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왕따의 이상 체질

1화

급식판을 들고 서 있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 첫 주, 첫 급식 시간이었는데, 나는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자리가 비어 있던 테이블로 다가갔고, 거기 앉아 있던 애들은 내가 식판을 내려놓기도 전에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슬쩍 자리를 옮겨버렸다. 그때 식판 위에서 국물이 살짝 흔들리던 것까지 기억나는데,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 몇 초쯤 걸렸다. 두 번째로 시도한 테이블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여기 자리 있는데' 하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식판을 들고 구석 자리로 걸어갔다. 세 번째 테이블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그쯤 되니 알았으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혼자 밥을 먹는 게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사람이란 게 참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었다. 혼자 먹으면 눈치 볼 일도 없고, 대화 주제를 억지로 짜낼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누가 내 젓가락질을 흉보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혼자다. 반에서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창밖을 보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하며, 급식은 늘 가장 늦게 가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먹는다. 담임이 조별 활동이란 걸 시킬 때마다 나는 늘 남는 조에 억지로 끼워 넣어지는 식으로 처리되었는데, 그럴 때 나를 받아준 조원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대체로 짜증과 포기가 섞인 것이었다. 강태욱과 그 무리들이 지나가며 던지는 시선쯤 정도는 이제 신경 쓰이지도 않았는데, 그건 내가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감각해졌기 때문이었다. 강태욱은 반에서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큰 편이라 자연스럽게 무리의 중심이 되었는데, 나를 볼 때마다 뭔가 재밋거리를 발견한 듯한 눈빛을 하다가도 굳이 손을 대진 않았다. 아마 손을 댈 가치조차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면 다행이지.'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생각대로 하루가 흘러가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만족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게 최선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체육관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늘 조용했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고,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는 책상 앞에 앉아 딱히 볼 것도 없는 인강을 틀어놓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프로 복싱 선수였는데, 나는 이 사실을 학교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버지 직업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이상한 기대를 하거나, 혹은 이상한 편견을 가질 게 분명했고, 나는 그런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체육 선생님이 팔씨름 시합을 시켰다가 내가 반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때 애들이 '너 뭐 하냐, 운동하냐' 하고 물어봤을 때도 나는 그냥 '집에서 좀 논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진짜 이유를 말했다간 골치 아픈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질 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늘 아버지가 준 도복이나 체육관 냄새가 나는 옷들을 학교 가방 깊숙이 숨겨두었고, 손등에 남은 미세한 상처들도 긴 소매로 가리는 습관이 생겼다. 여름에도 얇은 긴팔을 입고 다니는 나를 보고 몇몇 애들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 정도 시선은 익숙했다. 그날 밤,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면서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휘청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다가 아버지의 눈가에 시퍼렇게 든 멍을 발견했다. 멍의 색깔이 유독 진했다. 며칠은 갈 것 같은 크기였다. '또 스파링 하다가 맞으셨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도 내가 봤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부엌에서 물 마시는 소리, 씻는 소리, 이불 까는 소리가 순서대로 들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우리 부자는 서로의 상처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으니까. 그게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어머니가 없어진 뒤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했고, 교실 문을 열자 익숙한 정적이 나를 맞이했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는데, 그 시선 속에 담긴 것이 경멸인지 무관심인지는 이제 구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며 오늘 급식 메뉴가 뭐였는지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런 사소한 걸 생각하는 게 하루를 버티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야 하는데.' 창밖으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그 구름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려 했다. 강태욱 무리가 교실 뒤편에서 뭔가 낄낄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쯤 신경 쓰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늘 그렇게 넘어갔으니까.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바람이었는지, 나는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담임이 조례 시간에 들어오면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도, 그날따라 강태욱이 나를 보며 씩 웃던 그 미소가 평소와는 뭔가 결이 달랐다는 것도,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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