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왕따의 이상 체질

2화

체육 시간이면 나는 늘 몸을 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린 게 아니라,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도 구석 자리를 찾았고, 출석을 부를 때도 대답만 짧게 하고 고개를 숙였으며, 팀을 나눌 때는 아예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길 바랐다. 1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날은 농구 수업이었다. 체육 선생님이 두 팀으로 나누라고 하자마자 반장이 나서서 자기 마음대로 애들을 뽑기 시작했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실력 없는 애들만 모인 팀에 배정되었다. 상대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한데,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합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상대 팀 애가 골대 아래에서 튕겨 나온 공을 잡으려고 훌쩍 뛰어오르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손을 뻗었다. 탁—. 공이 내 손끝에 걸리며 방향이 꺾였고,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공을 완전히 가로챘다. 그 동작이 너무 매끄러웠던 탓인지, 순간 체육 선생님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호루라기를 불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야, 이도현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나 자신도 그 순간에는 놀랐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느낌, 발끝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부터 손목의 각도까지 마치 누군가가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가듯 정확했다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나 원래 이렇게 움직일 줄 몰랐는데.' 그런 의문이 잠깐 스쳤지만, 나는 그걸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눈에 띄면 좋을 게 없다는 걸 나는 1년 동안 배웠으니까.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일부러 실수를 몇 번 더 저질렀다. 패스를 놓치고, 슛을 빗맞히고, 굳이 넘어질 필요도 없는 자리에서 살짝 발이 꼬인 척했다. 그렇게라도 방금의 그 순간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체육 수업이 끝나고 락커룸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움직였다. 그래야 부딪힐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태욱은 그날도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박민재와 오승현을 양옆에 데리고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아까 그거 뭐야? 은근히 잘하네, 너?"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눈빛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냥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는데,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아서 일부러 셔츠 단추를 천천히 채웠다. 그러자 박민재가 옆에서 킥킥거리며 끼어들었다. "쟤 원래 존재감 제로잖아. 갑자기 저러니까 오히려 웃기지 않냐, ㅋㅋ." 오승현도 맞장구를 치며 뭔가 더 말하려는 눈치였다. "그러네, 완전 다른 사람 같았는데? 뭐 숨겨둔 거 있냐?"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저 신발 끈을 묶는 척했다. 대답을 하면 더 파고들 거고, 대답을 안 하면 그냥 지나갈 확률이 높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다행히 강태욱이 손짓으로 신호를 주자 셋은 그냥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싱크로율 100퍼센트 국가대표 났네, ㅋㅋㅋ." 강태욱이 마지막으로 던진 그 말이 락커룸 벽에 부딪혀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괜히 눈에 띄었네.' 가방을 챙기고 교문을 나서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별거 아닌 리바운드 하나로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강태욱 무리한테 한 번 걸리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 안에서 혼자 스트레칭을 하다가, 문득 서랍 근처에 쌓인 잡동사니 틈에서 아버지의 훈련 노트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서재에 두고 다니다 언제부턴가 내 방 쪽으로 넘어와 있던 낡은 공책이었는데, 겉장은 이미 색이 바래 있었고 모서리는 몇 번이나 접혔다가 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노트를 펼치자 스텝워크와 반응 속도에 관한 메모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화살표와 도형으로 발의 이동 방향을 표시해둔 페이지도 있었고, 숫자로 반응 시간을 재가며 남긴 기록들도 있었다. 나는 그 노트를 몇 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적어둔 훈련법 중 몇 가지는 내가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동작들과 겹쳐 있었다. 방금 체육관에서 리바운드를 가로챘던 그 움직임도, 페이지 한쪽에 그려진 화살표와 거의 똑같았다. '이게 유전인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이상 파고들지 않고 노트를 다시 덮었다. 괜히 더 알아봤다가 뭔가 골치 아픈 걸 마주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학교는 별일 없냐." "네, 그냥 그래요." 짧은 대답 뒤에 이어진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건, 이미 우리 부자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별다른 말 없이 밥그릇을 비웠고, 나는 그 맞은편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이며 낮에 있었던 일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리바운드를 잡았던 순간이나, 강태욱이 던진 말이나, 서랍 속에서 발견한 낡은 노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밥을 먹으며 '내일도 오늘처럼 조용히 지나가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하루를 넘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짐이 며칠 지나지 않아 완전히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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