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숲은 걸을수록 낯설어졌다.
나무들의 간격이 좁아지고, 하늘이 점점 가려졌다.
발밑의 낙엽이 젖어 있어 발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얼마나 걸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해가 진 뒤부터는 시간의 감각도 흐릿해졌다.
전생에도 이런 식으로 길을 잃어본 적은 없었다.
그때는 적어도 지도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배가 고팠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추위였다.
입고 있는 옷은 얇았고, 밤이 되자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팔을 감싸안았지만 소용없었다.
살을 파고드는 냉기가 뼈까지 닿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에 손을 짚으며 걸었다.
껍질이 손바닥을 긁었다.
아프다는 감각조차 둔해져 있었다.
숲의 냄새가 이상했다.
습한 흙냄새와 다른, 비릿하고 미묘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코를 찌르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귀가 계속 그 방향을 향해 곧추섰다.
이상하다.
분명 처음엔 벌레 우는 소리가 있었다.
발밑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숲이 너무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밤숲은 벌레 소리, 새 소리, 뭔가는 있어야 정상인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
마치 모든 생물이 숨을 죽인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무 그림자들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인가.
아니면 정말 그런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이상하게 흐릿했다.
마치 얇은 막이 하늘 전체를 덮은 것 같았다.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뒤져봐도, 이 세계에서 배운 것 중에도 이런 현상은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몸 안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위험한 상황을 몇 번 넘겨봤기에 안다.
이건 무시하면 안 되는 신호다.
걸음을 서둘렀다.
이상한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느 쪽으로 왔는지, 어느 쪽이 마을 방향인지조차 헷갈렸다.
발밑을 보며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나무 사이로 낯익은 지형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걸었던 길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길을 잘못 든 거지.
낙엽 밟는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였다.
뭔가 무거운 것이 움직이는 소리.
걸음을 멈췄다.
숨을 죽였다.
소리가 멈췄다.
착각이었나.
숨을 조심스레 내쉬었다.
그 순간.
다시 걸으려는 순간,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붉은빛이었다. 사람이나 흔한 짐승의 눈과는 다른, 안쪽에서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빛.
몸이 굳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소리쳤다.
도망쳐, 지금 당장.
그런데 몸이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 눈이 서서히 낮아지더니, 그 아래로 거대한 형체가 드러났다.
네 발로 선 짐승이었다.
크기가 사람보다 몇 배는 컸다.
검은 털이 온몸을 덮고 있었지만, 그 털 사이로 이상한 문양이 스며들듯 빛났다.
문양이 숨을 쉬듯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걸 반복했다.
살아 있는 무늬 같았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던 늑대나 곰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전생의 지식에도, 이 세계에서 주워들은 그 어떤 이야기에도 이런 짐승은 없었다.
그것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소리의 울림이 가슴까지 전해졌다.
심장이 그 울림에 맞춰 떨리는 것 같았다.
도망쳐야 한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았다.
발을 떼는 순간, 그것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콰앙!
방금 서 있던 자리의 나무가 그대로 부러졌다.
한 걸음의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뛰었다.
무작정 뛰었다.
방향 같은 건 이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앞으로, 그 눈빛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뒤에서 나무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그 속도가 인간의, 아니 수인의 속도로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발이 걸렸다.
넘어질 뻔한 걸 겨우 균형을 잡아 버텼다.
멈추면 끝이다.
그 생각만으로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죽는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떠올렸다.
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끝나는 상상은 해본 적 없었다.
이번 생에서도 이런 죽음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나뭇가지가 얼굴을 긋고 지나갔다.
따가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이 폐를 찢을 것처럼 아팠다.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저 이빨이 목덜미에 닿을 거다.
등 뒤에서 그 짐승의 숨소리가, 아니 그르렁거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사냥을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왜 저 속도로 안 덤벼드는 거지.
잡을 수 있는데도 안 잡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순간을, 이 도망치는 순간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그냥 짐승이 아니다.
이건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도망칠 수 없다.
저건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 순간을, 이 공포를 즐기고 있는 것뿐일지도.
등 뒤에서 그르렁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순간, 눈앞에 갈라진 나무뿌리가 보였다.
발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