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계란말이가 국가안보라니

4화

최고봉이 팔짱을 낀 채 도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 어깨를 넓게 펴고 선 자세만으로도 문턱 하나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자네가 다시 나설 필요는 없네." 최고봉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여유가 섞여 있었지만, 그 여유는 방금 자신의 낙지찜이 거절당한 사람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단단했다. "비켜주십시오."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선은 최고봉의 어깨 너머, 마당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 담장이 갈라지는 소리가 아직 잦아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요리가 별로였다는 건 인정하지." 최고봉의 눈빛이 차가웠다. "하지만 자네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는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갔다. "계란말이 하나로 특급 개체를 다스린다는 게, 애초에 요리라고 부를 만한 일인가." 도윤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 말이 아프게 박혔기 때문이다. 반박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서리를 상대로 해온 모든 것이, 이 한마디 앞에서 순식간에 하찮은 것으로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그건 소재 음식이야." 최고봉이 잘라 말했다. "기술도 없고, 격식도 없어. 그저 익숙한 맛을 던져주는 것뿐이지." 그는 도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런 걸로 나라의 안보가 지켜진다는 게,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네. 자네는 그게 자랑스러운가?" '정말 그런 걸까.' 도윤은 순간 흔들렸다. 서리가 자신의 음식만 받는 이유를, 그는 지금껏 한 번도 논리적으로 설명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었고, 먹고 나면 조용해졌다는 사실만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 순간만큼은 도윤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담장 쪽에서 다시 낮은 진동이 울렸다. 흙벽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그때 강혁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의 걸음은 다급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강혁이 최고봉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어르신 낙지찜이 거절당한 순간부터 균열이 커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커지고 있고요." 그는 마당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담장 위로 뻗어 있던 균열이 조금 전보다 한 뼘은 더 길어져 있었다. 최고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자존심과 나라의 위기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도윤을 노려보았지만, 그 눈빛에는 아까와 같은 확신이 더 이상 담겨 있지 않았다. "들어가게." 강혁이 도윤의 등을 밀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도윤은 그 힘에 밀려 부엌 쪽으로 몸을 돌렸다. +++ 도윤은 부엌으로 곧장 들어갔다. 손이 떨렸지만,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계란을 깨고, 팬을 달구고, 소금을 손끝으로 가늠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오래 익힌 습관처럼 흘러갔다. 머릿속은 여전히 최고봉의 말로 어지러웠지만, 손은 그 어지러움과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걸었다.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면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이미 화가 났을 때다.' 도윤은 서리의 성정을 떠올리며 손을 서둘렀다. 그녀는 배고픔을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아본 사람만이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치익- 팬 위에서 계란물이 얇게 펴지는 소리가 났다.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순식간에 부엌 안을 채웠다. 도윤은 젓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말아 넣었다. 손목의 각도, 젓가락의 속도, 팬을 기울이는 타이밍까지 모든 게 몸에 새겨진 대로 움직였다. 몇 번을 반복해 층을 겹치자, 노란 계란말이 한 덩이가 완성되었다. 겉면은 매끈했고, 자를 때마다 층층이 접힌 결이 드러났다. '이걸로 충분할까.' 도윤은 접시에 옮기며 잠깐 손을 멈췄다. 최고봉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소재 음식, 기술도 격식도 없는 것.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접시를 들고 현관으로 나섰을 때, 서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등을 곧게 펴고, 시선은 정면의 어딘가에 못박힌 채였다. 그 자세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오래 그 상태로 앉아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늦었어." 서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눌러 담긴 것이 무엇인지 도윤은 알 수 있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도윤이 접시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접시가 바닥에 닿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서리는 한동안 접시를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계란말이 냄새가 퍼지자, 그녀의 시선이 서서히 그쪽으로 움직였다. 아주 조금씩, 마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끌려가는 것처럼. 서리가 젓가락을 들었다. 손끝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것도 이내 가라앉았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나서야, 그녀의 어깨에서 긴장이 풀렸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무언가가 툭 끊어지듯, 자세가 눈에 보일 만큼 느슨해졌다. "...맛없었어. 그 낙지찜." 서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씹는 속도는 느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알아요." 도윤이 옆에 앉으며 답했다. 그는 최고봉의 낙지찜이 왜 맛없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기다렸어." 서리가 짧게 덧붙였다. 그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그동안 무엇을 참았는지, 도윤은 굳이 되묻지 않았다. 도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가 계란말이를 다 먹을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켰다. 그녀가 한 조각씩 집어 삼킬 때마다, 도윤은 그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다른 어떤 소리도 그 순간에는 들리지 않았다. +++ 저택 마당의 균열은 서리가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멎었다. 담장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흔적은 남았다. 갈라진 틈은 여전히 벌어진 채였고, 흙먼지가 마당 한켠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강혁이 도윤을 따로 불러 앉힌 건 밤이 늦어서였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 위를 문지르며 낮은 숨을 몰아쉬었다. "고맙네." 강혁이 위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번엔 정말 위험했소."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긴장이 다 풀리지 않은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제가 늦은 탓입니다."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강혁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자네 음식이 왜 그렇게 통하는지, 나는 계속 그게 궁금했소." 그는 찻잔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을 골랐다. 강혁은 오랫동안 서리의 기록을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그는 서리가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굶주림을 겪은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가능성을, 그는 조심스레 짚었다. "단순히 맛이 좋아서가 아니오." 강혁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주는 음식은, 저 사람에게 '살아있다'는 확인 같은 거요. 애착이자, 어쩌면 본능적인 굶주림의 흔적이겠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러니 최고봉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시오. 그 사람은 요리를 접시 위의 예술로만 배웠을 뿐, 사람의 배 속을 배운 적이 없으니." 도윤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고봉의 조소와 강혁의 분석이 동시에 머릿속에서 부딪혔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의 요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그는 당장 판단할 수 없었다. '소재 음식이라 해도, 이 사람에게는 그게 유일한 언어라면.'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격식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제야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계란말이 하나가 접시 위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층을 겹치던 그 손짓이, 어쩌면 서리에게는 말보다 더 정확한 문장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확신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최고봉의 눈빛은 아직 풀리지 않았고, 저택 마당의 균열은 완전히 메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강혁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찻잔을 든 손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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