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버려졌더니 마수림 최강자

1화

아침 햇살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작업대 위에 놓인 마도구들을 비췄다. 나는 손끝으로 이동진의 표면을 문질렀다.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옷자락에 털어내며 나는 다시 이동진을 들어 올렸다. 빛이 코어를 투과하며 창백한 청록색으로 번졌다. 십 년 넘게 봐온 빛깔인데도 오늘따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설령 변경의 이 오두막은 내가 열 살 무렵부터 손수 고친 곳이었다. 벽에는 손질해둔 마도구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창밖으로는 마수림의 초록빛 능선이 이어졌다.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었다. 벌레 울음소리가 낮게 깔렸다. 작업대 한쪽에는 어제 손보다 만 소형 결계석과, 그 옆에 낡은 지도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도 위에는 붉은 잉크로 경계 표식의 위치가 촘촘히 표시되어 있었다. 십 년째 고쳐 그려온 지도라 이제는 종이보다 손에 그려진 그림처럼 익숙했다. [주인님, 이동진 코어의 마력 순환률이 어제보다 3퍼센트 낮습니다.] 라비가 내 옆에서 조그맣게 회전하며 말했다. 라비는 손바닥만 한 마도구 정령체였다. 내가 3년 전에 만든, 나만의 조수였다. "음... 코어 결정에 균열이 생겼나 보네." 나는 이동진을 뒤집어 바닥면을 확인했다. 미세한 실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손끝으로 실금을 따라 그어보았다. 마력이 그 틈을 타고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오래 방치하면 코어 전체가 깨질 수도 있었다. "오늘 순찰 끝나고 다시 갈아 끼워야겠다." [알겠습니다. 오늘 순찰 구역은 북쪽 경계 표식 12번부터 18번까지입니다.] "18번이면... 좀 멀리까지 가야 하네." [예. 다만 최근 이레 동안 그 구역의 마력 반응은 안정적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치며 어깨에 힘을 한 번 풀었다. 창밖의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섰다. 마수림의 아침 공기는 늘 서늘했다. 발밑에서 이슬 젖은 풀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십 년째 걷는 길이었다. 숲의 나무들은 키가 높고 잎이 무성했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바닥에 얼룩무늬를 그렸다. 평소라면 이런 풍경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걸음을 옮기는 사이 라비가 내 어깨 옆에서 나란히 떠다녔다. [오늘은 특별히 보고할 이상 사항이 없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나는 짧게 웃으며 나뭇가지 하나를 손끝으로 살짝 밀어냈다. 이슬이 떨어지며 손등을 적셨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바람이 문득 멈췄다. 벌레 소리도 함께 끊겼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하네.) 숲은 원래 완전한 침묵이 없는 곳이었다. 항상 무언가가 울고, 무언가가 흔들렸다. 그런데 지금은 삐걱거리는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려오던 새소리도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주변 마력 밀도가 평소보다 상승했습니다.] 라비가 낮은 진동음을 내며 말했다. "어느 방향?" [북서쪽입니다. 다만 반응이 불규칙합니다.] "불규칙하다는 건 정확히 어떤 뜻이야?" [마력의 파동이 일정한 패턴 없이 튀고 있습니다. 마물의 기척과는 다른 종류입니다.] 나는 허리에 찬 단검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십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으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불규칙한 마력 반응은 대개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계 표식 12번은 평소처럼 은은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표식 옆에 손을 얹고 마력이 고르게 흐르는지 확인했다. 문제없었다. 13번, 14번도 마찬가지였다. 각 표식을 지날 때마다 나는 손끝으로 마법진의 문양을 가볍게 짚었다. 문양의 결이 매끄럽게 이어져 있으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14번까지는 그 결이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15번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췄다. 표식을 두른 마법진의 한쪽 모서리가 뜯겨 있었다. 마치 손톱으로 긁어낸 것처럼, 검붉은 흔적이 나무 표면에 남아 있었다. 나는 몸을 낮추고 그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긁힌 폭은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너비였고, 깊이는 얕았다. 하지만 그 얕은 자국 안쪽에서 검붉은 빛이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 흔적에 손을 가까이 댔다. 미약하지만 낯선 파문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건... 마물의 흔적이 아닌데." 일반적인 마물의 파괴 흔적과는 결이 달랐다. 더 차갑고, 더 계획적인 느낌이었다. 마물이라면 발톱으로 찢거나 이빨로 물어뜯은 흔적이 남아야 했다. 그런데 이 흔적은 마치 정교한 도구로 도려낸 것처럼 매끄러웠다. [표식 훼손 흔적을 스캔했습니다. 알려진 마물 패턴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라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게 들렸다. "기록해둬. 백작님께 보고할 때 같이 전달해야겠다." [기록 완료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평소보다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숲의 그림자가 유난히 깊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진 자리마다 무언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6번, 17번 표식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나는 매번 표식 앞에 멈춰 서서 마법진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손끝에 닿는 감각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때였다. 나무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스치듯 지나갔다. 탁. 나뭇가지 하나가 흔들리며 잎이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그 방향을 노려보았다. 형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남은 것은 공기 중에 옅게 남은 서늘한 기운뿐이었다.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단검을 뽑아 든 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나무들 사이로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잎사귀 하나가 흔들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인님, 방금 감지된 마력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봤어? 그거..." [영상 기록은 확보했으나 형체 식별에는 실패했습니다.] "확보한 기록이라도 다시 재생해봐." [재생하겠습니다.] 잠시 후 라비가 작은 빛의 막을 펼쳐 영상을 보여주었다. 흐릿한 검은 잔상이 나무 사이를 스치는 모습이 전부였다. 사람의 형태도, 마물의 형태도 아니었다. 그저 어둠의 조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십 년 동안 이 숲에서 마주친 것들 중 나를 이렇게 긴장시킨 존재는 드물었다. (뭐지, 저건.) 나는 단검을 고쳐 쥐고 다시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숲은 다시 고요해졌다. 벌레 소리도, 바람도 되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발끝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숲은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침묵은 진짜 평온이 아니라는 것을. [주인님, 남은 경계 구역은 18번뿐입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라비의 물음에도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본 그 검은 잔상이 눈앞에 계속 어른거렸다. 그것은 분명 내가 아는 어떤 마물의 움직임도 아니었다. "...가야지.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나는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숲의 나무 하나하나, 그림자 하나하나가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18번 표식이 있는 곳까지 남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가 오늘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계속 주변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지만, 등줄기의 서늘함은 그런 바람과는 무관하게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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