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아기 마법사의 두 번째 삶

5화

다음 날부터 소이의 수업이 시작됐다. 서준의 몸은 여전히 갓난아기였다. 손가락은 짧고, 팔다리는 통통했고, 눈의 초점조차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집중하는 것만은 가능했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소이는 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떠 있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에 날개는 반투명했고, 표정은 벌써부터 시큰둥했다. 집중. 소이가 짧게 말했다. 마력은 물 같은 거야. 억지로 밀어내면 튄다. 그럼 어떻게 해.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느낌. 그거야. 밀지 말고 당겨. 서준은 눈을 감았다.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손에 잡히지 않는 실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당겼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으. 작은 바람이 손끝에서 원을 그렸다. 소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 이거 봐라. 첫날부터 감 잡네. 그런가. 보통 애들은 이거 하는 데 몇 달 걸려. 너 진짜 뭔가 이상해. 이상한 거 아니고 그냥 재능인 거지. 서준이 속으로 대답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서준은 그 말을 웃어넘겼다. 전생의 삼십 년치 집중력이 갓난아기 몸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은 새로 태어났지만 머리는 그대로였다. 이건 사기 아닌가.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수업은 이어졌다. 소이는 매번 새로운 걸 던져줬다. 오늘은 감지 연습. 주변에 있는 마력 흐름을 느껴봐. 느껴서 뭐 하는데. 나중에 마법 쓸 때 필요해. 다 이유가 있어. 눈 감고 집중. 서준은 눈을 감았다. 방 안의 공기 흐름이 서서히 감각으로 들어왔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의 결이 느껴졌다. 벽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떨림도 있었다. 이게 마력인지 그냥 공기인지 헷갈렸지만, 뭔가 다른 층위가 존재한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거, 되는 것 같은데. 오, 진짜 되네. 너 재능 있는 거 맞나 봐. 소이가 놀란 눈으로 서준을 쳐다봤다.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 채 한동안 서준을 훑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애들 중에 제일 빠른 것 같은데. 그 순간 서준의 마음속에 작은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전생에서는 이런 칭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며칠이 흐르고, 서준은 아주 작은 생활 마법 하나를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손끝에서 미풍을 일으키는 정도였다. 위력은 미약했지만 방향 조절이 가능했다. 이거 봐봐, 나 이제 조절도 돼. 서준이 손끝으로 이불을 살짝 들어올렸다. 이불 끝이 파르르 떨리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소이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근데 아직 멀었어. 뭐가 멀었는데. 너 지금 그거, 갓난아기가 할 수준을 훨씬 넘은 거야. 근데 진짜 마법사들은 이거보다 백배는 세게 해. 서준은 그 말에 살짝 김이 빠졌다. 백배라니. 지금 이만큼 하는 것도 며칠 걸렸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안 자라는 거야. 정령들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거든. 방금 지어낸 거지. 아니거든. 서준은 그 말에 살짝 김이 빠졌다. 하지만 곧 다시 의욕이 생겼다. 그럼 백배 세게 하는 법도 가르쳐줘. 서두르면 안 돼. 몸이 자라야 마력도 같이 늘어. 지금은 감각만 잡는 거야. 그릇이 작은데 억지로 부으면 넘쳐서 터져. 터지면 어떻게 되는데. 소이가 잠깐 침묵했다. 몰라도 돼. 무섭게 말하지 말고. 소이의 말투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서준은 그 안에서 은근한 성실함을 느꼈다. 손가락만 한 정령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걸 보면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존재가 아니었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나타났고, 매번 다른 과제를 던져줬고, 서준이 조금이라도 진전을 보이면 놀란 척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게 보였다. 너 되게 성실하다. 당연하지. 나도 나름 자존심이 있는데 대충 가르치겠냐. 정령한테 자존심이 있었나. 있거든. 나 이래도 꽤 오래 산 정령이야. 몇 년인데. 그건 비밀. 서준은 그냥 웃어넘겼다. 소이가 나이를 밝히지 않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 캐물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 이지은이 방에 들어왔다.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서준을 안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서준아, 오늘도 잘 잤어? 서준은 대답할 수 없었지만 눈으로 웃어 보였다. 이지은의 품은 따뜻했다. 익숙한 냄새, 살짝 비누 향이 섞인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이지은은 서준을 안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준의 뺨을 쓰다듬으며 뭔가 중얼거렸다. 우리 서준이, 요즘 눈빛이 좀 다른 것 같아. 서준은 순간 뜨끔했다. 들켰나. 아니, 들킬 게 뭐가 있나. 그냥 눈빛일 뿐인데. 그 순간, 서준의 손끝에서 다시 미풍이 흘러나왔다. 방금까지 소이와 연습하던 감각이 그대로 남아있던 탓이었다. 이지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어, 방금 또. 이지은의 눈이 커졌다. 며칠 전 느꼈던 위화감이 다시 스쳤다. 이번엔 확실했다. 아기의 손끝에서 바람이 일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한 방향이었다. 서준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준은 순간 얼어붙었다. 소이가 재빨리 창밖으로 몸을 숨겼다. 눈치 하나는 빨랐다. 방 안에는 오직 서준과 이지은뿐이었다. 이지은은 서준의 손끝을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펼쳐보고, 손바닥을 뒤집어보고, 다시 손끝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심각해졌다. 이거, 마력이잖아. 그녀의 목소리에 놀람과 함께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두려움 비슷한 것. 아니면 오래 묻어둔 걱정 같은 것. 서준은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엄마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지은은 서준을 안은 채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짧은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이 방 한쪽 낡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몇 번이나 그 서랍장을 봤다가 다시 서준을 봤다가를 반복했다. 그 서랍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서준은 아직 알지 못했다. 엄마가 왜 저기를 보는 거지.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 햇살마저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지은의 눈빛에 서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준아, 엄마가 하나만 물어볼게. 서준은 그 말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장난기도 없고, 걱정도 아니고,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낡은 서랍장의 손잡이가 어렴풋이 흔들렸다. 아니, 어쩌면 그건 서준의 착각이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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