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발끝이 남자의 손목을 정확히 걷어차는 순간, 접이식 칼이 허공으로 튕겨 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챙그랑!
금속이 승강장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그 소리는 마치 정지된 시간을 다시 재생시키는 스위치처럼 주변 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남자는 손목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는데, 그 얼굴에는 통증보다도 당혹감이 더 짙게 드러나 있었다. '이게 정말 부러진 건가, 아니면 그냥 놀란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그런 걸 따져볼 여유는 없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앞으로 파고들었는데, 이번에는 왼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기며 동시에 무릎으로 복부를 밀어붙였다. 무릎이 살에 파고드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남자의 몸이 반으로 접히듯 앞으로 구부러졌다. '이거 진짜 내가 하는 거 맞나' 하는 의문이 계속 스쳤지만, 그 의문과는 상관없이 몸은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몸이 나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남자가 신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고, 순식간에 세 명 모두가 승강장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누군가의 신발이 벗겨져 저 멀리 굴러갔고, 누군가는 팔을 짚은 채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정적이 흘렀다.
······.
승강장에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는데, 형광등 불빛만이 바닥에 흩어진 칼과 쓰러진 세 사람을 가만히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내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방금까지 그렇게 정확하고 매끄럽게 움직였던 몸이, 상황이 끝나자마자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후들거리고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목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오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끝난 건가.'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몇몇 사람들이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이쪽을 찍고 있는 걸 발견했다. 렌즈가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저 각도, 저 거리라면 얼굴이 전부 나왔을 게 분명했다. '저거 인터넷에 올라가면 진짜 큰일이다'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나는 학교 게시판에 내 얼굴이 걸리는 상상까지 잠깐 했다. 담임이 그 영상을 보고 뭐라고 할지, 반 애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아까 그 안경 쓴 아이가 나를 붙잡았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작은 손이 내 팔뚝을 움켜쥐었는데, 그 힘이 생각보다 세서 나는 순간적으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는데,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오히려 놀라움과 궁금함이 더 짙게 담겨 있었다.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시선이 마치 나를 해부하려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이 뭐예요? 저 진짜 궁금해서·····."
그 물음에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과 '그냥 도망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정작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그대로 다물어졌고,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아무 문장도 완성되지 않았다.
승강장 스피커에서 다음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음이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신호로 삼아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만큼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뒤엉켜 있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이름만이라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계속 이어졌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한 칸, 두 칸, 세 칸씩 건너뛰듯 계단을 오르는 동안 다리 근육이 저릿해왔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방금까지의 격투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이 도주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것을 곰곰이 따져볼 여유는 없었다.
계단을 다 오른 뒤에야 나는 잠시 멈춰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폐가 타는 것처럼 뜨거웠고, 목구멍에서는 쇠맛이 나는 것 같았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방금 벌어진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이게 진짜 나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혹시라도 벌써 인터넷에 뭔가 올라오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대신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감아도 방금 전 승강장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재생되는 것 같았다. 칼이 튕겨 나가는 궤적, 남자가 쓰러지던 모습, 그리고 스마트폰 렌즈들의 검은 눈동자 같은 것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짧고 낮은 떨림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였는데, 내용을 확인한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까 지하철에서 그거, 너 맞지?]
화면 속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지만, 그 문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지, 어떻게 알았지' 하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나는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