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 교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어쩌면 앞으로의 모든 하루도 나는 혼자일 거라는 걸 말이다. 문을 여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그 작은 소음 하나에도 몇몇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 이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무심하게 흩어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대전 한빛고등학교 1학년 3반, 창가에서 세 번째 줄, 담임이 손끝으로 가리킨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도 나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 스치듯 나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는데, 그 시선들에는 관심보다는 무심함이 더 많이 섞여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관심을 받는 것보다 무시당하는 게 익숙했으니까.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삐끗, 하고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에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했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옮겨 온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짐을 다 풀지도 못한 방에서 자다 깨다 하며 등교 준비를 했고, 새 교복의 옷깃이 유난히 뻣뻣하게 목을 긁는 것 같아 자꾸만 손이 그쪽으로 갔다. 아직 상표 태그도 다 떼지 못한 셔츠에서 나는 화학섬유 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었는데, 그 낯선 냄새가 마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 같아 나는 몇 번이나 코를 문질렀다. 친구, 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입에 담아본 게 언제였는지도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오래된 일 같았고, 그 낯선 단어를 혀 위에 굴려볼 때마다 이상하게 목이 탔다.
교실 안은 아직 낯선 얼굴들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 책상을 두드리며 장난치는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까지도 전부 낯설게만 느껴졌고, 나는 그 모든 소리 속에서 나만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자꾸 곱씹었다. 도대체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이런 방식으로 새 학교에 오게 된 걸까. 서울에서라면 익숙했을 그 어떤 것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만 가슴을 짓눌렀다.
도대체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자기소개를 시켜야 하는 걸까.
담임이 칠판에 내 이름 세 글자를 적으며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을 때 나는 짧게 숨을 삼켰다. 칠판에 분필이 긁히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려왔고, 정우진, 이라는 세 글자가 흰 분필 자국으로 남는 걸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그 글자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저게 정말 내 이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반 전체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에게로 쏠리는 그 순간,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긴장이 몰려왔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교탁 앞에 섰지만 정작 입을 열자마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교탁을 짚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오는 걸 느끼며, 나는 애써 시선을 아이들의 얼굴이 아닌 뒤쪽 벽시계에 고정했다.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정우진입니다. 서울에서, 전학… 왔습니다."
말끝이 흐려지는 걸 스스로도 들으면서 나는 얼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더 해야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취미라든가 좋아하는 것이라든가 그런 흔한 말들조차 이 순간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이 웅얼거리듯 웃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게 나를 향한 조롱인지 그냥 지루함의 표시인지 구분할 정신도 없이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럴리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심장은 한참을 쿵쾅거렸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교탁 쪽을 다시 쳐다보기도 싫어서 나는 애꿎은 책상 모서리만 손끝으로 문지르고 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 아이들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어색하고 초라한, 그저 스쳐 지나갈 전학생 하나로 기억될 뿐이겠지, 하는 자조적인 결론에 다다르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걸 느끼며 나는 필통을 꺼내는 척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낡은 필통 겉면에는 예전부터 붙여둔 스티커 하나가 있었는데, 인디 게임 「이터널가든」의 주인공 캐릭터가 작게 그려진 것이었다. 모서리가 조금 닳고 색이 바랬지만 나는 그걸 떼어낼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게임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그 스티커를 떼지 않고 계속 붙여두었는지도 몰랐다. 아무도 관심 없을 테니까. 관심 없을 게 당연한, 그런 조용한 취향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었던 걸까.
그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내 책상 위로 드리워졌다.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또 무슨 일인가, 하는 불안한 예감이 먼저 스쳤고 나는 고개를 들기까지도 잠깐의 망설임이 필요했다.
"어, 이거 이터널가든 아니야?"
낯선 목소리가 밝고 또렷하게 물었다. 고개를 들자 짧은 머리에 보이시한 인상을 가진 여학생이 내 필통을 손끝으로 가리키고 있었는데,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눈만 크게 떴다. 짙은 눈썹 아래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곧장 나를 향해 있었고, 그 시선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내 필통과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고 있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맞지? 나 이거 엔딩까지 다 깼는데."
그녀가 씩 웃으며 옆자리 의자를 끌어와 앉았고, 나는 그 갑작스러운 접근에 심장이 이상하게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그 소리에 반 아이들 몇이 다시 이쪽을 힐끔거렸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왜, 하필, 나한테.
"…어. 맞아." 겨우 짧게 대답했을 뿐인데 그녀는 이미 신이 나서 게임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챕터의 보스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숨겨진 엔딩을 보려면 어떤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지,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말들을 절반도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그녀의 표정, 눈빛, 손짓 하나하나에 시선이 자꾸 붙잡히는 걸 느꼈고, 그게 스스로도 낯설어서 손끝을 말아쥐었다.
이상했다. 낯선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심장이 자꾸 반응하는 것도. 나는 손끝으로 필통 지퍼를 만지작거리며 애써 시선을 그녀의 얼굴이 아닌 손끝으로 옮겼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자꾸만 내 귀를 붙잡아 세웠다.
뒤쪽 자리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아, 뭐 해?"
그 목소리에 그녀가 잠깐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처음으로 반 전체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나에게로 향하는 걸 느꼈다. 몇몇은 신기하다는 듯, 몇몇은 별일이라는 듯 눈빛을 주고받았고, 나는 그 시선들 속에서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좀 있다 갈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편안하게 움직이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무런 거리낌 없이 흘러나오는지를 자꾸 의식하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이름이 이서연이라는 것과, 앞으로 이 이름이 내 하루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거라는 사실을 아직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고, 나는 그 순간 어쩐지 낯선 두려움과 낯선 설렘이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일렁이는 걸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나는 아직 이름 붙일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