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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다음 주 토요일, 약속대로 이서연은 한소율을 데려왔다. 시내 카페 창가 자리에 셋이 나란히 앉아 조 모임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소율이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유쾌한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반의 태양이라 불리는 아이가 이렇게 가까이서 웃고 떠드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곁에서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카페 안은 사람들로 적당히 붐볐고, 커피 향과 낮은 음악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소율은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발표 자료를 정리하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걸었는데, 그 말투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나는 몇 번이나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서연은 그 옆에서 자료를 뒤적이며 웃음을 터뜨렸고, 두 사람의 대화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상하게 숨이 찼다. "우진이 너, 되게 조용하다. 서연이가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너는 별로 말이 없네." 소율이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나는 순간 얼굴이 굳는 걸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 이런 성격이라." "괜찮아, 서연이가 워낙 밝아서 옆에 있으면 다들 조용해지더라." 소율이 웃으며 서연의 어깨를 쿡 찔렀고, 서연은 그 손을 툭 밀어내며 웃었다. 둘 사이의 그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오랜 시간 쌓인 편안함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 목이 탔다. 손끝이 저릿했고,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삼켰지만 갈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그림 앞에 처음 서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 둘의 시간 속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웃음소리에 맞춰 고개만 끄덕였다. 조 모임 발표 자료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갈 즈음, 소율이 문득 시계를 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 이제 학원 가야 해서. 둘이 마무리하고 있어." 그녀는 노트북을 접고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가는 길에 다시 한번 서연의 팔을 툭 치며 뭔가 귀엣말을 했다. 서연은 그 말에 잠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웃음으로 넘겼는데, 그 짧은 표정 변화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조 모임이 끝나고 소율이 먼저 자리를 뜬 뒤, 서연과 나는 카페에 조금 더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고, 카페 안의 온도가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서연은 한동안 창밖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소율이랑 나, 되게 오래된 친구야. 걔가 전학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붙어 있었거든." 서연이 창밖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해." "다르다니?" 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 그냥. 신경 쓰지 마." 말끝이 흐려지는 걸 듣는 순간 나는 뭔가 더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서연의 손끝이 테이블 위 컵을 무의미하게 매만지는 걸 보면서, 나는 그 손이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대신 화제를 돌려 다음 주 서점에 다시 가자는 이야기로 넘어갔고, 서연은 금세 밝은 얼굴로 돌아와 그날 신작 게임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 화사한 웃음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 건지, 나는 끝내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날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녀가 말끝을 흐렸던 그 순간을 계속 곱씹었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그 짧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르다는 게 뭘까, 소율이랑 뭔가 어긋난 게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내 착각인 걸까. 확신할 수 없는 짐작들만 머릿속을 떠돌았고, 나는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다. 다음 날 월요일 교실에서, 나는 준혁의 옆자리에 앉으며 무심코 지난 주말 이야기를 꺼냈다. "서연이랑 소율이랑 셋이 카페 갔었어." 그 말에 준혁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진짜? 셋이서?" "어, 왜?" 내가 묻자 준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요즘 소율이랑 서연이 사이가 좀 이상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준혁의 그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상하다니, 어떻게?" 되묻자 준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아꼈다. "자세히는 모르는데, 소율이가 요즘 서연이한테 좀 서운한 게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너랑 서연이가 자주 붙어 다니는 것 때문일 수도 있고." 나 때문에,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손끝이 저절로 말아 쥐어졌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준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애써 그 말을 잊으려 했지만 쉬는 시간마다 소율의 표정을 슬쩍 살피게 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게 웃고 있었지만, 서연이 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그 웃음이 아주 잠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굳는 것 같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아챘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급식실에서 스쳐 지나갈 때도, 소율은 여전히 밝게 손을 흔들어주었지만 그 눈빛 어딘가에 옅은 그늘이 스치는 것 같았다. 그럴리가,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시 내가 서연과 가까워지는 걸 소율이 불편해하는 걸까, 아니면 둘 사이에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걸까. 온갖 물음이 떠올랐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했고,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냈다. 종례가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데, 준혁이 다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우진아, 너 혹시…" 말을 꺼내다가 그는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나중에 얘기하자." 그렇게 얼버무리고 자리를 뜨는 준혁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걸 느꼈다. 교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그 말줄임표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뭔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놓쳐버린 듯한 불안감을 안고 텅 빈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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