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서아가 산길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나는 동굴 입구 쪽으로 몸을 낮췄다.
발소리는 익숙했다.
일주일 넘게 매일 들어온 걸음이었다.
서아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의 어깨는 가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낡은 배낭끈이 어깨를 파고든 자국이 선명했고, 신발 밑창에는 흙과 나뭇잎이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왕실에서 이번 주에 마왕 토벌 기념 행사를 연대."
서아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빠르고 높았다.
"모든 생존 파티원을 초청한다고 공표가 났어. 박현우 씨도, 오지훈 씨도 다 갈 거고."
나는 그 말에 몸이 굳었다.
행사, 초청, 생존 파티원.
그 단어들 속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도 그 파티원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말할 방법이 없었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서아가 바구니에서 신문을 꺼내 내밀었다.
종이는 산길을 오는 동안 구겨져 있었지만, 큼지막한 글씨는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용사 강도윤, 마왕전 이후 실종 — 산중에 괴물 출몰 목격담 확산』
나는 그 제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 이름 옆에 붙은 '괴물'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걸렸다.
"어제 박현우 씨가 신전에 이 얘기를 흘렸어."
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리산 근처에서 사람만 한 짐승을 봤다고. 그게 마왕의 잔재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손, 발톱 달린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검을 쥐던 손이었다.
지금은 뭉쳐 붙은 세 손가락 끝에 검고 단단한 발톱이 자라 있었다.
"교단 쪽에서는 그게 마왕의 남은 마기가 실체화된 거라고,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서아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신전 쪽 사제들이 벌써 정화 의식 얘기를 꺼냈대. 발견되는 즉시 봉인하거나, 아니면..."
서아는 그 뒷말을 삼켰다.
나는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귀족 쪽에서는 반대로, 그게 혹시 강도윤 님이 아닐까 하는 소문도 돌고 있고."
나는 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마왕의 저주가 아직 안 풀렸다는 증거라면서, 오히려 더 크게 소란을 만들려는 사람들도 있어."
"두 쪽 다 위험해. 만약 이게 도윤이라는 게 밝혀지면, 마왕의 마기를 품은 존재라고 해서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서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 그냥 위험한 짐승으로 낙인찍혀서... 어느 쪽이든 도윤이한테 좋을 게 없어."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만 새어 나왔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소리였다.
그저 서아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발톱이 서아의 손등을 긁지 않도록, 나는 뭉쳐 붙은 손가락에 힘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서아는 그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오지훈 씨가 벌써 이 근처를 수색하고 있대."
서아가 그렇게 덧붙였다.
"마법으로 흔적을 찾는다고, 벌써 사흘째 산을 뒤지고 있다고 들었어."
나는 순간적으로 동굴 입구 쪽을 돌아봤다.
오지훈이라면 마법으로 마기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파티 안에서도 추적 마법에 가장 능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 동굴을 찾아내는 건 시간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째면 이미 근처까지 왔을 수도 있어.'
나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세었다.
"내가 흔적을 최대한 지워볼게."
서아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전 쪽 사람들 눈도 최대한 피하고, 도윤이한테 오는 길도 매번 다르게 할게."
서아가 배낭에서 마른 풀뿌리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이걸 동굴 입구에 뿌려두면 마기 냄새를 조금은 가릴 수 있대. 시장에서 몰래 구해온 거야."
나는 그 말에 서아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풀뿌리 하나를 구하는 데도 몰래 움직여야 했을 서아의 하루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너까지 위험해지면 안 돼.'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대신 나는 서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서아는 그 뜻을 알아챈 듯, 슬프게 웃었다.
"나는 괜찮아. 도윤이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서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손끝이 발톱 사이 거친 살갗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서아는 그런 반응에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방법을 찾을 거야. 반드시."
서아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했다.
서아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동굴 입구를 확인했다.
그날 저녁, 서아가 산을 내려간 뒤 나는 동굴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겼다.
혹시라도 누군가 동굴 근처를 지나가더라도 발견되지 않을 만한 자리였다.
바위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나는 몸에 붙은 서아의 손길이 남긴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가 사라질 때쯤, 나는 다시 어둠 속의 짐승으로 돌아왔다.
어둠 속에 웅크린 채, 나는 오지훈의 발소리가 이 산 어딘가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문에 적힌 '괴물'이라는 글자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오지훈이 이 동굴을 찾는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같은 파티원이었던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마기를 품은 짐승으로만 볼까.
멀리서, 정말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소리가 다시 들리기를 기다렸다.
소리는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였다.
바스락, 낙엽을 밟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나는 몸을 더 깊숙이 바위틈으로 밀어 넣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갈비뼈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