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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거울은 방 한편, 오래된 자단목 틀에 끼워진 채 서 있었다. 서하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그 앞에 섰는데,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져 잠시 숨을 멈추었다. 금발은 헝클어져 있었고, 한때 눈부시게 빛나던 웨딩드레스는 이제 색이 빠져나간 석고상처럼 창백하게 늘어져 있었다. 화장이 지워진 얼굴은 핏기 없이 하였고, 눈 밑에는 사흘 동안의 불면이 짙은 그늘을 남겨 놓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나인가.* 서하는 거울 속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손끝이 유리에 닿기 직전에 멈춘 것은, 그 안의 자신을 만지면 그 초라함이 진짜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손을 거둔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창을 넘어 들어온 오후의 빛이 드레스 자락 위로 비스듬히 떨어져 색 잃은 천 위에 옅은 금빛 얼룩을 만들었다. 그 빛조차 지금의 서하에게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한 백작가의 외동딸이었고, 아버지가 세운 상단은 대륙 곳곳에 이름을 알렸으며, 그 총명함으로 언제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왔다. 열두 살 무렵부터 상단의 장부를 들여다보며 숫자를 읽어냈고, 열일곱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상인들과의 협상 자리에 앉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이한가의 자랑이라 불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장부 위의 숫자도, 협상 자리에서의 냉철함도, 이 좁은 방 안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소율을 떠올리자 목덜미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병약하고 가련한 얼굴, 눈물 한 방울로 도현의 발걸음을 붙잡아 놓는 여인. 서하는 자신이 그 여리고 애처로운 모습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나약함이 허락되지 않았다. 강인함으로만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삶이었으니까. 어릴 적부터 그랬다. 넘어져도 울지 않아야 아버지가 흡족해했고, 아파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아야 유모가 안심했다. 그렇게 그녀는 단단해지는 법만을 배웠을 뿐, 무너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소율은 아프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가져가는데, 나는 건강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구나.* 그 생각이 떠오르자 서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자조에 가까운 웃음이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텅 빈 방 안에 이상하게 크게 울려 그녀 자신조차 흠칫 놀랄 정도였다. 웃음 끝에 남은 것은 씁쓸함뿐이었다. 거울 속 여인이 웃고 있는 그 얼굴을, 서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으나, 동시에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정말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그 물음은 뒤틀린 방향으로 그녀를 몰아갔다. 어쩌면 처음부터 도현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이한가의 재력과 명성이 필요했을 뿐 소율 같은 여린 존재를 진짜로 원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독처럼 스며들었다. 그 독은 한번 스며들자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 나갔고, 서하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거울 틀을 움켜쥐었다. 손톱 끝이 오래된 나무의 결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실렸다. 결혼식 날, 도현이 자신을 향해 지었던 그 미소가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예의였는지, 서하는 이제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똑, 똑. 낮은 노크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서하는 재빨리 표정을 가라앉히고 문을 향해 돌아섰다. 흐트러진 머리를 손끝으로 대충 넘기고, 헝클어진 옷자락을 손바닥으로 눌러 폈다. 그런 사소한 몸짓조차 지금의 그녀에게는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문이 열리자 준혁이 서 있었는데, 그의 짙은 남색 눈동자가 서하의 낯빛을 살피며 순간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문턱에 선 채 서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그 시선 끝에 걸린 것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어떤 분노 같은 것이었다. "밥도 안 먹었다더군." 준혁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낮게 말했다. "이런 몰골로 계속 버틸 셈이야?" "오라버니." 서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그 안에 배어 있었다. "저택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고, 목덜미에 힘줄이 슬쩍 곤두서는 것이 서하의 눈에 보였다. "신부가 병든 아가씨를 해코지했다는 얘기가 돌더군요." 서하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이었다. "내가 그 방에 왜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죄인이 됐죠. 하녀들이 지나가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목소리를 낮추기는 했지만, 낮춘 목소리조차 이 방까지 다 들리더군요." "그날 밤 네가 왜 그 방에 갔는지 나는 안다." 준혁이 낮게 말했다. "소율이 사람을 보내 널 불렀다는 것도. 그 아이가 보낸 시녀의 이름까지 알아냈다." 서하는 고개를 들어 준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안에는 오랜 신뢰가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그 신뢰만으로는 아무것도 뒤집을 수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얹혀 있었다.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서하가 나직이 내뱉었다. "그 시녀는 이미 입을 다물었을 테고, 소율은 도현 앞에서만 다른 얼굴을 하니까. 오라버니가 아무리 진실을 안다 해도, 그것을 말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건 그저 오라버니 혼자만의 믿음일 뿐이에요." 준혁은 그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얼굴에 스치는 표정은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냉정함이 섞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저택의 정원이 내려다보였는데, 정원사가 시든 꽃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준혁의 눈빛이 묘하게 서하의 처지와 겹쳐 보였다. "네 말이 맞다." 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뒤집을 수 없어. 진실만으로는 부족해. 사람들은 진실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믿으니까." "그래서 저는 이 방에 갇혀 있는 게 편해요." 서하가 자조하듯 말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누구도 저를 손가락질하지 않으니까요." "편한 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지." 준혁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네가 방 안에 숨어 있는 사이, 밖에서는 네 이름이 계속 더럽혀지고 있어. 이대로 두면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오히려 사람들의 확신만 굳어지겠지."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준혁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옳음을 인정하는 순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무게가 함께 따라왔다. "사흘 뒤 후작가 무도회가 열린다." 준혁이 불쑥 말했다. "매년 이 시기에 열리는, 사교계 전체가 모이는 자리야. 도현도 참석할 테고, 소율도 참석하겠지. 그 자리에 누가 나타나고 누가 나타나지 않는지,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읽어낸다." 서하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이대로 방 안에 갇혀 있을 셈이야, 아니면 나가서 네 자리를 되찾을 셈이야." 그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서하의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흔들어 깨우는 방아쇠였다. 그녀는 다시 거울 속 자신을 돌아보았고, 그 초라한 여인의 눈빛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다른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색 바랜 드레스, 핏기 없는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 안의 눈동자만은 조금 전과 다른 빛을 담고 있었다. 준혁은 그런 서하를 잠시 지켜보다가, 더는 말을 얹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문턱을 넘어 사라질 때까지,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을 때, 서하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손을 뻗어 거울 속 여인의 뺨을 실제로 짚었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흘.* 그 짧은 말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사흘 뒤, 이 방을 나서야 한다. 사흘 뒤, 그 무도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도현과 소율의 눈앞에서, 자신이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서하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오후의 빛이 방 안 깊숙이 쏟아져 들어왔고, 사흘 동안 그녀를 짓누르던 어둠의 일부가 그 빛에 밀려나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어둠은, 그 무도회장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소율의 여린 웃음과 도현의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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