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구걸하던 내가 낙원의 주인이라니

1화

잿빛골의 아침은 언제나 곰팡이 냄새로 시작됐다. 그 냄새는 방앗간 뒤편 도랑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밤새 고인 물이 썩으면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그 도랑 옆, 방앗간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벽은 회칠이 벗겨져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등을 대면 서늘한 기운이 삼베옷을 뚫고 그대로 들어왔다. 낡은 나무 그릇 하나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릇 가장자리는 이가 빠져 있었고, 안에는 구리동전 두 개가 전부였다. '오늘은 다섯 개는 모아야 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빵 한 조각에 구리동전 세 개, 그러니까 두 개만 더 있으면 된다.' 올해로 열 살이 된 나는 잿빛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였다.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다섯 살 무렵부터 이 골목 저 골목을 떠돌며 밥을 얻어먹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발은 맨발이었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어서 자갈길을 걸어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무릎까지 오는 낡은 삼베옷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얼룩져 있었다. 소매 끝은 닳아서 실이 풀려 있었고, 나는 가끔 그 실을 뽑아 손가락에 감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시장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생선 장수가 소리를 지르고, 마부가 말을 끌고 지나갔다. 떡집 아주머니는 김이 오르는 떡을 대나무 채반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골목까지 퍼져서 나는 몇 번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는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였다. "한 푼만 주세요."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분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어떤 아저씨는 발로 내 그릇을 슬쩍 밀치고 갔는데,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릇을 다시 끌어안고 자리를 조금 옮겼다. 포목점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 한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소매에서 뭔가를 뒤적였다. '주려나.' 나는 기대를 담아 그릇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코를 막고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역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그릇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을 때, 시장 저편에서 마차 한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바퀴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말이 콧김을 내뿜는 소리가 났다. 비단으로 만든 파라솔을 쓴 여자아이가 마차에서 내렸다. 나이는 나보다 두세 살 위로 보였고, 옷은 자수가 들어간 남색 치마였다. 치마 밑단에는 작은 매화 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그 자수 하나만 해도 우리 골목 사람들이 한 달을 먹고 살 만한 값어치가 나갈 것 같았다.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작은 종이 달려 있어서, 걸을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가 났다. 뒤에는 몸집이 큰 하녀 하나가 짐을 들고 따라왔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다희였다. 육 년 전, 내가 아직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 옆집에 살던 아이였다. 그때는 나도 지금처럼 헐벗지 않았고, 다희와 나는 같은 골목에서 흙놀이를 하곤 했다. 흙으로 만두를 빚어서 서로에게 팔던 기억이 났다. 다희는 언제나 "내가 더 많이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겼어!"라고 소리치던 아이였다. 그때는 그게 그냥 우스운 말싸움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벌써 그 무렵부터 이기고 지는 것에 예민했던 것 같았다. '저 애가 왜 여기 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조금 몸을 일으켰다. 다희는 시장 안 포목점 앞에 서서 옷감을 고르고 있었다. 점원이 옷감을 몇 필이나 꺼내 와 다희 앞에 펼쳐 보였고, 다희는 손끝으로 옷감을 슥슥 훑으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릇을 들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알아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두 개의 동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나를 기억하겠어. 육 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희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다희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하얗고 통통해져 있었다. 손목에는 옥으로 만든 팔찌가 걸려 있었는데, 그것도 어릴 때는 본 적 없던 것이었다. 나는 그릇을 내밀었다. "한 푼만... 주세요." 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봤다. 그 눈빛에는 어떤 알아봄도, 반가움도 없었다. 오직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만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며 순간적으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같이 흙 만두를 나눠 먹으며 웃던 그 얼굴과, 지금 이 얼굴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저리 가!" 다희가 소리쳤다. "옷에 냄새 묻잖아!" 나는 몸을 뒤로 뺐다. 손끝이 떨렸다. 그릇 안의 구리동전 두 개가 짤그랑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다희 뒤에 서 있던 하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이 거지 계집애가 감히 아가씨 앞에!" 하녀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녀의 목소리는 시장 소음을 뚫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크고 날카로웠다. 몇몇 상인들이 흘긋 이쪽을 쳐다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포목점 점원조차 시선을 슬쩍 돌리고는 다시 자기 일을 하는 척했다. '다들 나를 도와줄 생각은 없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릇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하녀는 허리춤에서 짧은 나무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지팡이 끝은 사람을 몇 번이나 후려친 듯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 그 끝이 내 쪽으로 겨눠지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다희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나는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맞는 건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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