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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도 아니고 마물도 아니다. 사춘기 여고생이다.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지금은 안 웃는다. 성별이 뒤집힌 세계로 떨어진 지 벌써 넉 달째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알람이 울려서 눈을 떴는데 천장이 낯설었고, 며칠 지나니 다들 나를 강태민이라고 불렀고, 나도 어느샌가 그 이름에 대답하고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 뭘 했는지 기억은 나는데 그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모른다. 그럴 땐 그냥 사는 게 낫다. 어차피 여기서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이 세계는 성별 권력 구조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여자가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크고, 무리를 이뤄 다닌다. 특히 고등학교 여학생들, 이른바 '갈' 무리는 지역 사회에서 준(準) 재난급 존재로 취급받는다. 남자 고등학생들은 그 앞에서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게 생존 법칙이었다. 뉴스에도 갈 무리 관련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편의점 유리창이 깨졌다든가, 남고 앞에서 집단 시위가 벌어졌다든가, 지난주엔 어떤 무리가 남고 급식실 냉장고를 통째로 열어 아이스크림을 압수해 갔다는 뉴스도 나왔다. 앵커는 그걸 아주 담담하게 읽었다. 이 세계에선 그게 그냥 일상 뉴스였다. 나는 이 세계에서 보건교사 자격증을 땄다. 원래 세계에서 하던 일이었으니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배치였다. 1지망은 청람여고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고 보건교사가 되면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학생들이 나를 은근히 챙겨주고, 보건실에 몰래 찾아와 고민을 상담하고, 그런 훈훈하고도 야릇한 시추에이션이 하나쯤 있을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라키스케베, 뜻밖의 행운을 노린 얄팍한 계산이었다. 원서를 넣던 날 나는 심지어 신중을 가장해서 2지망, 3지망까지 전부 여고로 채웠다. 만약을 대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이중 삼중으로 행운을 노린 거였다. 결과는 백호남고였다. "강태민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백호남고로 배치되셨습니다." 교육청 직원이 웃으며 서류를 건넸을 때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정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혹시 재배치 신청 같은 것도 되나요?" 하고 물었고, 직원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그건 안 됩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안 되는 거였으면 웃지를 말지. 백호남고는 이름 그대로 남고였다. 전교생이 남자, 교사도 대부분 여자였다. 등록된 유도부, 축구부, 레슬링부까지 있는 학교였고, 첫날 출근해서 느낀 건 냄새였다. 땀 냄새. 그것도 아주 진한.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운동장에서 축구부가 뛰고 있었는데 그 열기가 담장 밖까지 뻗쳐 나오는 것 같았다. 복도에 들어서니 사물함 사이사이로 뭔가 발효되는 듯한 냄새가 배어 있었고, 교무실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여교사 몇 명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수고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격려인지 애도인지 구분이 안 됐다. "선생님! 저 좀 봐주세요!" 첫 주 첫날, 보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한 남학생이 뛰어들어 왔다. 몸집이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상의는 이미 반쯤 벗겨져 있었다. 유도부 오태호였다. "팔이 좀 이상한데요, 어깨가 빠진 거 같아요." 가까이 가자 훅 끼치는 땀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사람 몸에서 이 정도 밀도의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걸 이 세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원래 세계에 있을 때는 냄새라는 게 이렇게 물리적으로 사람을 압박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이건 향이 아니라 거의 파동이었다. "팔 좀 들어봐요." "이렇게요?" "어, 그, 조금만 천천히… 아니 그렇게 확 들면…" 어깨가 아니라 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오태호는 내 지시를 알아듣는 건지 마는 건지 팔을 붕붕 휘둘렀고, 나는 그 팔이 내 얼굴을 스칠 뻔한 걸 두 번이나 피했다. 다행히 탈구는 아니었고 근육이 뭉친 정도였다. 파스를 붙여주고 돌려보냈다. 그게 백호남고의 일상이었다. 다치는 애들은 죄다 우락부락한 몸으로 찾아오고, 상담이라고 해봐야 여드름이나 발가락 물집 얘기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 이거 만졌는데 따가워요" 하며 손등을 들이미는 애가 있었고, 발가락 사이가 짓물렀다며 신발을 벗어 보이는 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청람여고를 상상하며 기대했던 훈훈한 그림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태호, 유도부는 매일 이렇게 다치는 거야?" "저희야 뭐, 늘 이래요. 근데 선생님, 그거 아세요?" "뭘." "청람여고 애들이 요즘 우리 학교 앞에 자주 온다던데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청람여고. 내가 못 간 그 학교. "왜? 무슨 일로?" "몰라요. 근데 걔들 무섭대요. 거기 서열 1위가 지나가면 다들 숨는다던데." "서열 1위? 그게 뭐야, 조폭이야?" "그런 느낌이라고 하던데요. 이름은 저도 몰라요. 근데 축구부 애들 말로는 그 선배 눈 마주치면 그날 재수 없대요." "야, 그게 무슨 미신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그 선배랑 눈 마주친 애가 그날 시험에서 최저 점수 받았대요." 나는 웃었다.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 나는 백호남고 보건교사인데. 청람여고 서열 1위가 누구든, 그 무시무시한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든, 내 인생과는 궤도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오태호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그 얘기를 금방 잊었다. 다음 환자가 발가락 물집을 들고 왔고, 그다음엔 코피가 안 멈춘다는 애가 왔고, 오후엔 축구부 하나가 정강이를 붙잡고 뛰어들어왔다. 하루가 그렇게 사람 몸의 온갖 부위를 순회하며 지나갔다. 그 웃음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는 그날 오후에 바로 알게 됐다. 퇴근 준비를 하며 창밖을 봤을 때, 교문 앞에 서 있는 여학생 무리가 보였다. 백호남고 교복이 아니었다. 청람여고 특유의 남색 재킷이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무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나가지 않았다. 교문 앞에 자리를 잡고 선 채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넷, 다섯쯤 되는 인원이었고 다들 팔짱을 끼거나 벽에 기대선 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지나가던 남학생 몇이 그 무리를 보고는 황급히 방향을 틀어 돌아가는 게 보였다. 그 반응 자체가 이미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유난히 짧은 치마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정면으로, 정확히 내가 있는 보건실 창문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보다 반걸음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애가 무리의 중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세가 그랬다. 힘을 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팽창한 듯한,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된 자세. 나는 처음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창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애가 하필 이쪽을 보고 있을 확률이 뭐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 그래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확인해봤다.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웃었다. 그 웃음은 반가움도 아니었고 호기심도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걸어둔 낚싯줄에 뭔가 걸렸다는 걸 확인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좋은 예감이 아니었다. 나는 창문에서 물러섰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고 있었다. 방금 뭘 본 거지. 뭘 걸린 거지.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백호남고 보건교사로 배치받아서 넉 달을 조용히 파스나 붙여주며 살아왔을 뿐인데.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그때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그 번호를 한참 노려보다가, 결국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태민 선생님?"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등줄기로 서늘한 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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