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정신은 스물일곱, 몸은 갓난아이. 이 조합이 얼마나 미친 상황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 며칠은 그냥 죽은 줄 알았다. 눈을 떴는데 시야가 이상하게 낮고, 팔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뭉툭하고 짧았다. 천장 무늬를 세다가 그게 몰딩이 아니라 요람 틀에 새겨진 조각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사흘째였다.
몸에 갇혀서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었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목을 가누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 죽은 건가, 아니면 진짜로 다시 태어난 건가. 답은 없었고, 그냥 눈만 깜박였다.
생각의 대부분은 윤세아의 마지막 눈빛과 강신우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리는 것이었다. 검이 배를 뚫고 지나가던 그 순간, 윤세아가 내 이름을 불렀는지 아니면 그냥 비명을 질렀는지, 그것조차 확실치 않았다. 강신우는 웃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이제 와서는 확신이 없었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뭉개지는 건가 싶어서, 나는 눈을 감고 몇 번이나 그 장면을 되새김질했다. 잊으면 안 됐다. 그래야 다음에 만났을 때 제대로 갚을 수 있을 테니까.
다행인 건, 이 몸의 부모가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다. 은발 청안의 여자는 서하윤, 그리고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남자는 이강민. 둘 다 단월 왕국 이씨 자작가 사람들이었다. 전생에서도 같은 성씨, 같은 가문이었다. 다만 나는 그 집안의 삼남이었고, 지금은 갓 태어난 첫째였다.
같은 세계, 다른 시간대. 아마도.
확신은 없었지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절대 검술에만 매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력이 없다고 시험지 세 번 접었던 마도사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 늙은이는 내 손목을 잡고 감응석을 갖다 대더니, 마치 벌레를 보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세 번. 정확히 세 번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평생 검만 팠다. 재능도 없이, 마력도 없이, 순전히 근성으로.
그 근성으로 얻은 게 결국 배에 박힌 검 한 자루였으니, 인생이라는 게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후 육 개월이 됐을 때, 처음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서하윤이 나를 안고 복도를 걷다가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고, 그 충격으로 나는 팔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느꼈다. 바닥이 가까워지는 그 짧은 순간, 몸 안쪽에서 뭔가 뜨거운 게 팽창했다. 다리에, 아니 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짧은 두 다리에 힘이 몰렸고, 나는 허공에서 자세를 바꿔 등이 아니라 엉덩이로 떨어졌다.
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통증이 퍼졌지만,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등이나 머리로 떨어졌다면 최소 뇌진탕이었을 거다.
갓난아이가 낙법을 쓴 셈이었다.
"어···?"
서하윤은 넘어진 채로 나를 멍하니 봤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자기 실수로 아이가 떨어질 뻔했다는 자책과, 그 아이가 알아서 자세를 바꿨다는 사실 사이에서 표정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나도 놀랐다. 몸속에 흐른 그 뜨거운 감각, 그건 분명 마력이었다. 전생에서는 세 번을 재봐도 감응 반응이 없던 그 마력이, 지금은 확실히 느껴졌다. 심장 근처에서 시작해서 다리 끝까지 퍼지는 그 열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니 애초에 가져본 적 없던 감각이었다.
이거 진짜였구나.
돌잔치 즈음에는 확신이 생겼다. 넘어질 때마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자세를 잡았고, 걸음마를 배우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확연히 빨랐다. 시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저 집 첫째 도련님은 벌써 두 발로 뛰어다닌다더라, 그것도 넘어지는 법이 없다더라. 나는 그 소문이 퍼지는 걸 알면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갓난아이가 소문을 통제할 재간은 없으니까.
신체강화. 정확한 이름은 몰랐지만, 이건 그거였다. 전생에서 마도사들이 말하던 최상급 마법 중 하나. 마력을 근섬유와 뼈에 직접 주입해서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기술. 나는 그걸 이론으로만 알았지, 실제로 구현하는 사람은 딱 한 번 봤다. 왕실 근위대장이었나. 그 사람이 검을 뽑는 순간 공기가 다르게 울렸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 몸에서, 걸음마 단계에서부터 발현되고 있었다.
