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편의점 유니폼은 한 치수 컸다.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는데도 손끝이 겨우 나왔다.
어깨선은 헐렁하게 늘어져 있었다.
목 뒤로 넘어가는 옷깃도 자꾸 미끄러졌다.
강도윤은 거울도 없는 창고에서 옷매를 대충 확인하고 나왔다.
창고 안엔 낡은 종이 상자들이 벽처럼 쌓여 있었고, 그 틈으로 삼각김밥 냄새가 배어 있었다.
형광등이 유난히 하얬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았다.
첫 출근이었다.
"어, 왔다."
카운터 안쪽에서 한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도윤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윤서아야. 여기 3년째 일하고 있어. 반가워."
"……강도윤입니다."
"몇 살?"
"열여섯이요."
"어리네. 학교는?"
"통신제요."
서아는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더 캐묻지 않았다.
도윤은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안 물어보지.'
보통은 거기서 한 번 더 캐물었다.
왜 자퇴했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부모님은 뭐 하시느냐고.
도윤은 그 질문들에 대비해 준비해 둔 표정이 있었다.
무표정.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얼굴.
그 얼굴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아는 그냥 계산대 사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바코드는 이렇게, 삑— 소리 나면 넘어간 거고. 담배는 신분증 꼭 확인해야 해. 우리 지점 사장님이 그거 하나는 진짜 예민하셔."
"네."
"삼각김밥 유통기한 스티커 이렇게 붙이고. 폐기는 밤 열 시에 한 번."
"네."
"현금 서랍은 여기, 잠금장치는 이 버튼. 절대 열어놓고 자리 비우면 안 돼."
"네."
짧은 대답만 반복하며 도윤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서아의 손놀림은 빠르고 익숙했다.
손톱이 짧게 정리되어 있었다.
손등에 작은 화상 흉터가 있었다.
튀김기 자국이었다.
동그랗게 오목한 자국이 두 개, 나란히 붙어 있었다.
"화상 자주 입어?"
"……물어본 게 아니라 그냥 봤습니다."
"어, 그런데 대답했잖아."
도윤의 관자놀이가 살짝 욱신거렸다.
'말려들었어.'
서아는 웃는 얼굴로 튀김기 쪽을 가리켰다.
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튀김기는 겉보기엔 멀쩍이 얌전해 보였다.
"저거 조심해. 나 세 번 데였어. 처음엔 손목, 두 번째는 손등, 세 번째는 팔꿈치."
"……팔꿈치는 어떻게요."
"몰라. 나도 아직도 궁금해."
도윤은 대답 대신 튀김기를 힐끗 쳐다보았다.
경계할 대상이 하나 늘어난 기분이었다.
일은 단순했다.
계산, 진열, 폐기, 청소.
도윤은 손을 빠르게 익혔다.
말은 최소한으로만 했다.
손님이 뭘 물어도 짧게만 답했다.
"이거 얼마예요?" 하면 가격만 말했고, "이 근처에 약국 있어요?" 하면 모른다고만 했다.
서아는 그럴 때마다 옆에서 대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도윤은 그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건지, 그냥 서아의 성격인지 헷갈렸다.
밤 아홉 시쯤, 라면 코너를 정리하던 도윤에게 서아가 슬쩍 다가왔다.
"목 안 아파?"
"……왜요."
"말을 너무 안 하니까. 목이 굳을까 봐."
"괜찮습니다."
서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도윤은 라면 봉지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밤 열 시가 넘어가면서 손님이 몰렸다.
퇴근길에 들르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고, 좁은 매장 안은 순식간에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삼각김밥 진열대 앞에서 한 손님이 급하게 봉투를 낚아채는 순간, 옆에 쌓아둔 캔 음료 진열대가 흔들렸다.
도윤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늦었다.
캔이 우르르 쏟아졌다.
타타탕, 캔들이 바닥을 굴렀다.
사이다 캔 하나가 통로를 가로질러 굴러가다가 서아의 발목을 정확히 맞혔다.
"아앗."
서아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뒤로 넘어가는 몸.
도윤의 팔이 저도 모르게 뻗어 나갔다.
쿵, 하는 소리 대신 도윤의 팔에 서아의 어깨가 부딪혔다.
둘 다 진열대에 부딪혀 캔 몇 개를 더 쏟았다.
타다닥, 파삭.
캔들이 바닥에 흩어지며 매장 안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손님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뺐다.
도윤은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또야.'
주목받는 순간, 늘 최악의 결말이 이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웃음거리, 손가락질, 수군거림.
교실 뒤편에서 들려오던 낮은 웃음소리들.
누군가 휴대폰을 들이대던 그 순간의 플래시.
도윤의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진열대를 붙잡았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조차 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서아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완전 코미디네."
서아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을 주우며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신입이 힘이 좀 세서요. 캔 진열대까지 흔들 힘이 있으면 폐기 상자는 좀 옮겨주면 좋겠는데."
손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서아가 손을 휘휘 흔드는 걸 보고 슬쩍 내렸다.
줄 서 있던 아저씨 한 명이 "괜찮아요, 젊은 사람이 힘 좀 있어야지" 하며 웃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도윤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캔 하나가 발밑에서 굴러가다 멈췄다.
'왜 웃지.'
웃음거리가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실수한 것처럼, 자신이 시킨 일인 것처럼 말을 돌렸다.
그 말투에는 도윤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괜찮아?"
서아가 캔을 다 주운 뒤 도윤을 향해 물었다.
쭈그려 앉은 채로 올려다보는 눈빛이 유난히 맑았다.
"네."
"손 떨리는데."
도윤은 그제야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캔을 쥔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닌 얼굴은 아닌데."
서아는 더 캐묻지 않고 캔을 다시 진열대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도윤도 말없이 옆에서 캔을 주웠다.
쭈그려 앉은 자세로 나란히 캔을 정리하는 동안, 매장 안은 다시 평범한 소음으로 채워졌다.
바코드 삑삑거리는 소리, 손님들의 발소리, 문 열릴 때마다 울리는 종소리.
손끝이 캔에 닿을 때마다 서아의 손과 스쳤다.
짧고 사소한 접촉이었는데 도윤은 이상하게 그 감각이 오래 남았다.
손등에 남은 화상 흉터가 시야에 자꾸 들어왔다.
"근데,"
서아가 캔을 정리하며 문득 물었다.
"놀랐어?"
"……뭐가요."
"쏟아진 거. 넘어질 뻔한 거."
"괜찮으세요?"
"나 말고, 너."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진열대로 넘어갔다.
마감 시간이 되어 서아가 셔터를 내리는 걸 도왔다.
셔터가 내려오는 소리는 쇠가 긁히는 듯 요란했다.
밤바람이 셔터 틈으로 스며들었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었다.
"내일도 나와?"
"네."
"그럼 또 봐."
서아는 그렇게 짧게 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졌다.
도윤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대학생 선배라며.'
'왜 저렇게 웃는 거지.'
캐묻지 않는 사람.
웃음거리를 만들지 않는 사람.
도윤이 알던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흔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은 여느 때처럼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며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무표정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손이 떨렸다는 걸 들켰고, 화상 흉터를 물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하루였다.
첫날부터 균열이었다.
그리고 도윤은 아직 몰랐다.
서아가 매장 CCTV 화면 속 자신을 붙잡아 세우던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낯익은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는 것을.
그 눈빛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흔들어놓을지도, 도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