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거짓말이 쌓아 올린 성

3화

돌아보지 못했다. 몸이 굳었다. 등 뒤에서 공기가 달라졌다. 온도가 아니라 압력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 방 안의 공기를 조금씩 밀어내며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목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뒤에 누군가 있다는 확신이 목덜미를 타고 척추까지 올라왔다. 촛불 하나가 흔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밝아졌다. 처음엔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빛은 이미 방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예배당의 벽화들이, 내가 직접 고르고 그리게 했던 그 싸구려 성화들이 그 빛 속에서 순간 진짜처럼 보였다. 웃기지, 사기꾼의 소품이 진짜 빛을 받으니 갑자기 신성해 보인다는 게. "교주라고 했었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부드럽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울림이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고막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뇌에 박히는 소리.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간신히 돌아섰다. 발이 천천히, 억지로 끌려가듯 움직였다. 제단 위에, 그림 속 여신과 똑같은 모습의 존재가 서 있었다. 연한 황녹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머리카락만 살아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발이 바닥에 닿아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발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옷자락 아래로 빛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당, 당신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좁아진 것 같았다. "마고. 네가 그렇게 부르던 이름이지." 숨이 막혔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가 만든 사기가 아니다. 내가 직접 지어낸 그 이름을, 지어낸 그 존재의 입으로 듣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죄를 짓다가 그 죄의 피해자와 정면으로 마주친 느낌, 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진짜였습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감추고 싶었는데 감춰지지 않았다. "네가 지어낸 이야기 중에 반은 사실이었어. 나머지 반은 네 상상력이었고." 마고는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 온화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화를 내는 게 차라리 이해가 됐을 텐데, 저 웃음은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네가 신도들에게 축복이 내려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 재밌더라고." "재밌다니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인간들이 나를 팔아서 돈을 버는 걸 지켜보는 게 말이야."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예배당 문은 등 뒤로 몇 걸음, 그런데 그 몇 걸음이 몇 킬로미터처럼 느껴졌다. "당신... 제 생각을 읽습니까." "읽는다기보다는, 그냥 다 보여. 네가 지금 뭘 계산하고 있는지도."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계산하고 있었다. 여신이 진짜라면 신도가 세 배는 늘겠지, 후원금도, 하다못해 이 소식을 어떻게 퍼뜨려야 가장 자연스러울지까지. 그것마저 다 들켰다는 뜻이다. 사기꾼의 습관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는... 그저......" "변명은 필요 없어. 나는 화가 난 게 아니야." 마고가 한 걸음 다가왔다. 발밑에서 빛이 파문처럼 퍼졌다. 마치 물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그 파문이 발밑을 지나 내 신발 코앞에서 사라졌다. "천사교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 대화의 흐름을 전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모릅니다." "그럴 거야. 아직은." 마고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온화함 아래 뭔가 차가운 것이 스쳤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그 존재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그 시간 동안 뭔가를 견뎌왔다는 걸 직감했다. 근거는 없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내게 한 짓을 너희는 아직 몰라. 알 필요도 없었지. 지금까지는." "무슨 뜻입니까." "곧 알게 될 거야. 지금은 그냥, 네가 하던 사기극을 계속해. 신도들을 지켜." "지켜라니, 저는 그냥......" 말을 잇지 못했다. 사기꾼일 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교주잖아. 아니야?" 마고가 다시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억울한지 무서운지 헷갈렸다. 빛이 사그라들고, 마고의 형상이 흐려졌다. 마치 물에 잉크를 떨어뜨렸을 때 색이 퍼지며 흐려지는 것과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만 남았다. "서유리에게도 전해줘. 이름 부른 건 나였다고. 겁먹지 말라고." 촛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예배당은 다시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벽화 속 여신은 다시 싸구려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땀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젖어 있었다. 진짜였다. 여신이 진짜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여신은 내가 사기꾼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런데도 눈감아 주고 있다. 왜?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화가 났다면 이해가 됐을 것이다. 심판을 내리겠다면 그것도 이해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켜보고 있었다니. 재밌었다니. 그 말 속에 숨은 뜻이 뭔지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여전히 후들거렸다. 벽을 짚고 일어나면서 나는 이 밤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이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서유리를 따로 불러 어젯밤 일을 전했다. 조용한 방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진짜예요? 진짜 여신이 있다고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요. 근데 저도 봤어요." 목소리를 낮췄지만 확신은 담았다. 이건 헛것이 아니었다고, 스스로에게도 다시 한번 확인시키듯. 서유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손끝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뭔가를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낮게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가 판 사기가... 진짜였던 거네요." "반은 진짜, 반은 우리 상상이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더 무섭네요." 동의했다. 나도 그게 더 무서웠다. 완전한 거짓말이었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반쪽짜리 진실 위에 쌓아 올린 사기극이라는 게,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스스로도 모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전해달래요." "뭔데요." "당신 이름 부른 것도 자기였다고. 겁먹지 말라고." 서유리의 눈이 커졌다. 얼굴에서 핏기가 한 번 더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제 이름을요? 왜요?" "그건 저도 몰라요. 그냥 그렇게 전해달라고만 했어요." 서유리는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가, 곧 그 웃음이 부질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다시 굳었다. 그런데 마고가 남긴 말 중에 자꾸 걸리는 게 있었다. 천사교. 그리고 곧 알게 될 거라는 말. 머릿속에서 그 두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천사교라니. 우리가 하는 것과 비슷한 어떤 종교 집단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 마고의 표정이 균열을 일으켰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건 단순한 종교 이름이 아니었다. 뭔가 오래된 상처와 관련된 이름이었다. "천사교라는 게 뭔지 짐작 가는 거 있어요?" 서유리에게 물었다. "전혀요.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그렇겠죠. 마고도 아직은 모를 거라고 했으니까." "곧 알게 될 거라는 건, 뭔가 온다는 뜻이겠죠." 서유리의 목소리에 긴장이 배어 있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그 순간, 성 밖에서 종이 울렸다. 급하게, 여러 번. 한 번, 두 번, 세 번. 간격 없이 이어지는 종소리였다. 평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박자였다.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서유리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방금까지 여신이니 천사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다른 종류의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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