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며칠간 이도현은 강태오와 그 동패들의 동선을 조용히 파악했다. 잡역학생이라는 신분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누구도 잡역학생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그는 마당을 쓸며 강태오가 어느 문으로 나가는지 살폈다. 낮이면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척하며 그의 동패들이 모이는 시각을 헤아렸다. 밤이면 잡역방 구석에서, 낮에 주워들은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갔다.
그가 확인한 것은 명확했다. 강태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늙은 잡역 하나에게서 들었다. 그때 당한 아이는 결국 학관을 떠났다고 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사라진 것으로 정리되었을 뿐이다.
'저런 자를 그냥 두면, 다음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당할 것이다.' 그 생각이 이도현의 안에서 점점 단단해졌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관리처에 다시 고할 것인가. 이미 한번 무시당한 길이었다. 사부에게 알릴 것인가. 유목현은 지금 산 아래에 있었고, 서신을 보낸다 해도 답이 오기까지는 며칠이 걸릴 터였다. 그사이 강태오가 얌전히 기다려줄 리 없었다.
밤마다 그는 천장을 보며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고, 시간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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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늘던 빗줄기가 순식간에 굵어졌다.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 잡역방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이도현은 뒷산 약초밭에 두고 온 도구를 챙기러 나섰다. 잡역장이 아침까지 가져오라 시킨 것이었다. 미루면 될 일이었으나, 잡역장의 성정을 아는 이도현은 미루는 쪽이 더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배운 뒤였다.
우비를 걸치고 등불 하나를 든 채 그는 마당을 가로질렀다. 빗물이 이미 마당을 흥건히 적셔, 발을 옮길 때마다 물이 튀었다.
산길은 빗물로 미끄러웠다. 어둠 속에서 그는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등불은 바람에 몇 번이나 꺼질 듯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그는 손으로 감싸 불씨를 지켰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저기 온다."
어둠 속에서 사람 그림자 여럿이 나타났다. 강태오와 그의 동패들이었다. 넷 다 우비를 걸치고 있었고, 등불 대신 손에 무언가 긴 것을 들고 있었다. 이도현은 그것이 검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는 그렇게 깨달았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길을 알고 있었고, 이 시각을 알고 있었다.
"이 밤중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강태오가 비를 맞으며 걸어 나왔다. 그의 목소리엔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자의 즐거움이었다.
"약초 도구를 가져가려던 것뿐입니다." 이도현이 침착하게 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는 배 속에 힘을 주었다.
"관리처에 가서 나를 걸고넘어졌다지." 강태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 "게다가 서고를 뒤지고, 잡역 놈들에게 내 이야기를 캐물었다고 들었다."
이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움직임이 이미 강태오의 귀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밀고했구나.' 이도현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가 말을 걸었던 잡역들 중 하나가 강태오 쪽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인지는 지금 알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는 아무도 함부로 믿을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제법이구나. 잡역 놈이 감히 나를 뒷조사할 생각을 하다니." 강태오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심심하던 참인데, 잘됐다."
동패 하나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빗소리 속에서도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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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패들이 순식간에 이도현을 둘러쌌다. 넷이었다. 뒤로는 가파른 절벽, 앞으로는 강태오와 그 동패들. 완전히 갇힌 형세였다.
이도현은 재빨리 지형을 눈에 담았다. 왼쪽은 바위가 겹겹이 쌓여 오를 수 없었고, 오른쪽은 나무들이 빽빽했으나 그 사이로도 검을 든 자 하나가 서 있었다. 도망칠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하늘이 순간 번쩍였다. 그 짧은 빛 속에서 이도현은 강태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았다. 조롱이었고, 동시에 확신이었다. 오늘 밤 이곳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확신.
스릉-
한 동패가 검을 뽑는 소리가 빗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렸다. 이어 다른 셋도 차례로 검을 뽑았다. 네 자루의 검이 빗물에 젖어 희미하게 빛났다.
"오늘은 예의만 가르치는 것으로 끝내지 않겠다." 강태오가 말했다. 그의 손에도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지난번엔 살려서 보냈지. 다시 기어들어와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강태오가 검끝을 이도현 쪽으로 겨눴다. "이번엔 살려 보낼 이유가 없구나."
이도현은 주위를 살폈다. 도망칠 틈이 없었다. 산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여기서 죽는 것인가.' 그는 그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몸이 떨리지 않았다.
유목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강한 것과 높은 것은 다르다. 그 말의 의미를, 지금 이 순간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힘이 없어 밀려난 자들이, 그저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짓밟히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산중턱에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사부님, 저는 아직 강하지 않습니다.' 이도현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습니다.'
"뭘 그렇게 침착한 척이냐." 강태오가 검을 겨눈 채 다가왔다. "오늘 여기서 사라져도, 아무도 너를 찾지 않을 것이다. 잡역 놈 하나가 사라졌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느냐."
그의 발이 물웅덩이를 밟으며 첨벙- 소리를 냈다. 동패들도 조금씩 원을 좁혀왔다. 넷의 검끝이 조금씩 이도현을 향해 기울었다.
그 말에 이도현의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끓어올랐다.
분노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차갑고, 더 단단한 무언가였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이었다.
작년에 학관을 떠난 아이도 이런 밤을 겪었을까. 이도현은 문득 그 이름 모를 아이를 생각했다. 아무도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던 그 아이. 그렇게 조용히 지워지는 것이, 이 학관에서는 너무나 쉬웠다.
'나는 그렇게 지워지지 않겠다.'
하늘이 다시 번쩍였다. 이번엔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밝아지며, 산 전체를 뒤덮을 듯 부풀어 올랐다.
강태오와 동패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저게 뭐냐." 누군가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검을 쥔 손이 흔들리는 것이 빗속에서도 보였다.
다른 동패 하나는 아예 검을 늘어뜨린 채 뒷걸음질했다. 발이 젖은 흙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으나, 그것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강태오만이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다 그대로 삼켜졌다.
이도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빛의 기둥이 곧게 내려오고 있었다. 빗줄기 사이로 쏟아지는 그 빛은, 마치 하늘이 갈라져 그 틈으로 무언가를 쏟아내는 것 같았다.
피할 곳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상하게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