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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새벽 종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뜨는 건 습관이었다. 창밖은 아직 검푸르다. 귀 끝이 시렸다. 이불이라고 부르기엔 낡은 천 한 장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어둡고 좁았다. 발을 뻗으면 벽에 닿는 방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 방이라도 있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싶다가 이내 그런 생각을 접었다. 다행이라 여기는 순간 정말로 다행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꼬리가 저절로 움찔거렸다. 오늘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심장보다 꼬리가 먼저 뛰는 날이 있다는 걸, 나는 이 몸으로 살면서 알게 됐다. "일어났으면 물 길어와." 외숙모 연옥의 목소리가 부엌 쪽에서 날아왔다. 대답 대신 몸을 움직였다. 대답을 해봐야 돌아오는 건 잔소리뿐이라는 걸 아홉 해 넘게 배웠다. 아홉 해. 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물동이를 지고 우물까지 걷는 길, 고양이 귀가 자꾸 소리를 주워 담았다. 바람 소리, 새 소리,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수다. 오늘 천명의식이 열린다는 이야기. 누구네 아이는 검술 스킬을 받을 거라고, 누구네 아이는 상단 스킬을 받아 벌써 팔자가 폈다고. "올해는 또 누가 대박 나려나." "글쎄, 촌장님 댁 손자는 벌써 검기 재능이 있다고 소문났던데." "그 집 애야 뭐, 태어날 때부터 다르지." 나는 그 대화 속에 내 이름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아무도 나를 걸고 내다볼 만큼 궁금해하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건 편한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으니까. 우물에 도착해서 두레박을 내렸다.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도르래 소리와 섞였다. 철컹, 철컹. 동아줄이 팽팽해질 때마다 손바닥이 아렸다. 우물물을 길어 돌아오는 길, 사촌 도현이 마당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날렵했다. "너도 오늘 의식 받는 거 맞지?" 도현이 목검을 휙 내리며 물었다. "응." 짧게 대답했다. "별 거 안 나오겠지만." 그가 픽 웃었다. 비웃음이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넌 뭐 받을 것 같아?" 그가 다시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걸 받을지 자랑하기 위한 밑밥. "몰라." "난 검술 계열일 거야. 삼촌이 그러셨거든, 우리 집안은 원래 무재가 있다고." 그 말에 담긴 뜻을 모를 만큼 어리지 않았다. 우리 집안이라는 말 속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물동이를 부엌에 내려놓는데 손끝이 떨렸다. 추워서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어릴 때부터 이상한 꿈을 꿨다. 밝은 화면 속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누르는 꿈. 작은 상자가 문 앞에 도착하는 꿈. 누군가가 "오늘 주문하면 내일 온대"라고 말하는 목소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인데도 익숙했다. 가끔은 그 꿈이 진짜 기억처럼 느껴져서 무서웠다. 숙모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어떻게 됐냐며 손찌검을 했다. "그런 헛소리 자꾸 하면 진짜 머리가 돈 줄 알겠어."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그냥 삼켰다. 삼키는 것도 습관이 되면 쉬워진다. 처음엔 목에 걸리던 것도 나중엔 그냥 넘어간다. "밥 차려." 연옥이 부엌 문턱에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팔짱을 낀 자세, 눈을 가늘게 뜬 표정. 저 얼굴을 보면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긴 힘들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의식 끝나면 너도 쓸모를 증명해야 할 거다." 말투에 기대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만약 쓸모가 없다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끝맺지 않아도 알았다. 그 말줄임이 어떤 뜻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물어봤다가는 대답을 듣게 될 테니까. 밥상을 차리는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그릇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갈라졌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해서 뭘 하겠다는 거야." 연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습관이었다. 마음속에서는 다른 말이 맴돌았다. 그릇 하나 깬 걸로 이렇게까지 말할 건 뭔데, 라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말들은 다 어디로 갈까. 언젠가는 쌓여서 터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접었다. 터진다고 뭐가 나아지겠나. 깨진 그릇 조각을 주우면서 손끝을 베였다. 따끔했다.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아프다는 감각이 오히려 반가웠다. 적어도 이건 확실한 감각이었으니까. 밥을 먹는 시간에도 나는 앉지 않았다. 부엌 구석에 서서 남은 죽 한 그릇을 훌쩍였다. 식어서 미끈거리는 맛이었다. 그래도 배는 채워야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오늘 같은 날은, 이라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정확히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뭔가 일어날 거라는 예감뿐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마을 사람들이 하늘사당 쪽으로 모여들었다. 열 살이 된 아이들이 줄을 서고, 그 뒤로 부모나 보호자들이 서 있었다. 사당으로 가는 길목마다 색색의 천이 걸려 있었다. 오늘을 축제처럼 꾸미려는 마을의 마음이었다. 나는 연옥의 뒤를 따라 걸었다. 보호자라고 부르기엔 이상한 관계였지만, 형식은 형식이었다. 걷는 동안 귀가 자꾸 뒤로 눕혔다. 두려움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먼저 그렇게 반응했다. 지나가던 아이 하나가 나를 힐끔 보고는 옆의 부모에게 뭐라고 소곤거렸다. 들리진 않았지만 어떤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쟤가 그 애야, 어디서 주워온. 사당 앞에 다다르자 노사제 건이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세웠다. 그의 목소리는 늙었지만 여전히 무게가 있었다. "오늘 너희는 신의 뜻을 받는다." 건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받은 스킬이 곧 너희의 길이 될 것이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한 아이가 손을 수정석에 얹고 밝은 빛을 뿜어내며 웅성거림을 만들었다. 검술 스킬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감탄했다. "역시 그 집안이지."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다른 아이는 치유 스킬을 받고 부모가 얼싸안았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부러움조차도 사치 같았다. 도현의 차례가 왔다. 그가 어깨를 쭉 펴고 걸어 나갔다. 손을 얹자 붉은 빛이 일렁였다. 검술 계열이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라는 표정들. 도현이 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는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됐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연옥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기대라는 감정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눈이었다, 무엇이 나오든 판단하기 위한. 그 시선을 받고 있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리기 전에 품질을 확인당하는 물건. 앞의 아이가 물러나고, 건이 나를 불렀다. "하린." 내 이름이 낯설게 울렸다. 오늘 처음으로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펐다. 이름을 불릴 일이 이렇게 드물다는 게. 수정석 앞으로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자갈이 밟혀 서걱거렸다. 손끝이 시렸다. 아니, 손끝만이 아니라 온몸이 시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저 애가 뭘 받을까, 하는 무심한 궁금증들. 돌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표면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무언가가 몸속에서 반응했다. 빛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 빛의 색이 이상했다. 다른 아이들의 것처럼 눈부신 금빛이 아니라, 흐릿한 회색빛이었다. 사당 안이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마저 멈춘 것 같았다. 건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회색빛이 손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허공에 흩어졌다. 그 빛은 어떤 형체도 만들지 못했다. 검도, 불꽃도, 아무런 상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흐릿하게 번지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주변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저게 뭐야." "스킬이 안 뜨는 건가." 연옥의 시선이 등에 화살처럼 꽂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건이 천천히 다가와 내 손을 들여다봤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을 봤다. 수십 년을 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지켜봤을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나는 그것이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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