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며칠이 지나도록 강도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각을 하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졸면 옆에서 팔을 슬쩍 찔렀고, 단추가 풀리면 말도 없이 손을 뻗어 채워주려다가 내 손등에 얻어맞기도 했다. 짜증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밀어내지지도 않았다.
월요일엔 우산을 잊고 나온 나에게 자기 우산을 반쪽으로 나눠 씌워주겠다며 어깨가 다 젖도록 붙어 걸었고, 화요일엔 급식실 줄이 길다며 대신 자리를 맡아주었다. 수요일엔 내가 필기를 놓친 부분을 아무 말 없이 자기 노트를 슬쩍 밀어 보여주기도 했다. 매번 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았고, 그 애는 그런 반응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이 돌아올 것이고, 그 대답이 어떤 식으로든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릴 것 같아서였다.
문제는 목요일 체육시간에 터졌다.
반 대항 피구 경기였고, 나는 처음부터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사람들 시선을 받는 것도 다 귀찮았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전원 참여를 못박았고, 나는 마지못해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흙바닥은 이틀 전 내린 비 때문에 아직 축축했고, 발밑에서 올라오는 습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저것 봐, 서은채가 뛴다."
"뛰긴 뛰겠어? 예전엔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잘 웃던 애였는데."
"지금은 아무 표정도 없잖아. 방전됐나 봐."
작은 웃음소리들이 라인 바깥에서 새어 나왔다. 익숙한 소리였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늘 비슷한 문장들이 따라왔고, 그때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는 법을 배웠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애써 무시하며 공을 피했지만, 곧 다리에 정통으로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야 했다. 다리가 얼얼했다. 아픈 건 잠깐이었는데, 그 순간 누군가의 셀카봉이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한 게 보였다.
렌즈. 작고 까만 렌즈 하나가 나를 정면으로 물고 있었다.
순식간에 오래된 기억이 겹쳐졌다. 어릴 때, 촬영장에서 나를 향해 있던 수십 개의 카메라들. 조명 아래서 나는 늘 웃어야 했고,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 표정을 미리 만들어두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때는 그 시선이 사랑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조롱이었다.
같은 렌즈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찍지 마."
낮게 뱉었지만 상대는 웃으며 계속 렌즈를 들이댔다.
"그냥 재밌어서 그래.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명하잖아, 너."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뚝뚝 묻어났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강도윤이 성큼 걸어와 그 애 앞을 막아섰다. 그림자가 내 발밑까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뭐 하는 거야."
"뭐긴, 그냥 찍은 건데."
"지워."
"뭐? 네가 뭔데."
"얘 짝이야."
그 짧은 대답에 주변이 잠깐 조용해졌다. 짝이라는 단순한 단어가, 이상하게도 방패처럼 그 자리를 덮었다. 상대는 몇 마디 더 투덜거리다가 결국 사진을 지웠다. 화면 속에서 내 얼굴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체육시간이 끝난 후, 나는 강도윤을 붙잡았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다른 감정이었다.
"왜 자꾸 나서."
"싫었어, 그런 거."
"네가 싫든 좋든 상관없잖아. 내 일이야."
"네 일이지만 나도 옆에 있으니까."
옆에 있으니까. 그 말이 왜 이렇게 단단하게 들리는 걸까.
"그게 팬심이야, 아니면 다른 거야."
내가 다시 물었다. 며칠 전 급식실에서 삼켰던 질문이었다. 그때는 목구멍 안에서 삭여버렸는데, 오늘은 참지 못하고 꺼내버렸다. 그 애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대답했다.
"팬심으로 시작한 건 맞아. 근데 지금은... 그냥 네가 저렇게 웃음거리 되는 게 싫어서 그래."
"그거 위험한 소리야. 인터넷에서 너 나 이용해서 뭔가 노리는 거라고 떠들면 어떡할 건데."
실제로 그 걱정이 진짜였다. 이미 몇몇 애들이 SNS에 '전학생이 왜 육성 실패한테 붙어 있냐'는 글을 올렸고, 몇 개의 댓글은 도윤을 두고 '관심병'이라거나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스크린샷을 이미 몇 번이나 봤다. 볼 때마다 화면을 닫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손가락은 매번 다시 그 창을 열었다.
"봤어, 그 글들."
"...그래서."
"상관없어."
"진짜 미쳤구나."
"응, 좀 미친 것 같아. 그래도 상관없어."
그 확신이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뜨거워졌다. 아니, 뜨거워졌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운동장 너머로 아이들이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그래도 조심해. 나 때문에 너까지 이상한 소리 들을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게."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나는 그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인터넷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었다.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익숙한 조롱 글들 사이로 새로 올라온 게시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우리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었다.
[그 전학생 뭐임? 서은채한테 완전 진심인듯. 근데 팬심으로 접근한 거면 좀 소름인데]
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다. 대부분은 도윤을 비웃거나 나를 동정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댓글은 "쟤 옛날에 예능 나왔던 애 아니야?"라며 오래된 사진 캡처를 첨부해두었고, 그 아래로 또 다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이런 식으로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게 무서웠다. 관심 뒤에는 늘 실망이 따라왔고, 실망 뒤에는 언제나 더 깊은 조롱이 따라왔다.
이번 생은 절대로 다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을 것이다. 이번 생은 절대로 누군가의 기대에 웃음을 지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생은 절대로, 다시는 관심의 중심에 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았는데, 지금 이 화면 속에서 나는 또다시 누군가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도윤이라는 이름과 함께.
노트북을 덮었다. 방 안의 불빛이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창밖에서 밤바람이 창틀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나는 도윤에게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그 글 봤어?"
"봤어."
"...괜찮아?"
내가 먼저 그 애 걱정을 하는 게 이상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도윤은 잠시 나를 보다가,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안 괜찮아도 상관없어. 근데 너는 왜 그 얘기 먼저 꺼내."
"...그냥."
"그냥이라니. 신경 쓰는 거네."
말문이 막혔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새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낯설고 불편해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버렸다.
교실 창문 너머로 아침 해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그 빛이 내 얼굴에 닿는 것도 모른 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