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딩동.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을 때 나는 벤치에 웅크린 채 반쯤 잠들어 있었다. 새벽 세 시,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고 등은 벤치의 차가운 철제 감촉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얇은 패딩 하나로는 이 계절의 새벽바람을 막아낼 재간이 없어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더 웅크렸다. 근처 편의점 불빛만이 희미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고, 그 외엔 온통 어둠뿐이었다.
습관처럼 폰을 확인하려다 문득 어제 넣어둔 로또 번호가 떠올랐고, 별 기대 없이 당첨 확인 앱을 눌러보았다. 어차피 매주 그래왔던 일이었다. 사람은 희망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법이니까, 나는 그 희망마저 로또 한 장에 걸어놓고 살아온 셈이었다.
화면이 로딩되는 몇 초가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빙글빙글 도는 로딩 아이콘을 보며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뜬 문구를 본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1등. 당첨금 7억 2천만 원.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기 시작했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아.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목이 메어 나오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순간을 상상해왔던가. 노숙 위기에 내몰린 지 이제 하루, 그 사이 손에 쥔 로또는 이 한 장뿐이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숫자를 마주한 적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얼어붙은 채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판매점에서 받은 영수증을 꺼내 몇 번이고 번호를 대조했다. 손이 떨려서 영수증을 놓칠 뻔한 게 두 번이었다. 틀림없었다. 6, 14, 22, 27, 31, 39.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자동으로 뽑았던 번호가 그대로 맞아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몇 번이고 접었다가 펼쳤다가 하면서, 이게 진짜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날 이후 며칠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은행 창구로 달려갔고, 담당 직원은 서류를 내밀며 몇 번이나 신분증을 재확인했다. 그럴 만도 했다. 몰골이 며칠째 씻지 못한 노숙자 그대로였으니까. 세금을 떼고 남은 돈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 나는 그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눌러봤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까지 벤치에서 자던 사람이 오늘은 오피스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었으니까.
부동산 사장은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도 계약금이 들어온 걸 확인하자마자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 굽신거렸다. 그 낙차가 우스웠지만 웃을 기운도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와서, 나는 처음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몸에 붙은 며칠치 거리의 냄새를 씻어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씻고 나니 그냥 평범한 삼십대 남자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은 텅 빈 것처럼 허했다. 돈은 넘치는데 정작 이걸 나눌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내가 노숙자가 되던 순간 하나둘 연락이 끊겼다. 밤에 오피스텔 침대에 누워 있으면, 벤치보다 훨씬 편한데도 도리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넓은 방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자꾸만 벤치 위의 밤보다 더 외롭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밤, 습관처럼 SNS를 켜고 타임라인을 넘기다가 낯익은 성이 눈에 걸렸다. '윤세아'. 오래전 명절에 한 번 본 적 있는, 먼 친척뻘 되는 여자아이였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때 나는 노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남의 슬픔을 챙길 여유조차 없었다. 그 기억이 뒤늦게 죄책감처럼 밀려왔다.
계정을 눌러 들어가자 최근 게시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만날 사람 구함. 화영고 2학년. 밥 사주실 분, 대화 상대 구합니다. 사정 있어서 급합니다.'
게시물 밑에는 댓글이 스무 개 넘게 달려 있었는데, 대부분이 나이 든 남자들이 남긴 은근한 제안들이었다. '십만 원에 카페 갈까요?', '차 있어요 태워드릴게', '연락 줘요 급전 필요하면 도와줄게', '얼굴 보니 이쁘네 ㅎㅎ 톡 줘봐'. 그 댓글들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위험한 물이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아이가 이런 늑대들 앞에 자기 몸을 던져놓은 셈이었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읽을수록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짐승 같은 놈들은 저마다 다른 계정으로 접근해 세아를 어떻게든 만나려 들고 있었다. 어떤 놈은 아예 위치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이름 하나를 클릭해 프로필을 확인했는데, 프로필 사진에 찍힌 남자는 사십대로 보이는 얼굴에 술자리 사진을 잔뜩 올려둔 사람이었다. 저런 인간이 밤거리에서 세아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프로필 사진 속 세아의 얼굴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금발로 단발을 자른 머리, 화영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채 지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릴 때 봤던 그 앳된 얼굴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어른스러운 피로가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왜 나는 이 아이가 이런 상황에 놓인 걸 지금까지 몰랐을까.
게시물 아래 사진들을 더 넘겨봤다. 최근 사진일수록 옷차림이 얇아지고 화장이 진해졌다. 그건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세아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방식처럼 보였다. 그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메시지를 보낼까 몇 번이나 손을 멈췄다가 결국 눌렀다. '세아야, 오랜만이다. 나 도윤이 삼촌 알지? 잘 지내니.' 보내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방 안을 서성였다. 답장이 오지 않는 몇 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이 아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아니면 또 다른 낯선 어른의 접근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릴까.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아, 안녕하세요.' 짧고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화면 속 그 몇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무언가 사정을 숨기고 있는, 경계하는 기색이 문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었다.
그 짧은 답장 하나에도 뭔가 다급함이 섞여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곧바로 통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가 이상하게 거칠었다. 헐떡이는 숨소리 사이로 어렴풋이 발소리 같은 게 섞여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어디 있어?"
내가 묻자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 뒤로 겁에 질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기, 삼촌. 누가 계속 따라와요."
그 한마디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다시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이기 시작했다. 손에 쥔 휴대폰이 미끄러질 만큼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어디야, 정확히. 지금 위치 말해봐."
"모, 모르겠어요. 그냥…… 버스 정류장 지나서, 골목……"
말끝이 흔들리며 끊겼다.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온 건, 낮고 거친 남자 목소리였다.
"어이, 학생. 어디 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