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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창가 자리에 그대로 엎드렸다. 아침 공기가 아직 식어 있어서 책상 위에 닿은 팔뚝이 차가웠다. 1교시 시작 전 십 분,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견딜 만한 순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척했고, 나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게 우리 반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나는 그 규칙을 지키는 데 아주 능숙했다. 3월 초 개학날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와 눈을 오래 마주친 적이 없었다. 급식실에서도 구석 자리를 찾았고, 체육 시간에는 항상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몸을 작게 만들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지만. 서은채, 육성 실패. 누군가 그렇게 부르는 걸 들은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처음엔 화가 났고, 그다음엔 억울했고, 이제는 그냥 무감각했다. 여덟 살에 데뷔해서 열두 살까지, 나는 텔레비전 안에서 웃고 울고 뛰어다니는 아이였다. 국민 여동생, 천재 아역, 온갖 수식어가 내 이름 앞에 붙었다. 광고 하나를 찍으면 다음 날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내 이름이 올라갔고, 드라마 한 회 방영이 끝나면 인터넷 게시판마다 내 표정을 캡처한 사진들이 돌아다녔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게, 나를 지켜보는 게, 나를 기대하는 게. 그리고 사춘기가 왔다. 키가 크고 얼굴이 길어지고 눈매가 달라졌다. 어린 시절의 동그란 얼굴선이 사라지고 낯선 각도의 턱과 광대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그걸 '망가졌다'고 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내 열두 살 사진과 지금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고 '이게 육성 실패의 표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진 밑에는 온갖 비교와 조롱이 댓글로 달렸다. 누구는 성형을 의심했고, 누구는 그냥 노력을 안 해서 저렇게 됐다고 했다. 그 게시물은 조회수 몇십만을 찍었고, 나는 그날 이후로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검색창에 내 이름 세 글자를 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떨렸으니까. 이번 생은, 아니, 이번 인생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렇게 남은 학창시절을 흘려보낼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습관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매일 밤 눈을 감기 전에. "저기, 자리 있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나는 엎드린 채로 눈만 슬쩍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어딘가 낯이 익은데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키가 크고, 교복이 아직 새것처럼 각이 살아 있는 남자애였다. "전학생이야. 강도윤이라고 해. 옆자리 비어 있다고 해서." 선생님이 뒤늦게 교실에 들어와 전학생 소개를 형식적으로 마쳤고, 아이는 익숙하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몇몇 여자애들이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훑어보는 게 시야 끝에 걸렸다. 새로운 얼굴, 특히 저런 얼굴은 늘 그런 관심을 끌었다. 나는 별 관심 없이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새로운 인간관계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애도 내 정체를 알게 될 테고, 그러면 다른 애들처럼 곁눈질하거나 수군거리거나, 최악의 경우엔 아예 대놓고 물어볼 테니까.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딱딱해졌다. 아마 지금쯤엔 돌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저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서은채, 맞지?" 순간 몸이 굳었다. 익숙한 순서였다. 이름을 확인하고, 그다음엔 놀란 척을 하거나, 아니면 은근한 비웃음을 흘리거나. 나는 어느 쪽이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엎드린 채로 눈만 옆으로 굴려 그 애를 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놀라거나 신기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해서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그 애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어. 그런데." 내 목소리는 예상보다 더 냉랭하게 나왔다.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한 탓이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날을 세우는 버릇, 이제는 거의 반사작용이었다. "맞구나." 그 애는 웬일인지 웃었다. 반가움과 확신이 뒤섞인, 오랫동안 참아온 감정이 마침내 새어 나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심 같아서, 나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나 너 팬이었어. 진짜 오래된 팬." 또 시작이구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어릴 때 팬이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종류로 나뉘었다. 옛날이 좋았다고 아쉬워하는 사람과, 지금 얼마나 망가졌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반갑지 않았다. 세 번째 부류도 있긴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궁금해서 말을 거는 사람들. 그 부류도 결국 상처를 남기고 갔다. "그래서 뭐." 일부러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쯤에서 대화가 끝나야 했다. 그런데 그 애는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몸을 살짝 내 쪽으로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첫사랑' 광고 기억나? 이온음료. 마지막에 카메라 정면으로 눈 마주치면서 웃는 장면." 순간 뭔가가 목 안쪽에서 걸렸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그 광고는 내 마지막 작품이었다. 열두 살,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그 해에 찍은 마지막 촬영. 그 뒤로 나는 대중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촬영장의 뜨거운 조명, 감독의 재촬영 지시, 스타일리스트가 내 머리를 마지막으로 매만지던 손길까지, 나는 지금도 그 하루를 통째로 기억하고 있었다. 웃으라는 신호가 떨어지고, 나는 웃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나를 찍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나는데." 거짓말이었다. 그 눈빛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 몇 번이나 다시 찍자고 했는지, 조명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순간이 재생될 만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뭔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기억나. 아직도." 그 애의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진지해서, 나는 순간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교실 안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진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의자 끄는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도. "그래서 결론이 뭔데." 겨우 짜낸 반문이었다. 그 애는 잠시 나를 빤히 보다가, 뭔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정적 사이에 나는 이상하게도 숨을 참고 있었다. "내가 다시 육성할게." "뭐?" 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너, 다시 빛나게 만들 거야. 내가." 교실 안 몇몇 아이들이 그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 자식 뭐하는 놈이냐는 표정들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게 뻔했다. 뒷자리 애 하나가 짝꿍한테 뭐라고 소곤거리는 게 보였다. 분명 저 전학생 정신 나갔다는 내용일 거였다. "미쳤네." 내가 뱉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반응이었다. "진지한데." "그러니까 더 미친 거지." 나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나야 했다. 더 이상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그 애가 여전히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등 뒤로 그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마치 뭔가를 관찰하듯, 혹은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고 커튼 자락이 흔들렸다. 봄이라 그런지 공기가 데워진 흙냄새를 품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저 애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팬이었다는 것도, 광고를 기억한다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성이라니. 그 단어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랫동안 그 단어는 내게 죽어 있던 말이었으니까. 앞으로 얼마나 시끄러워질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옆자리에 앉은 저 애의 눈빛이, 쉽게 물러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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