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 사이로 뭔가가 내려섰다.
형체를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이상했다.
인간 여성의 형상이긴 한데, 윤곽이 자꾸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화질이 안 좋은 홀로그램을 보는 느낌이었다.
등 뒤로는 새하얀 빛이 층층이 펼쳐져 있었는데, 날개인지 뭔지 구분이 안 됐다.
'저게 그... 상급 천사인가.' 나는 침을 삼켰다.
견습생 아이는 이미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견습생이 소리쳤다.
상급 천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는 순간, 뭔가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 서랍을 누가 통째로 뒤엎어서 확인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뭐야, 지금 내 생각 읽는 거야?' 나는 당황했다.
딱히 감출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생활은 사생활이었다.
방금까지 견습생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것까지 다 읽혔을 거 아닌가.
[대상 확인] 강하늘. 30대. 사망 원인: 교통사고(구조 시도 중).
라는 문구가 상급 천사 주변에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고양이를 구하려다 죽었군요." 상급 천사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한 명이 말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울렸다.
"네, 뭐... 그렇게 됐네요."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은 신기에 접촉했군요." 상급 천사가 이어 말했다.
'그건 사고였다니까요.' 나는 속으로 항변했다.
"제 잘못입니다! 이 대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저를 잡아준 것뿐입니다!" 견습생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상급 천사는 견습생을 힐끗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견습생이 어깨를 움찔했다.
"휴식 시간 재조정 대상." 상급 천사가 짧게 말했다.
견습생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휴식 시간을 뺀다는 건가.' 나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처분인지는 몰랐지만, 견습생 표정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갔다.
딱 야근에 야근을 추가한다는 통보 받은 회사원 얼굴이었다.
미안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저기요." 나는 손을 들었다.
"말하세요." 상급 천사가 대답했다.
"이거, 제가 잘못한 거잖아요. 이 애 좀 봐주세요."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견습생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상급 천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흥미롭군요." 상급 천사가 말했다.
"뭐가요?" 나는 물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처분보다 타인의 처분을 먼저 걱정하는 사고 패턴." 상급 천사가 나를 다시 훑었다.
'그거야 성격이니까요.'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귀여운 걸 봤을 때 몸이 먼저 나가는 것과, 남 잘못 대신 걱정해주는 건 같은 계열의 습성이었다.
말하자면 오지랖 만렙 상태였다.
"규정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상급 천사가 손을 들었다.
갑자기 허공에 커다란 서류창이 펼쳐졌다.
진짜 서류창이었다.
게임에서 보던 UI 그대로였다.
[신기 접촉 확인 판정]
- 대상: 강하늘 (여, 사망 시점 기준 34세)
- 판정: 지구 표준 윤회 대상 자격 상실
- 사유: 신기와의 직접 접촉 이력. 해당 영혼은 지구 환경 기준으로 재배치 시 시스템 부하 초과 예상.
'뭐? 34세? 아 맞다, 나 생일 지났었지.' 나는 뒤늦게 자기 나이를 상기했다.
34살에 고양이 구하다 죽은 여자, 이거 참 요약이 서글펐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서류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은 지구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상급 천사가 딱 잘라 말했다.
찌잉-!
그 말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뭐라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신기의 힘이 당신의 영혼에 이미 스며들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지구의 순환 체계에 부적합합니다." 상급 천사가 설명을 이었다.
"그럼 저 그냥... 없어지는 건가요?" 나는 두려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상급 천사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서류가 넘어갔다.
[대체 배치안 검토]
- 대상 영혼의 신기 적합성으로 인해 타행성 전생 대상으로 분류됨.
- 배치 행성: 제3구역 소속 행성 '에스텔라'. 종족: 엘프.
'엘프?'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덕후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이 이럴 때 빛을 발했다.
엘프.
뾰족한 귀, 하얀 피부, 아름다운 외모.
판타지 세계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종족 아닌가.
"엘프... 좋아요! 완전 좋아요!"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견습생이 살짝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상급 천사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기뻐하기엔 이릅니다." 상급 천사가 말했다.
'또 뭔데요.' 나는 불안해졌다.
[경고] 신기를 품은 채 전생하는 개체는 극도로 희귀하며, 해당 종족 내 생존율이 통상 대비 현저히 낮은 것으로 집계됨.
"생존율이 낮다고요?" 나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신기의 힘은 강력하지만 불안정합니다. 그 힘을 담은 육체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 힘을 노리는 존재들도 함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상급 천사가 설명했다.
'그러니까... 강해지긴 하는데, 그만큼 노려지는 신세가 된다는 거네.' 나는 정리했다.
요즘 웹소설로 치면 딱 '먼치킨인데 표적'인 클리셰였다.
항상 재밌게 읽던 클리셰였는데, 내가 직접 겪으니 하나도 재미없었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부하시면 소멸입니다." 상급 천사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결국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나는 한숨을 삼켰다.
선택지가 두 개였다.
죽고 다시 죽거나, 죽고 다시 살면서 계속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둘 다 별로였다.
하지만 후자 쪽엔 적어도 '엘프'라는 옵션이 있었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나는 손을 들었다.
"질문하세요." 상급 천사가 답했다.
"전생하면 지금 기억은... 남나요?" 나는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이 세계관 지식, 오타쿠 감성, 회사 다니면서 배운 잔기술들.
이걸 다 잃으면 그냥 맨몸으로 강한 세계에 떨어지는 거였다.
무섭잖은가.
상급 천사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이례적인 요청입니다." 상급 천사가 말했다.
'이례적이면 안 되는 거야, 되는 거야.' 나는 애가 탔다.
견습생이 슬쩍 눈치를 살피며 상급 천사를 바라봤다.
"...신기의 특성상, 기억이 봉인되지 않은 채 전생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상급 천사가 답했다.
"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확정이 아닙니다. 다만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상급 천사가 덧붙였다.
찌잉- 하는 느낌과 함께, 다시 서류가 펼쳐졌다.
[전생 절차 개시]
'이제 진짜 되는구나.'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렵기도 했고, 이상하게 기대되기도 했다.
엘프.
판타지.
새로운 세계.
귀여운 것들이 넘쳐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견습생이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저기요." 견습생이 작게 말했다.
"응?" 나는 견습생을 바라봤다.
"감사해요, 아까... 저 대신 말해주셔서." 견습생이 속삭였다.
나는 씩 웃었다.
"별거 아니었어. 근데 너 이름이 뭐야?" 나는 물었다.
견습생이 대답하려는 순간, 세상이 다시 흔들렸다.
[전생 절차 시작. 대기하십시오.]
빛이 눈앞을 덮쳤다.
'이름도 못 들었네.' 나는 아쉬움 속에서 의식이 멀어지는 걸 느꼈다.
마지막으로 보인 건, 견습생이 뭔가 소리치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