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가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하준은 한동안 카운터에 기대선 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 열리고 닫힐 때 나는 그 특유의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는데, 방금 나가버린 서윤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려서였다.
곧게 편 등,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가던 발걸음, 문턱을 넘으면서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그 고집스러운 목덜미까지도.
그 순간 하준의 가슴 한쪽이 이유 없이 뻐근하게 저려왔는데, 오래전 자신도 저렇게 등을 보이며 도망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야월골이라 불리는 그 좁고 습한 골목은 왕도 외곽에서도 가장 낙후된 구역으로, 낮에는 시체처럼 조용하다가 밤이 되면 온갖 욕망이 은밀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낮 동안 그 골목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처럼 텅 비어 있었으나, 해가 저물고 어둠이 골목 사이사이로 스며들면 담벼락 뒤에서, 낡은 문 안쪽에서, 처마 아래 그늘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고,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굶주린 짐승의 것과 닮아 있었다.
하준은 그곳에서 열넷의 나이로 처음 몸을 팔기 시작했다.
첫 손님은 중년의 상인이었는데, 살집이 두툼한 손으로 어린 하준의 뺨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얼굴로 태어난 게 다행이지, 안 그러면 굶어 죽었을 텐데."
그 손끝이 뺨을 지나 턱을 들어 올릴 때, 하준은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고, 조롱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그날 밤 내내 그 질문이 어린 하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다만 그날 이후로 그는 자신의 몸이 곧 유일한 자산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을 뿐이었다.
손님을 다루는 일에는 규칙이 있었는데, 첫째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상대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 앎을 절대 들키지 않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관계가 끝나면 아무 감정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첫째 규칙을 익히기 위해 하준은 손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방향, 눈동자가 머무는 지점, 숨소리가 흐트러지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살피는 법을 배웠고, 둘째 규칙을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알아챈 뒤에도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연습을 거듭했으며, 셋째 규칙은 가장 지키기 어려웠으나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 규칙을 지키지 못한 동료들은 어김없이 손님에게 붙잡혀 착취당하거나, 마음을 준 대가로 버려지고 무너져 갔는데, 하준의 옆방을 쓰던 소년은 어느 부유한 귀족의 다정한 말 몇 마디에 마음을 열었다가 결국 겨울밤 골목 어귀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고, 또 다른 동료는 손님이 남긴 반지 하나를 손에 꼭 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준은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유와 고독'이라는 원칙을 자신의 몸에 새기듯 다졌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게 하지 않는다.'
그 다짐을 되풀이할 때마다 가슴 안쪽이 얼음처럼 단단하게 얼어붙는 감각이 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 다짐이 그를 살렸는지, 죽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준은 다른 이들보다 오래 야월골에서 버텼고, 밤마다 몸을 팔면서도 단 한 번도 스스로의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스물이 되던 해, 마침내 그 돈으로 이 작은 가게를 사들여 뒷골목을 벗어났을 때, 하준은 처음으로 낮의 햇빛 아래서 온전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낯설고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가게 이름을 '만월잡화'라 지은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이지러짐 없이 둥글게 차오른 달처럼, 다시는 야월골의 그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붙인 이름이었고, 이후 몇 해 동안 하준은 조용히 손님을 상대하며 살아왔다.
물건을 팔고, 계산을 하고, 저녁이 되면 문을 닫고 홀로 방으로 올라가는 그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하준은 마침내 안정이라는 것을 손에 쥐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 서윤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는 오래전 자신이 잊었다고 믿었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부터 이미 하준의 시선은 습관처럼 서윤을 훑고 있었는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 힘이 무언가를 숨기려는 안간힘이라는 것을, 말투는 냉정하려 애쓰지만 눈동자 끝이 자꾸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하준은 첫눈에 읽어냈고, 그것은 오래전 야월골에서 손님의 균열을 읽어내던 그 지긋지긋한 감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상대의 균열을 읽어내고 그 틈으로 파고들어 지배하고 싶어지는, 지극히 익숙한 욕망이 몸속 깊은 곳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서윤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고, 그 계산이 시작되는 순간 하준은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왜……'
몇 해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이 왜 지금, 저 사람 앞에서만 이토록 쉽게 무너지려 드는 것인지 하준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고, 그 알 수 없음이 오히려 더 큰 불안으로 번져갔다.
그 계산이 가져올 결과가 그를 다시 그 좁은 골목으로 되돌려놓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뒤늦게 스쳤는데, 마치 오래전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자유와 고독'의 원칙이 지금 이 순간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고, 붉은 빛이 가게 안 낡은 선반과 먼지 쌓인 물건들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하준은 그 붉은 빛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회계부를 다시 펼쳤지만,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텅 빈 가게 안에 무의미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니…… 이번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해.'
몇 번이나 되풀이해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유리처럼 얇고 위태롭다는 것을 하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서윤이 떠난 문 쪽을 향해 다시 한번 시선이 저절로 향하는 것을 그는 끝내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