이강민이 그 광경을 처음 목격한 건 내가 걷기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정원에서 뛰어놀다가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이번에도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아버렸다. 아니, 그냥 균형을 잡은 게 아니라 아예 두 걸음을 더 뛰어서 넘어짐을 무마했다. 발끝에서 흙이 튀었고, 나는 그 자리에 멀쩍이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두 살짜리 심장으로 감당하기엔 좀 과한 운동량이었다.
"···이거, 신체강화잖아."
이강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은 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정원사가 들고 있던 물뿌리개를 놓칠 뻔했는지, 뒤에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여보, 이거 봤어? 서준이가 지금···"
"봤어요. 저도 봤어요."
서하윤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볼에 뽀뽀를 퍼부으며 뭐라 뭐라 말했는데, 대충 정리하면 우리 아기 천재다, 였다. 은발이 얼굴에 스칠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는 게 제일 힘든 일이었다.
생후 이 년이 채 안 된 아이가 마력 감응은 물론이고 신체강화까지 자체적으로 구현한다는 건, 왕국 전체를 뒤져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말을 부모의 대화를 엿들으며 알게 됐다. 정확히는 엿들었다기보다, 그들이 내가 자는 척하는 걸 못 믿고 조심스레 소곤거린 거였다.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촛불 그림자가 흔들렸고, 나는 요람 안에서 눈을 감은 채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유지했다. 두 살짜리가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잠든 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비정상이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제대로 가르쳐야 해."
"영지 마도사한테 봐달라고 할까요?"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해. 왕도에서 제대로 된 스승을 구해야 할 것 같아."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서준이 재능이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강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 확신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았다. 자작가라고 해도 왕실 직계는 아니었고, 영지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이 정도 재능을 보이면, 그건 가문 전체의 판을 바꿀 기회였다. 이해는 갔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속으로 웃었다. 정확히 내가 원하던 방향이었다. 전생에서는 마력이 없어서 검만 팠지만, 이번엔 다르다. 마력도 있고, 검도 안다. 둘 다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면, 그때는 강신우 같은 놈 앞에서 다시 무릎 꿇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강신우.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배 속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착각인지 실제 마력 반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뜨거웠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모든 걸 나 스스로 티 안 나게 조절해야 한다는 것. 두 살짜리가 성인의 사고방식으로 마력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부모가 알아채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공포가 될 수도 있었다. 마도사들 중엔 영혼 전이나 회귀 같은 것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내 정체가 드러난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실험체, 봉인, 최악의 경우엔 처형.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였지만, 이 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은 원래 어른들 상상보다 조금씩 이상한 짓을 하는 법이라,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말이 조금 빠르다, 눈치가 빠르다, 정도로 넘어가는 게 딱 한계였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의심을 사기 시작할 테니, 나는 최대한 아이답게 굴려고 애썼다. 가끔은 울지도 않아도 될 때 울었고, 넘어질 필요가 없을 때도 일부러 한 번씩 엉덩방아를 찧었다. 연기라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인 줄 몰랐다.
"서준이 재능을 살릴 스승을 구해봐야겠어. 왕도에 사람을 보내야겠소."
이강민이 그렇게 말한 밤, 나는 요람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엔 제대로 할 것이다. 마력도, 검도, 둘 다. 그리고 강신우라는 이름을 다시 마주하는 날, 이번에는 절대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고, 그 빛이 요람 안쪽까지 닿았다. 나는 짧은 팔을 들어 달빛을 가려봤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 드는 빛이 마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잠시 웃음이 나왔다. 두 살짜리가 짓는 웃음이라기엔 좀 씁쓸한 웃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며칠 뒤 이강민이 데려온 스승 후보의 이력서를 몰래 훔쳐보고, 나는 다시 계산을 시작해야 했다.
서재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나는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두 살짜리가 걸음걸이 소리를 죽이며 서재에 잠입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그림인지는 알았지만, 지금은 정보가 더 중요했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낡은 필체로 쓰인 이력서. 이름, 소속, 그리고 경력란에 적힌 몇 줄.
이 사람, 뭔가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