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팔로워 30만, 노숙 소녀

5화

메이드카페 특유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오후였다. 딸기시럽과 휘핑크림 냄새가 뒤섞인 그 공기 속에서, 나는 트레이를 손에 들고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손님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프릴이 잔뜩 달린 검은색 원피스에 화이트 에이프런, 머리에는 리본 헤드밴드까지 얹은 차림으로.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옷차림이었지만, 지금은 이게 내 밥벌이였다. 그때,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나는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환영합니다, 주인님—" 하고 인사를 건네려던 참이었는데, 그 말이 목구멍 안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 명. 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얼굴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여자애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머, 진짜 강하윤이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유지원이 입가에 비웃음을 살짝 걸친 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시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에 같은 학교 다닐 때, 내 SNS 사진 아래 늘 하트를 눌러주던 애였는데. 생일이라고 케이크 사진을 올리면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주던 애였고, 나랑 같이 셀카를 찍자며 팔짱을 끼고 웃던 애였는데. 지금 그 눈빛에는 하트 같은 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먹잇감을 발견한 눈빛에 더 가까웠다. "루비 맞지? 팔로워 30만 명 루비." 옆에 있던 다른 애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슬쩍 들어 나를 향해 겨눴다. "회사 망하고 부모님 도망가셨다는 얘기 들었는데, 진짜였구나." 찰칵— 셔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순간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트레이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그 떨림을 감추려고 트레이를 가슴 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겼다.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저 사진, 어디에 올릴 거야. 또 어디에 퍼질까. 이미 늦은 걸까. "메이드카페에서 서빙이라니, 완전 콘셉트 바뀐 거 아니야?" 유지원이 그렇게 말하며 낮게 웃음을 흘렸고, 나머지 두 명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귀에 박혔다. "그 인생 참 파란만장하다, 너. 인스타에는 매일 명품 하울 올리던 애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카운터 위에 놓인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다는 걸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주문하실 거 있으세요, 없으시면 자리로 안내해 드릴까요." 그때, 옆에서 다솜이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며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지만, 그 시선은 유지원 일행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었다. 다솜은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지금 그 침묵은 평소와는 결이 달랐다. 날이 서 있는 침묵이었다. "어머, 얘도 여기 직원이야? 인형 같이 생겼네." 유지원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는데, 다솜은 그 말을 무시한 채 나를 향해 짧게 눈짓을 했다. 자리를 피하라는 신호였다. 눈으로만 주고받은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다솜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그냥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근데 진짜 웃긴 건 뭔지 알아?" 유지원이 목소리를 낮추며 나에게 한 발 다가섰다. 향수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다. 예전에도 늘 뿌리던, 익숙한 향이었다. "너 부모님, 그냥 잠적한 거 아니라던데.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원래부터 계획된 거였대. 너만 몰랐던 거지." 탁.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주문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되씹으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계획된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부모님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나만 몰랐다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로,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몰라, 그냥 들은 얘기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유지원은 그렇게 얄궂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말이 나에게는 칼날처럼 박혔다. 그녀는 그걸 알고 있을까. 아니, 알아도 상관 안 하겠지. "어쨌든 반가웠어, 루비. 아니,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 말끝에 담긴 조롱을 나는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었다. 귀 안쪽이 웅웅 울리는 것 같았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듯 잡았다. 크고, 단단하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미레가 서늘한 표정으로 유지원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손님들 앞에서 늘 상냥한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주문 안 하실 거면 나가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는데, 그 안에 담긴 분노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뚜렷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얼음처럼 매끈하면서도 서늘했다. 유지원 일행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결국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떠났다.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계획된 거였대.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사라진 게, 정말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믿고 있었던 걸까. 그 회사가 망한 것도, 부모님이 갑자기 연락을 끊은 것도, 전부 예정된 각본이었다는 건가. 그럼 나는 왜 그 각본에서 빠져 있었던 거지. "하윤아." 미레가 나를 부르며 어깨에 올린 손에 살짝 힘을 주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그저 손에 쥐고 있던 주문서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겨진 종이 위에 적힌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이, 지금 내 머릿속처럼 뒤엉켜 보였다. "괜찮아? 하윤아, 내 말 들려?" 다솜도 어느새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와중에도,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삑ㅡ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그 짧은 진동이,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신호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낯선 번호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였다. [강하윤 씨 맞으시죠? 부모님 채무 관련해서 급히 연락드립니다.] 화면 위에 뜬 그 짧은 문장을 나는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손끝이 다시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눈은 그 글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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