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신통 셋, 무림을 삼키다

1화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정하람은 창밖을 바라보며 옷깃을 여몄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불길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이곳, 한천대륙의 정가 저택이었다. 열여섯 살, 정하람이라는 이름의 몸. 어느새 그 삶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도련님, 채비 다 되셨습니다." 소연이 문밖에서 조심스레 고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늘 그렇듯 옅은 불안이 배어 있었다. 정하람이 요즘 자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버릇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마당으로 나서자 정유나가 달려왔다. 말총머리가 팔딱거렸다. "오라버니, 정말 가는 거예요?" "호천문 입문시험이다. 가야지." "하빈 오라버니도 같이 가는 거잖아요. 저만 두고." 정하빈이 뒤에서 웃으며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돌아온다. 아버님 뜻이니 어쩌겠느냐." 정웅비가 대청에서 두 조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이자 현 가주였다. "하빈아." "예, 숙부님." "반달의 시간을 주마. 그 안에 한 단계를 더 뚫어보아라." 정하빈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불과 이 주 전, 하람의 곁에서 수련하며 력무경 칠중을 이뤄낸 그였다. 형답지 못했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한 조바심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정풍헌 형님은 운란검문에 들어간 지 오 년째 소식이 없었다. 아버지 정태산은 행방불명이었다. 정가의 기대는 이제 이 두 형제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정하람은 그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담담했다. 대문을 나설 때, 정하람이 잠깐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았다. 소연이 두 손을 모은 채 그를 배웅하고 있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녀오마." 짧은 인사만 남기고 정하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청하성으로 가는 관도(官道)는 인적이 드물었다. 두 시진쯤 걸었을 때였다. 앞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천한 것이!" 정하빈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 길가에 늙은 상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 화려한 비단 장포를 걸친 소년이 서 있었다. 허리춤에는 값비싼 검이 매달려 있었고, 눈빛에는 오만이 가득했다. 정하람의 시선이 그 소년에게 닿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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