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팔로워 30만, 노숙 소녀

3화

미레의 손에 이끌려 걷는 동안, 나는 발바닥의 감각이 거의 없어진 채로 그저 그녀의 뒷모습만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몸이 이제는 걷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골목을 몇 개나 꺾어 들어갔는지 세는 것도 포기한 채로 도착한 곳은 홍대 골목 안쪽, 간판에 파스텔톤 별 모양 조명이 촘촘히 박힌 작은 건물이었다. 밤공기 속에서도 그 조명들만은 유난히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별 하나하나가 깜빡거릴 때마다 마치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달콤별'이라고 적힌 그 간판을 올려다보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고, 대체 이 여자가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그리고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달콤한 설탕 냄새와 우유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훅 끼쳐왔고, 그 냄새는 내가 며칠 동안 맡아온 골목의 쓰레기 냄새와 매연 냄새와는 너무나도 다른 종류의 것이어서, 순간 어지러울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프릴 장식이 잔뜩 달린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이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 그들의 치맛자락이 움직일 때마다 자그마한 방울 소리가 짤랑짤랑 울렸다. "주인님, 다녀오셨어요~" 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풍경은, 며칠째 거리에서 떨고 있던 나에게는 거의 다른 행성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눈으로 훑으면서도 발은 문 앞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런 곳에 나 같은 게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기서 일할 거야." 미레가 카운터에 팔을 걸치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여기서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는데, 며칠 만에 처음으로 말을 제대로 뱉어낸 것 같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당황해서 그런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어. 방도 있고, 밥도 나오고, 시급도 나와. 대신 열심히 해야 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뭔가 만족스러운 듯한 기색이 살짝 스쳤다가 사라졌다. 마치 물건을 고르는 사람처럼, 흠 하나 없는지 확인하는 눈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레는 예쁜 얼굴에 유난히 약한 사람이었고, 나를 처음 알아본 것도 결국 그 얼굴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기에, 나는 그저 이 갑작스러운 호의가 무엇을 대가로 하는 건지 몰라 속으로 계속 경계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로... 그냥 있어도 되는 거예요?" 내가 다시 한번 물었을 때, 미레는 피식 웃으며 카운터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자그마한 명찰이었다. "이름은 나중에 정하고. 일단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해." 그녀의 말투는 짧고 건조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이상하게 차갑지 않았다. 그때, 주방 쪽에서 검은 장발을 늘어뜨린 여자애가 걸어 나왔다. 새하얀 피부에 붉은 아이라인, 검은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치마 아래로 삐죽 튀어나온 리본 장식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했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어딘가 절도가 느껴져서, 나는 순간 저 애가 이 가게에서 꽤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쟤가 신입이에요?" 그 애가 나를 힐끗 보며 미레에게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는데, 딱히 반가운 기색도 딱히 불쾌한 기색도 섞여 있지 않았다. "어. 오늘부터 같이 일할 거야, 다솜아. 잘 가르쳐줘." 미레의 말에 다솜이라는 애는 나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짧게 한마디만 남겼다. "...예쁘긴 하네요."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돼서,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솜은 그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로 다시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왠지 저 애와는 쉽게 가까워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첫 근무 날, 나는 앞치마 끈을 제대로 묶지 못해 세 번이나 풀려버렸고, 그럴 때마다 옆에서 지나가던 다른 직원들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앞에서 "주인님, 맛있게 드세요~" 라는 대사를 하려다가 그냥 "드세요"라고만 말해버려서 미레에게 뒤통수를 살짝 맞기도 했다. 탁! "끝까지 말해야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데, 나는 그게 웃는 건지 째려보는 건지 구분이 안 돼서 그냥 고개를 숙이고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연달아 사과를 뱉는 나를 보며 미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에서도 어딘가 못마땅함보다는 어이없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옮기다가 손이 미끄러워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도, 나는 순간 얼어붙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실수 하나로 쫓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다행히 그 장면을 본 사람은 다솜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는, 새 접시에 케이크를 다시 담아 나에게 건넸다. "이번만이에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나는 그 말에 담긴 배려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쟁반을 나르다가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을 때, 다솜이 아무 말 없이 팔을 뻗어 나를 붙잡아준 적도 있었다. 그 손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나는 순간 몸이 통째로 붙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조심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는데,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누군가 나를 붙잡아준다는 것, 그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나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손목에 남은 그녀의 손 온도가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몇 번이나 그 자리를 슬쩍 문질러 보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미레는 나에게 앞으로 지낼 방을 안내해주었다. 카페 뒤편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방이었는데,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 그리고 창문 앞에 작은 화분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미레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는데, 나는 그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밤, 카페 위층에 있는 작은 방에서 처음으로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며칠 만에 처음으로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하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이불 안쪽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낯설어서, 몇 번이나 손끝으로 이불자락을 매만졌다.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자도 되는 걸까... 이 모든 게 다 꿈은 아닐까... 문밖에서 미레와 다솜이 뭔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중 한마디가 유난히 선명하게 귀에 걸렸다. "...근데 저런 애들, 여기 오래 붙어 있던 적 없잖아요." 다솜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미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문이 닫히는 소리에 묻혀버렸고, 나는 그 문장을 이불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 곱씹으며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저런 애들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여기 오래 붙어 있지 못했던 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어둠 속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