훨씬 짙었다.
그 안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교실 안 모두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선배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앞으로 잘해봐."
짧은 한마디였다.
그리고 선배는 몸을 돌려 교실을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듯 걸어 나갔다.
교실은 다시 폭발했다.
"뭐야 방금?!"
"진짜 사귀는 거였어?"
"아니 근데 저 눈빛 봤어? 완전 다정하던데?"
"다정은 무슨, 그냥 무섭던데."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박준서가 내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야, 이거 완전 진짜인데?!"
김하은은 입을 틀어막은 채 나를 쳐다봤다.
눈빛에 걱정과 흥미가 반쯤 섞여 있었다.
나는 그저 방금 눌린 자리처럼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다.
앞으로 잘해보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