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물이 목구멍으로 밀려들었다.
차갑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무거웠다.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도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아이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힘이 점점 약해졌다.
반대로 시야는 점점 어두워졌다.
살려야 한다.
그 생각 하나만 남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온통 붉은빛이었다.
따뜻하고, 좁고, 축축했다.
숨을 쉬려 해도 뭔가에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뭐야 이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팔다리가 짧고 뭉툭했다.
손가락을 펴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절이라는 게 아직 관절 노릇을 못 하는 느낌이었다.
설마.
짐작이 맞았다.
다시 태어난 모양이었다.
말이 되나.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게.
의심할 틈도 없이 몸이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
으앙.
울음소리가 터졌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울음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울음을 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성대가, 폐가, 목이 시우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태어났어요! 여보, 우리 애가 태어났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부서졌다.
울음 섞인 웃음소리였다.
“고생했어, 서아.”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손이 조심스레 몸을 감쌌다.
크고 두꺼운 손이었다.
닿는 순간 열기가 느껴졌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했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전생에서는 손이 닿으면 늘 아팠다.
뺨을 맞거나, 팔을 잡히거나.
그 손들은 하나같이 차가웠다.
따뜻한 손은, 기억을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다.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갓 태어난 몸으로도 그 생각만큼은 또렷했다.
“의사 선생님, 애 상태는 괜찮은가요?”
서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산모도 아기도 건강합니다. 걱정 마세요.”
낯선 목소리가 답했다.
방 안에 사람이 몇 있는 모양이었다.
발소리가 오갔다.
쇠붙이 부딪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전생과는 확실히 다른 공간이었다.
“우리 아기, 눈이 벌써 이렇게 또렷해.”
서아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둥근 눈매, 웃을 때 살짝 접히는 눈꼬리.
낯선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좋아해.
그게 이상했다.
부모라는 존재가 자식의 탄생을 이렇게 반긴다는 것.
전생의 기억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전생의 부모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생일이 언제인지도 헷갈려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름도 모르는 존재를 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보, 이리 와서 좀 봐요.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도 다섯 개.”
“당연히 다섯 개지, 뭘 그렇게 세고 있어.”
“그래도 확인해야죠. 얼마나 소중한 애인데.”
두 사람의 대화가 시우의 귓가를 스쳤다.
소중하다는 말.
그 말이 낯설게 얹혔다.
“강시우.”
남자가 이름을 불렀다.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오늘부터 네 이름이다. 강태오, 이 아빠 이름 따서 짧게 지었어. 부르기 쉽게.”
부르기 쉽게라니.
그런 이유로 이름을 짓는 부모도 있나.
이름 하나 짓는 데도 몇 날 며칠 고민한다던데.
이 남자는 그런 고민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밉지 않았다.
시우는 눈을 껌뻑였다.
갓난아기의 시야는 흐릿했지만 감각만은 살아 있었다.
방 안에 떠도는 미약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지 모를 떨림 같은 것.
피부 안쪽에서부터 울리는 진동이었다.
손을 뻗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끝이 아버지의 손바닥에 닿았다.
화악.
손끝에서 작은 빛이 일었다.
노란빛도 아니고 붉은빛도 아닌, 이상한 빛깔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분명 있었다.
“……태오.”
서아의 목소리가 굳었다.
“봤어?”
태오도 눈을 크게 뜬 채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아기의 손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야, 방금 그건.
시우 자신도 놀랐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반응했을 뿐이었다.
마치 몸 안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또 하나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마력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는데.”
태오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병에 걸린 건 아니겠죠?”
서아의 목소리에 걱정이 스몄다.
그녀는 아기의 손을 조심스레 펴 보았다.
손바닥을 몇 번이나 문질러 확인했다.
“열도 없고, 색도 정상인데.”
태오가 아기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뭔가를 감지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력의 흐름이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이야. 이렇게 갓 태어난 애가.”
하지만 곧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축복받은 아이라는 뜻이겠지.”
태오가 아기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우리 아들, 아주 특별하게 태어났구나.”
특별하다는 말.
전생에서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
없었다.
칭찬 대신 매를 들었고, 관심 대신 방치가 있었다.
그런 부모 아래서 자라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대신 죽었다.
그 아이러니가 아직도 생생했다.
남을 구하고 죽은 자신이, 정작 자기 목숨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아이러니.
살릴 수 있었던 건 아이뿐이었고, 정작 자신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이 녀석, 우는 것도 야무지네.”
태오가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당신 닮아서 그런가 봐요.”
서아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내 어디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목소리 큰 거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웃음, 얼마나 갈까.
시우는 속으로 되물었다.
전생에서 부모가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있었나 떠올려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있었다 해도 자신을 향한 웃음은 아니었을 거다.
좋아, 지켜보자.
이 사랑이 진짜인지, 언제까지 가는지.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었다.
갓난아기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지켜보는 것 말고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이 웃음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잠깐의 감상인지.
아기가 자라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면 저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우는 조용히 다짐했다.
믿지는 않겠지만, 지켜보기는 하겠다고.
“이름은 정했으니까, 이제 정식으로 신전에 등록해야겠네요.”
서아가 태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다녀오자. 오늘은 좀 쉬어.”
“당신도요.”
“나야 뭐, 밖에서 기다리기만 했는데.”
“그것도 힘든 일이에요.”
대화가 잦아들었다.
아기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아기의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날 밤, 남작가 저택의 불빛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부모의 웃음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창밖으로는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밤, 저택 지붕 위로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가 이내 자취를 감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새는 날카로운 눈으로 저택의 창문을 한동안 응시했다.
그러다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날갯짓 소리조차 남기지 않은 채였다.
무엇을 보고 간 것인지,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인지.
그 답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