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부모님 기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올 무렵, 까망도 떠났다.
노환이었다. 열네 살이면 오래 산 거라고 동물병원 원장이 말했을 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위로랍시고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반박할 기운이 없었다. 사실 반박할 말도 없었다. 열네 살짜리 믹스견이 그 이상 버텨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일주일 전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밥그릇 앞에 앉아서도 몇 번 냄새만 맡고 돌아섰고, 좋아하던 산책에도 더는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때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지금도 가끔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그냥 늙어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늙으면 다 그런 거니까.
부모님은 3년 전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였다. 뒤늦게 보험사 직원이 찾아왔고, 나는 그 사람이 내미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서도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읽지 않았다. 손해배상금이 얼마인지, 어디에 서명하면 뭐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런 건 그때 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저 종이 위에 이름 세 글자를 적었을 뿐이다. 그때 옆에서 낑낑거리며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던 게 까망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개가 사람 마음을 안다는 말을 믿게 됐다.
그러니 부모님을 잃었을 때보다 까망을 잃었을 때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는 게, 스스로도 좀 우스웠다. 부모님이 덜 소중해서가 아니라, 까망이 그 뒤로 3년 동안 나와 함께 버텨준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나름 정당화해봤지만 그래도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였다.
장례식장 대신 화장터를 다녀온 날 밤, 나는 유골함을 침대 옆에 올려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손바닥만 한 항아리 하나가 방 안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이 됐다. 화장터 직원이 유골함을 건네주면서 "강아지 상실 증후군이라는 게 있는데요" 어쩌고 하는 안내문을 같이 줬는데, 나는 그걸 받아서 어디 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회사에는 안 나갔다. 그다음 날도 안 나갔다. 사흘째 되는 날 팀장한테서 문자가 왔다. 무단결근 처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계약직이었고 월세는 두 달치가 밀려 있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것도 그만뒀다. 확인해봤자 늘어나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 굳이 숫자를 눈으로 보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 삶은 딱 두 가지 무게로 나뉘어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상실감,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굴러가는 생계. 신기한 건 그 둘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슬픔에 잠식된 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편의점 삼각김밥 유통기한은 정확히 지나갔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아까워서 먹었고, 먹으면서 또 울었다. 눈물과 밥알이 동시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느낌은, 살아본 사람만 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있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울다가도 라면을 끓였고, 라면을 먹다가도 울었다. 심지어 라면이 짜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세상이 무너진 와중에도 미각은 살아 있었다. 그게 더 서글펐다.
그렇게 보름쯤 지난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유골함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웅웅거리는, 벌레 소리도 아니고 기계음도 아닌 소리였다. 처음엔 옆집 냉장고 소음인가 싶어서 무시했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커졌고, 벽을 타고 진동이 느껴질 정도가 됐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방바닥에 빛이 번지고 있었다.
처음엔 형광등 문제인가 싶었다.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봤지만 빛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빛은 점점 동그란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고, 그 안에 이상한 문양들이 새겨졌다. 본 적 없는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것들이 바닥을 따라 흐르듯 움직였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놀랄 기운도 없었으니까. 며칠 밤을 제대로 못 잔 사람 특유의 무감각이었다.
"이거 뭐야."
중얼거리는 순간 원이 갑자기 확 커졌다. 발밑 바닥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유골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팔로 꽉 감쌌고, 그게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서울에서의 행동이었다. 침대 프레임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걸 보면서도 손을 뻗을 생각조차 못 했다. 이상하게 그 순간엔 두려움보다 이 유골함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빛에 휩싸이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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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커다란 원형 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사방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대리석 같기도, 유리 같기도 한 바닥은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 잔물결처럼 빛을 튕겨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수십 명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다들 방금까지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들이었다.
누군가는 잠옷을 입은 채였고, 누군가는 정장 차림이었다. 한쪽에는 앞치마를 두른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아직 교복을 입은 학생도 보였다.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놀랐다기보다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못 하는 얼굴들.
나는 품에 안은 유골함을 슬쩍 내려다봤다.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그게 제일 다행이었다.
"저, 여기 어디예요?"
내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른다는 뜻이었는데, 그 남자는 그걸 위로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니, 사람은 참 위기 앞에서도 뭐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다.
[그대들을 이 세계로 부른 것을 사죄하며, 동시에 축복하노라.]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사람 목소리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이 동시에 울려서 마치 합창처럼 들렸는데, 그 어느 성부도 인간의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유골함을 여전히 품에 안은 채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찾으려 애썼지만 정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을 봐도, 바닥을 봐도, 벽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는 있는데 근원은 없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낮게 흐느꼈고, 누군가는 옆 사람 팔을 붙잡았다. 나는 그저 서 있었다.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이곳은 아르카나 대륙이니라. 그대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니라.]
새로운 삶. 그 말이 참 편리하게 들렸다. 마치 이사 온 사람한테 "여기서 잘 지내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월세 밀린 원룸에서 갑자기 이세계로 끌려온 사람한테 새로운 삶이라니, 그게 위로가 될 거라고 진짜 생각한 걸까.
"저희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있나요?"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목소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아주 짧은 간격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마치 준비된 대본에 없는 질문을 받은 사람이 잠시 말을 고르는 그 틈 같았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겠노라.]
분위기가 이상했다. 대답이 대답 같지가 않았다.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소리쳤고, 또 누군가는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상황이 그냥 이상한 꿈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품 안의 유골함이 갑자기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가져온 거라곤 이 항아리 하나뿐인데,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저렇게 애매하게 흘리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서서히 명치까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