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가 저를 쫓아옵니다

3화

다음 날부터,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교문에 들어서면 선배가 서 있었다. 교복 재킷을 어깨에 걸친 채,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댄 자세로. 하얀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복도를 걸으면 선배가 따라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치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 거리는 매번 똑같았다. 매점에 가면, 어느 순간 선배가 옆에 서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고르려고 손을 뻗으면, 그 물건은 이미 선배의 손에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이 사흘 연속으로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었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부터 이상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오늘도 교문 앞에 있겠지. 그리고 정말로, 교문을 지나자마자 그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쯤이 되니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한숨을 한 번 쉬고, 그 옆을 지나쳐 걸었다. "저기, 선배." 나는 결국 물어봤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였다. "저 왜 따라오세요?" 선배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따라오는 거 아닌데." "그런데 왜 자꾸 제 앞에 있어요?" "우연이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 뻔뻔함에 말을 잃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반박의 말들이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이랬다. 할 말이 많다가도, 정작 마주하면 아무 말도 못 하게 되는. 박준서는 이 상황을 보며 매일같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 저게 우연이 세 번째냐, 네 번째냐?" 교실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박준서가 낄낄거렸다. "몰라, 세지 마." "근데 진짜 신기하다. 얼음공주가 저렇게 사람한테 관심 가지는 거 처음 봐." 박준서는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보며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하은도 옆에서 턱을 괴며 말했다. "소문에는 완전 무감정이라던데, 너한테만 이상하게 적극적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옆 반 애들도 다 그 얘기 해." 김하은이 덧붙였다. "어제도 급식실에서 봤다는데, 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식판을 들고 반찬을 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무심코 줄의 끝을 바라봤다. 뒤에서 누군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손끝이 스치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이거 먹어." 선배는 내 손에 우유를 쥐여줬다. 플라스틱 용기의 서늘한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저 우유 안 좋아하는데···." "그럼 다른 걸로 가져와." "네?"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아까 그거, 다른 걸로." 선배는 이미 몸을 돌려 급식실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투는 명령처럼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뭔가는 명령이 아니었다. 나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배려라고 하기엔 너무 무뚝뚝했고, 그냥 명령이라고 하기엔 너무 배려가 섞여 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선배가 나를 볼 때 눈빛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복도에서 봤던 그 무기질적인 눈빛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때는 마치 사람이 아니라 벽이나 사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은 흔들리고, 조금은 머무는 시선이었다. 어느 날은 옥상에서 마주쳤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서 올라간 곳이었는데, 선배가 이미 그곳에 있었다. 철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하얀 머리카락이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 어떻게 아셨어요?" "몰랐어. 그냥 왔는데 네가 있었어." 또 우연이라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옆에 앉았다. 콘크리트 바닥이 등에 서늘하게 닿았다. 바람이 불었다. 선배의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옆얼굴의 선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콧대에서 시작된 시선이 입술로, 다시 턱선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 시선을 급히 거두고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선배는 왜 저한테만 이래요?"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온 건 나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말을 뱉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선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그 눈동자가 잠깐 흔들리는 것 같았다. "몰라." "모르는데 왜 자꾸 따라오세요." "그냥." "그냥이라는 게 어딨어요." "있어, 지금." 선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그 낮은 음색이 귓가에 남아서,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렸다. 그 순간 바람이 다시 불었고, 선배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나는 봤다. 아주 작은 떨림이었다. 남들은 못 봤을 만큼. 하지만 나는 봤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이상하게도 심장이 더 세게 뛰었다. 〈그냥 무시해버릴까. 이 상황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나서 옥상을 내려가야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되뇌었지만, 다리는 도무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뭘까.〉 나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싫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싫었으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싫지 않아서 더 혼란스러웠다. 선배는 그 뒤로도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깨의 각도는 미묘하게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 작은 기울기 하나가, 나에게는 너무 크게 느껴졌다. 수업 종이 울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우리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종소리가 다른 세상의 소리인 것처럼. 다만 확실한 건, 이 상황이 절대로 단순한 소문이나 오해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뿐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옥상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누군가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어왔고,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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