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벼락 맞고 드래곤 각성했다

1화

새벽 공기가 청풍학원의 담을 넘어 마당까지 스며들었다. 이도현은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하늘은 먹빛에서 잿빛으로 겨우 바뀌는 중이었고, 마당의 돌바닥은 밤이슬을 머금어 미끄러웠다. 잡역학생의 하루는 다른 학생들보다 두 시간은 먼저 시작되었다.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마당을 쓸어야 했다. 그 모든 일이 끝나야 비로소 수련생들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두레박이 우물 바닥에 닿는 소리가 텅- 하고 울렸다. 이도현은 줄을 당겼다.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물통이 가득 차서 올라올 때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그는 그 통증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옆에서 다른 잡역학생이 마당을 쓸다가 힐끗 그를 보았다. "오늘도 유 교도주임님한테 가냐." 그가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 부러움과 의아함이 섞여 있었다. "응." 이도현은 짧게 답했다. "운 좋다, 너." 그 학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마당을 쓸었다. 더는 묻지 않았다. 잡역학생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있었고, 유목현의 눈에 든 이도현은 이미 그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었다. 청풍학원의 제복은 색으로 신분을 갈랐다. 귀족가의 자제들은 붉은 비단, 평민학생들은 백색 무명, 그리고 이도현 같은 잡역학생들은 잿빛 삼베였다. 옷의 색이 곧 사람의 값어치였다. 붉은 옷을 입은 자는 걸음걸이부터 달랐고, 잿빛 옷을 입은 자는 시선을 피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옷 색깔로 사람을 잰다.' 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물통을 어깨에 걸쳤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뒤 문장은 늘 흐지부지 끝났다. 언젠가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그는 알지 못했다. 다만 잿빛 삼베를 걸친 채로 평생을 살지는 않겠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했다. 부모의 얼굴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역병이 마을을 휩쓴 해에 태어났고, 살아남은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그가 아는 것은 그뿐이었다. 누군가 그를 청풍학원 앞에 두고 갔고, 그 이후로 그는 이곳의 잡역학생이었다. 이름조차 학원의 노비 문서에 적힌 그대로였다. 물통 두 개를 다 채운 뒤, 이도현은 후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 볕이 아직 닿지 않은 그 길은 유난히 서늘했다. +++ 교도주임 유목현의 방은 학원 뒤편, 가장 후미진 곳에 있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손끝에서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들어오너라."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 안은 단출했다. 벽에 걸린 검 한 자루, 낡은 서책 몇 권, 그것이 전부였다. "물은 다 길었느냐." 유목현이 창밖을 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무게가 있었다. 6급 무자, 속룡의 혼을 지닌 자라는 것이 학원 안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자가 어째서 교도주임이라는, 학원 내에서 그다지 높지 않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했다. "예, 스승님."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유목현은 잡역학생인 이도현을 유일하게 제자로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정식으로 사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새벽마다 이도현에게 기초 보법과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만약 이 사실이 학원 상층부에 알려지면 유목현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잡역학생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청풍학원의 오랜 불문율을 깨는 일이었으니까. "오늘은 발끝에 힘을 주는 법을 다시 해 보자." 유목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그 느림 속에 어떤 흐트러짐도 없었다. 이도현은 그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굽히고, 발끝에 무게를 모으고, 상체를 곧게 세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벌써 반년째 반복하는 자세였지만 여전히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스승님이 있으니 견딜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눈이 시렸지만 손을 들어 닦을 수도 없었다.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흔들리지 마라." 유목현이 곁에서 나직이 말했다. "발끝이 흔들리면 몸 전체가 흔들린다. 무공이란 결국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다리의 통증이 허벅지를 지나 허리까지 올라왔다. 한 시간의 수련이 끝난 뒤, 이도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유목현은 그런 그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강한 것과 높은 것은 다르다. 잊지 마라." 이도현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강한 자가 곧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이 학원의, 나아가 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것이 유목현이 늘 하는 가르침이었으므로,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가 보아라. 잡역장이 기다릴 것이다." 유목현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이도현은 방을 나서면서도 그 말의 뜻을 곱씹었다. 강한 것과 높은 것이 다르다면, 그는 대체 무엇을 좇아야 하는 것일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다리에 남은 통증만이 그날의 수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오후가 되자 이도현은 학원 뒷산으로 향했다. 약초를 캐 오라는 잡역장의 심부름이었다. 바구니 하나와 낫 한 자루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산길은 가팔랐고 인적이 드물었다.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어 걸음마다 조심해야 했다. 이도현은 익숙한 손길로 약초를 하나씩 캐 바구니에 담았다. 잡역학생 노릇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풀이 약초이고 어느 풀이 잡초인지 눈으로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발소리였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거칠고 불규칙했다. 이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나무 뒤로 몸을 붙였다. 무슨 일인지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잡역학생의 생존법이었다. 백색 무명 제복을 입은 소녀가 숲 사이를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서지아였다. 이도현도 얼굴 정도는 아는 평민학생이었다. 같은 잡역 구역을 지나다니며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말을 나눈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옷깃은 반쯤 풀려 있었고,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거기 서라."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붉은 비단 제복을 걸친 남학생이 나무 사이로 나타났다. 강태오였다. 강씨 무가의 공자, 청풍학원에서 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는 없었다. 그의 뒤로는 종자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헐레벌떡 따라오고 있었다. 서지아는 이도현을 발견하자마자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설마.' 이도현은 그 생각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녀가 이도현의 팔을 붙잡고 뒤로 확 끌어당겼다. 순간, 서지아의 몸이 이도현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강태오와 정면으로 마주 선 것은 이도현이었다. 쉭- 강태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정적이 흘렀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만이 그 정적을 메웠다. 이도현은 등 뒤에서 서지아의 손이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쥔 것을 느꼈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냐, 너는." 강태오의 눈이 이도현의 잿빛 옷을 훑었다. 조롱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의 시선은 옷의 색만으로 이미 이도현의 신분을 다 헤아린 듯했다. 이도현은 등 뒤에서 서지아의 숨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도망칠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뒤로는 서지아가 있었고, 옆으로는 가파른 산비탈뿐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 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잡역학생 이도현입니다. 약초를 캐러 온 것뿐입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 결과였다. 다리는 아직도 수련의 여파로 후들거렸지만, 그는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강태오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잡역이 감히 내 앞을 막는구나." 그 말 한마디에 산속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강태오의 뒤에 있던 종자 학생조차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강씨 무가의 공자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결코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학원 안의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강태오의 손이 허리춤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곳엔 검이 걸려 있었다. 이도현의 등 뒤에서, 서지아가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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