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이도현은 학원 서고를 찾았다. 강태오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고는 학원 본관 뒤편, 오래된 건물 안에 자리했다. 습기와 먹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서가는 천장까지 닿을 듯 높았고, 그 사이로 겨우 사람 하나 지날 만한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서고를 지키는 사서는 나이 든 여인이었는데, 잡역학생에게도 비교적 무던하게 대해주는 편이었다. 다른 학원 관리들이 잡역학생을 대할 때 보이는 냉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도현은 그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사서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로 왔느냐." 사서가 먼저 물었다. 손에는 낡은 죽간을 들고 있었다.
"강태오 공자에 관한 일을 좀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도현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사서는 잠시 이도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 시선엔 경계와 의문이 함께 섞여 있었다. 잡역학생이 명문 무가의 공자를 캐묻는 일은 흔치 않았다.
"강태오 공자에 관한 일이라면, 학생 명부 정도는 볼 수 있겠지." 사서가 마침내 말했다. 그러고는 서가 한쪽으로 걸어가 두꺼운 명부 하나를 꺼내 왔다.
이도현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고맙긴. 대신 조용히 보고 가라." 사서의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그 안엔 배려가 있었다. 그녀는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른 일을 했다. 더는 캐묻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도현은 명부를 뒤적였다. 종이는 오래되어 누렜고, 몇 장은 손대기만 해도 부스러질 듯했다. 학생 간 분쟁 기록이 몇 건 남아 있었다. 이름과 날짜, 간략한 사유만 적혀 있을 뿐, 그 이상의 자세한 경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있었다.
'처벌도 없고, 조사도 없다.' 이도현은 명부를 넘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기록된 것은 사건의 발생뿐, 그 결과는 하나같이 '원만히 해결됨'이라는 짧은 문구로 끝나 있었다. 그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도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명부의 마지막 장까지 넘겼을 때, 그는 강태오라는 이름이 세 차례 등장한 것을 발견했다. 세 번 모두 상대는 잡역학생이거나 평민 출신 학생이었다. 세 번 모두 결과는 같았다.
이도현은 명부를 조용히 덮었다. 사서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서고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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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이도현은 잡역동에서 만난 다른 잡역학생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잡역동은 학원 뒤편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했다. 지붕은 낮았고, 방마다 서너 명이 함께 지냈다. 이도현이 방문을 두드렸을 때, 안에서는 세 사람이 모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태오 공자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그가 물었다.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세 사람 중 가장 나이 든 잡역학생이 먼저 문가로 다가와 주변을 살폈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공자,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작년에는 평민학생 하나를 반쯤 죽여놓고도 아무 일 없었지."
"그 학생은 어찌 됐습니까." 이도현이 재차 물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잡역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강씨 무가에 밉보이면 학원 안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어."
옆에 있던 다른 잡역학생이 끼어들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었고, 목소리엔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저도 들은 게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재작년엔 강태오 공자의 시비를 잘못 건드린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 부모가 학원에 항의하러 왔다가 오히려 쫓겨났다고 합니다. 강씨 무가에서 학원에 기부한 돈이 워낙 크다 보니, 학원장도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정말입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니 거짓은 아닐 겁니다." 소년은 그렇게 답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하는 것이 두려운 듯했다.
가장 나이 든 잡역학생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공자, 몸조심해라. 강태오 그 사람은 뒤끝이 긴 사람이다. 한 번 밉보이면 절대 잊지 않아." 그의 눈빛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이도현은 그 말을 조용히 새겼다.
'한 명이 아니었구나.'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강태오가 저지른 폭력이 자신에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더 냉정하게 만들었다.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차가운 판단이었다. 이것은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반복되어 온 구조의 문제였다.
이도현은 잡역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엔 표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여러 갈래의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
그날 밤, 이도현은 유목현의 방을 찾아갔다.
방문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안에서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늦은 시각까지 잠들지 않은 스승의 모습이 짐작되었다. 이도현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 안에서 유목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도현이 방으로 들어서자, 유목현은 서책을 덮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엔 이미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하는 기색이 있었다.
"스승님. 강태오 공자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유목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방 안의 불빛이 흔들릴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알고 있었다." 유목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학원의 재정은 강씨 무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많지 않다는 것이지, 없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예를 갖추었으나, 그 속엔 물러서지 않는 단단함이 있었다.
유목현의 눈매가 살짝 흔들렸다.
"내가 처음 학원에 들어왔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유목현이 말했다. "그때 나는 젊었고, 정의롭게 나서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를 따르던 제자 하나가 학원에서 쫓겨났다. 나 대신 그가 책임을 졌지."
이도현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럼 스승님의 6급 무자, 속룡의 혼이라는 것도... 결국 저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까." 이도현이 다시 물었다.
그 물음에 유목현의 얼굴이 굳었다.
"무공의 급수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것이다." 유목현의 목소리엔 씁쓸함이 섞였다. "나는 그 다름을 견디며 살아왔다."
"견디는 것이,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무인의 길입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그 물음은 스승을 향한 것이기도 했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유목현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촛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나는 강자에게 맞서 싸우는 법을 알았다." 유목현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강자와 함께 있는 약자를 지키는 법은, 아직도 다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내 부끄러움이다."
이도현은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강함이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 강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그는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스승의 얼굴에 이미 그 답 없는 물음의 무게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밤, 이도현은 처음으로 유목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스승의 명성이, 어쩌면 허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6급 무자라는 칭호도, 속룡의 혼이라는 별호도, 강씨 무가와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는 그저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결심했다. 스승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 부당함을 바로잡겠다고.
'누군가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면,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 그의 마음은 정해졌다.
방을 나서는 이도현의 등 뒤로, 유목현이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디,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도현은 그날 밤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말이 스승의 진심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 속에 감춰진 무언가가, 앞으로 그의 앞길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이도현은 아직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