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사흘 전, 나는 마지막으로 라이브 방송을 켰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화려함이었는지도 몰랐다.]
"루비님, 회사 진짜 부도난 거예요?"
"루비 언니 괜찮아요? 요즘 왜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헐 저 방금 뉴스 봤는데 진짜예요? 언니 회사 이름 나온 거 맞죠?"
채팅창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고, 화면 오른쪽으로 밀려 올라가는 닉네임들 사이에서 부도, 뉴스, 진짜예요 같은 단어들만 유독 크게 눈에 박혀 들어오는데, 나는 애써 웃는 얼굴을 화면에 고정한 채로, 속으로는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조명은 여느 때처럼 따뜻한 색으로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마이크는 여느 때처럼 내 숨소리 하나까지 예민하게 잡아내고 있었는데, 그 익숙한 세팅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빠와 엄마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나흘째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있었다. 전화를 걸면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면 읽지도 않았고, 집 전화는 아예 끊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채팅창에는 그 이유를 짐작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에이, 그런 소문 어디서 들으셨어요~ 저희 회사 아무 일도 없어요." 나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사실 그날 오후 뉴스에는 이미 우리 회사 부도 소식이 속보로 뜨고 있었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방송 스태프들은 알고 있었을까. 매니저 언니는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걸 삼키고 다시 웃었다.
채팅창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 유난히 눈에 걸리는 댓글 하나가 있었다.
[미레] : 얼굴은 괜찮은데 눈이 웃고 있지 않네요.
짧은 한 줄이었는데, 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다른 팬들처럼 예쁘다는 말도, 힘내라는 말도 아니었고, 그냥... 정확하게 나를 관통하는 한마디였다. 화면 너머로 나를 보는 수백 개의 눈 중에서, 딱 하나만이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그 댓글을 못 본 척 넘기며 방송을 이어갔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문장이 자꾸만 되돌아와 부딪혔다. 눈이 웃고 있지 않다니.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화면 속의 나는, 방금 전까지도 완벽하게 웃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방송 시간은 평소보다 십 분쯤 짧게 끝났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느꼈고,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동안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화면이 까맣게 꺼지고 나서야, 나는 그 계정을 처음으로 눌러보았다.
프로필 사진은 금발로 염색한 여자가 시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팔로워는 20만 명이 넘었고 소개란에는 짧게 '홍대 달콤별 사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게시물은 몇 개 되지 않았고, 대부분 카페 인테리어나 커피잔을 찍은 사진들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웃고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게 다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화면을 닫았고, 그날 이후 사흘 동안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 댓글은 완전히 잊혔다.
사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인생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부서졌다. 첫날에는 집 앞에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대문에 붉은 딱지를 붙이고 갔고, 나는 그 딱지를 손으로 떼어보려 했지만 손톱만 부러졌을 뿐이었다. 둘째 날에는 은행 앱을 켰다가 계좌가 동결되었다는 문구를 보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셋째 날에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리다가 뚝 끊겼다. 그 이후로는 계속 통화 중이거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듯 걸어 나온 끝에, 이름도 모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코트도 없이, 지갑도 없이, 휴대폰 배터리는 이미 방전된 채로.
구두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벤치 앞에서 멈춰 섰다.
우뚝!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고, 시크한 눈매 위로는 두꺼운 아이라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으며, 검은 코트 자락이 바람에 살짝 흩날리고 있었다. 낯이 익었다. 아니, 정확히는 낯이 익은 게 아니라 방금 전까지 내가 떠올리려 애쓰던 그 프로필 사진과 완벽히 같은 얼굴이었다.
"...너." 그 사람이 나를 보며 짧게 말했다. 목소리는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낮고 건조했는데, 그 눈빛만은 이상하게 오래 나를 훑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헝클어진 머리부터 맨발에 가까운 발끝까지,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루비 맞지."
나는 말을 잃은 채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 안쪽이 바짝 말라 있어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풀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가늘고 길었는데, 손톱 끝에 옅은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일어나.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얼어 죽어."
"...누구세요?" 겨우 입을 열어 물었지만, 사실 나는 이미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채팅창에서 봤던 그 한 줄이, 지금 이 순간 다시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미레."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는, 내가 손을 잡기도 전에 내 팔을 붙잡아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그 손힘이 생각보다 세서, 나는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밥부터 먹자. 얘기는 그다음에."
"그런데 어떻게... 저를..." 내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미레는 그저 나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짧게 대답했다.
"방송 봤다니까. 눈이 그렇게 웃고 있는데, 못 알아보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며칠 동안 참아왔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손의 온도가 이상하게 따뜻해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레는 내 팔을 잡은 채로 앞장서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뒷모습을 따라가면서도 계속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스쳐 지나가는 팬이었을 뿐인데, 어째서 이 밤에 나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날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