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강하은은 교실 뒤편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벚꽃 잎이 흩날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다시 떨어졌다.
아무도 눈에 담지 않는 풍경이었다.
하은도 마찬가지였다.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정작 벚꽃은 보이지 않았다.
"야, 강하은."
뒤에서 누군가 책상을 발로 툭 찼다.
책상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끼익, 소리를 냈다.
"너네 오빠 아직도 그 학교 다녀?"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글자를 쓰는 척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펜을 쥔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자퇴했다며. 그거 스캔들 때문이라던데."
"그니까, 진짜 걔가 그랬대?"
"소문에는 완전 다르게 들었는데."
웃음소리가 뒤에서 낮게 퍼졌다.
누군가 휴대폰 화면을 옆 사람에게 보여주며 낮게 속삭였다.
하은은 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은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돌아보고 싶었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면 눈물이 먼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노트 위에 의미 없는 선을 그었다.
직선. 곡선. 다시 직선.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옆자리 짝만 눈치챘다.
쉬는 시간이 되자 하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로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으려 애썼다.
화장실 칸막이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숨을 몇 번 크게 들이쉬었다.
숨이 얕고 빠르게 이어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오빠의 번호를 눌렀다가, 다시 지웠다.
화면 위에서 손가락이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다.
전화 아이콘을 눌렀다가, 통화 종료를 다시 누르는 식이었다.
'말하면 오빠가 또 미안해할 거야.'
그 생각에 손을 멈췄다.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던 얼굴.
하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집으로 돌아온 하은은 현관에서부터 목소리를 눌렀다.
신발을 벗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밥 먹었니?"
"먹었어요."
거짓말이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입맛이 없었다.
급식실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
엄마는 식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혀 있었다.
화면 속 뭔가를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었다.
"하은아."
"네?"
"학교에서 별일 없지?"
하은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없어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스스로도 그걸 느꼈다.
엄마의 시선이 하은을 훑었다.
얼굴에서 시작해 손끝까지, 위에서 아래로.
의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요즘 이 집의 규칙이었다.
서로 캐묻지 않기.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다.
엄마도, 하은도, 그 규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은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상 위 달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가 숫자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도윤은 그날 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여는 손끝에서 삼각김밥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텔레비전도, 냉장고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하은의 방문 아래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윤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노크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물어보면 하은이가 더 불편해할 수도 있어.'
그 생각에 걸음을 돌렸다.
대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통신제 고등학교 교재가 쌓여 있었다.
표지가 아직도 새것처럼 반질반질했다.
펼쳐본 적 없는 것도 많았다.
도윤은 그중 하나를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줄을 세 번째 읽고 있었지만 내용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은이 요즘 표정이 이상해.'
생각이 스쳤다.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도윤은 결국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자신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되풀이됐다.
다음 날, 편의점.
문이 열릴 때마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서아가 오늘도 카운터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 왔네."
"……네."
도윤은 유니폼 조끼를 걸치며 짧게 인사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오늘 표정 좀 안 좋은데."
"평소랑 똑같아요."
"거짓말."
서아가 팔짱을 끼고 도윤을 살폈다.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도윤은 시선을 피했다.
괜히 진열대 쪽으로 걸어가 삼각김밥을 정리했다.
"무슨 일 있어?"
"없어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거 보면 있는 것 같은데."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리하던 손이 삼각김밥 하나를 놓쳤다가 다시 집었다.
서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밑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거 먹을래?"
삼각김밥이었다.
유통기한이 오늘 자정까지인, 폐기 대상 제품이었다.
"이거……"
"폐기용이야. 사장님이 우리끼리 먹으라고 하셨어."
"괜찮아요."
"먹어. 살 좀 붙어야 돼. 너 너무 마른 것 같아."
도윤은 삼각김밥을 받아 들었다.
손끝에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다.
서아의 손이 아직 닿아 있던 자리였다.
심장이 이상하게 한 번 크게 뛰었다.
"고맙……"
"응?"
"아니에요."
도윤은 급히 말을 삼켰다.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서아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지만 눈에 오래 남았다.
카운터 조명 아래서 서아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접히는 모습이, 도윤의 시야에 오래 잔상처럼 남았다.
"근데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네."
"숨기지 마. 나중에 말할 데 없으면 나한테 말해."
"……네."
도윤은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밤, 매장에 사장이 들어왔다.
손에 전단지를 한 뭉치 들고 있었다.
종이 뭉치를 카운터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다음 주 토요일에 매장 오픈 3주년 행사 있어. 시식 코너 열고, 손님 이벤트도 할 거야."
"저도 해요?"
서아가 물었다.
"당연하지. 도윤이도 해야지."
도윤의 손이 멈췄다.
정리하던 상품 진열대 앞에서,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행사, 사람들, 시선.
그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저는……"
"빠지면 안 돼. 인원 부족해서 다 나와야 돼."
사장은 단호하게 말하고 전단지를 카운터에 올려두었다.
더 이상의 협의는 없다는 투였다.
도윤은 전단지를 내려다보았다.
밝은 색깔의 글씨로 '3주년 감사 행사'라고 적혀 있었다.
풍선, 마이크,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일러스트가 붙어 있었다.
마이크를 든 캐릭터의 그림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 모든 것이 도윤에게는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다는 것.
숨이 턱 막혔다.
"괜찮아, 나랑 같이 있을 거니까."
서아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전단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가 구겨졌다.
서아는 그 구겨진 종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도윤은 유니폼을 벗었다.
가게 문을 나서기 전, 서아가 뒤에서 불렀다.
"도윤아."
"네?"
"진짜 무슨 일 있으면, 참지 말고."
도윤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문을 밀고 나갔다.
딸랑, 종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이 주머니 속에서 짧게 울리고 멈췄다.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냈다.
하은의 문자였다.
[오빠, 오늘 학교에서 좀 힘들었어.]
그 한 줄이 도윤의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가슴 한가운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답장을 쓰려다 지웠다.
다시 썼다.
[무슨 일이야.]
썼다가, 너무 딱딱한가 싶어 지웠다.
[무슨 일 있었어?]
로 바꿔 다시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도윤은 어두운 골목길에 우두커니 서서, 오지 않는 답장을 오래 기다렸다.
가로등 불빛이 도윤의 발끝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도윤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