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바람 소리도, 새소리도, 아무것도 없었다. 발밑에서 흙을 밟는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숨소리마저 이 정적을 깨는 게 죄스러운 느낌이었다.
"여기 뭐야."
승우가 검을 뽑았다. 쇠가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귀를 긁었다.
집들은 대부분 온전했다. 문제는 그 위에 덮인 서리였다. 나무도, 지붕도, 심지어 우물의 물까지 하얗게 얼어 있었다. 벽에 걸린 빨래마저 뻣뻣하게 얼어 바람 한 점 없는 공기 속에서도 기이한 각도로 굳어 있었다.
한여름의 마을이 겨울로 통째로 옮겨진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담벼락에 낀 서리를 만져봤다. 차가움이 아니라 이질감이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추위가 아니었다. 뭔가가 이 공간을 통째로 얼려버린 느낌이었다.
"사람은요."
다혜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이 내 옷깃을 슬쩍 붙잡았다. 그럴 만했다. 이 침묵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대답 대신, 유진이 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위 그릇에 담긴 음식만 얼어붙은 채 남아 있었다. 숟가락이 그릇 한가운데 반쯔 박힌 채로, 마치 누군가 방금 전까지 밥을 먹다가 그대로 증발해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먹다가 그대로 사라진 것 같은데."
유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그녀도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을을 훑기 시작했다. 한 채, 두 채, 세 채.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반쯤 젖혀진 채 얼어 있었고, 우물가에는 물동이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이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이 마당 한가운데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마저 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누군가 그걸 던지고, 그대로 사라진 것처럼.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면 최소 백 명은 살았을 텐데. 백 명이 흔적도 없이.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스킬 발동: 기척 감지]
정찰병이 낮게 중얼거렸다. 스킬창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반응이 있어요. 마을 중심에서."
그의 목소리에서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느껴졌다. 뭔가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불안.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서리는 더 두꺼워졌다. 발끝에 밟히는 얼음 조각이 유리처럼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얼음 조형물로 변해가는 중심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마을 중심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원래는 우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나무 모양의 구조물. 가지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얼어붙어 빛을 받으면 기이한 굴절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뿌리처럼 뻗은 서리가 광장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밑동에, 소녀가 앉아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 회색빛 눈동자.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몸.
소녀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작았다.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손끝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다혜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렸다.
"괜찮아, 우린 구조하러 왔어."
나는 그 순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게 아니라, 뭔가 익숙한 것을 감지한 느낌.
게임에서 봤던, 성녀의 초상화.
그 얼굴과 지금 이 소녀의 얼굴이 겹쳤다. 정확히 같은 눈매, 같은 입술 모양. 초상화 속에서는 온화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같은 얼굴이 이렇게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 소름 끼쳤다.
"이름이 뭐야."
내가 물었다. 목소리를 최대한 침착하게 눌러 담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소녀가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인식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여리요."
"여리.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알아?"
"몰라요. 다들, 노래를 듣고 사라졌어요."
"노래?"
"제가 부른 노래요."
일행들 사이에 조용한 긴장이 흘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 하나가 부른 노래에 백 명이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나.
승우가 검을 고쳐 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몰라요.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절 보러 왔다가, 사라져요."
여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서리로 뒤덮인 이 마을과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인간적이었다. 너무 무해해 보였다.
"저 때문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 순간, 다혜의 치료 스킬 감지기가 삐 소리를 냈다.
[경고: 미지의 마력 파동 감지]
"이거, 이거 뭐예요?"
다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팔목에 찬 장비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화면 위 숫자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력 수치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표시되는 숫자가 감지 범위를 넘어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거 게이지 고장 아니야?"
유진이 다혜의 장비를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이제는 여유가 없었다.
"고장 아니에요. 진짜로 올라가고 있어요."
나는 여리를 다시 봤다.
그녀의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겁먹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텅 빈, 무표정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은 아직 뺨에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표정은 이미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여리?"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우리를 하나씩,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 각자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얼음 나무의 표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
한 번.
쩌적.
두 번.
갈라진 틈으로 검은 안개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안개는 바닥을 타고 낮게 퍼지며 우리 발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뒤로!"
내가 소리쳤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쳤다.
승우가 여리 앞을 막아섰다.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성격상 당연한 반응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몸을 던지는 사람.
그게 실수였다.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승우의 몸을 휘감았다.
"승우!"
유진이 외쳤다. 그녀의 손이 승우를 향해 뻗었지만, 안개가 이미 승우의 몸 전체를 감싼 뒤였다.
승우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리가 그의 피부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눈, 코, 입.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발작하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눈은 마지막까지 뜨여 있었다. 뭔가를 말하려던 입 모양 그대로, 얼음이 되어 멈춰버렸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로는 도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여리가 천천히 일어섰다.
표정 없는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방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낮고, 차갑고, 아주 오래된 무언가처럼.
"또 왔네."
일행 전원이 얼어붙었다. 승우처럼 몸이 굳은 게 아니라, 공포로.
"또 사람을 데리고 왔어. 이번엔 몇 명이나 버틸까."
그 말투에는 조롱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지긋지긋하다는 무심함뿐이었다. 마치 우리가 몇 번째인지 셀 필요도 없다는 듯한 어조.
나는 그 순간, 게임에서 이 대사를 본 기억이 났다.
마녀의 각성 이벤트 첫 대사였다.
그리고 이 대사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파티 전멸이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것과, 이미 늦었다는 사실이 동시에 떠올랐다. 승우가 서 있던 자리에는 이제 얼음 조각상만 남아 있었고, 검은 안개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조용히,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