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생, 외눈의 도련님

4화

천익이라는 그리폰은 처음 봤을 때의 위압감과는 달리, 며칠 지내다 보니 제법 사람 — 정확히는 나 — 을 잘 따랐다. 아침마다 마구간 앞을 지나갈 때면 그 거대한 부리를 내 어깨 쪽으로 슬쩍 들이밀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나는 매번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저 날카로운 부리로 사람 머리통 하나쯤은 그냥 뽑아버릴 것 같은데, 나한테는 강아지처럼 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익의 콧등을 쓰다듬어주었고, 녀석은 그럴 때마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차은호는 첫 승마 수업을 그리폰이 아닌 평범한 말로 시작한다고 했는데,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 거대한 새사자를 처음부터 타는 건 무리지. 애초에 저건 말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맹수 아닌가.' 마구간지기가 끌고 온 것은 갈색 털의 온순해 보이는 승용마였는데, 차은호는 그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 말의 이름은 '보리'입니다. 성격이 유순해서 처음 배우는 분들에게 적합합니다." "이름이 왜 보리인가?" "먹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간결하고 사무적인 대답이었는데, 그 답변 속에 숨은 미묘한 유머가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 사람 은근히 재미있는 구석이 있단 말이지.'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안장을 향해 걸어갔는데, 여섯 살짜리 몸으로 이 커다란 짐승 위에 올라탄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아득한 느낌이었다. 보리의 등은 내 눈높이보다 한참 위에 있었고, 그 거리감이 묘하게 아찔했다. '전생에는 지하철도 못 지켜 죽었는데, 이번 생엔 말한테 밟혀 죽는 건 아니겠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차은호의 도움을 받아 안장에 올라앉았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받쳐 들어 올리는 순간, 생각보다 단단한 힘이 느껴졌는데, 그 힘의 크기가 새삼 그의 정체를 상기시켜주었다. '역시 부단장이라는 게 그냥 붙는 직함이 아니구나.' 처음 며칠은 무난했다. 보리는 정말로 온순했고, 차은호는 고삐를 잡는 법,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는데, 그 설명이 어찌나 논리적이던지 나는 몇 번이나 감탄했다. '이 사람, 그냥 부단장이 아니라 교육자 자질도 있는데.' 그는 내가 고삐를 너무 세게 당길 때마다 손목을 가볍게 잡아 힘을 조절해주었고, 내가 균형을 잃을 때마다 정확한 각도로 팔을 받쳐주었다. 그 손길에는 불필요한 동작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며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실전을 겪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차은호, 자네는 말도 잘 타는가?" "기본적인 것은 익혀두었습니다. 기사에게 필요한 소양 중 하나입니다." "겸손하기는. 그 실력이 기본적인 수준일 리가 없는데." 그는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저 표정, 뭔가 즐거운가 보군.' 그렇게 훈련장을 몇 바퀴 도는 사이,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고, 낙안 백작가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까지 나가는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은 하늘이 유난히 맑았고, 정원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으며,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좋은 날씨였다. 붉은빛 장미와 노란 튤립이 오솔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공기 중에는 흙냄새와 꽃향기가 섞여 있었는데,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다 진짜 말 잘 타는 귀족 도련님 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하며 보리의 등에 앉아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차은호는 내 옆에서 도보로 함께 걸으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날씨가 참 좋군. 이런 날엔 훈련도 즐겁게 느껴지는데." "기후가 좋을 때일수록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숲의 마물들도 이런 날엔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그런 걱정도 하는가. 자네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이야." 그가 그 말에 짧게 고개를 숙였는데, 그 순간 나는 그의 표정에서 미묘한 긴장을 읽어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꽃향기에 취해 그 신호를 흘려버렸다. '뭐, 별일 있겠나. 여기는 백작가 정원인데.' 그런 안이한 생각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숲 쪽에서 날카로운 새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보리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삐를 당겼는데, 그 순간 무언가 검은 물체가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와 보리의 다리 앞을 가로질렀다. 정체를 파악할 틈도 없이 보리는 앞다리를 번쩍 들며 거세게 울었고, 나는 몸이 붕 뜨는 감각을 느끼며 안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씨.' 짧은 순간, 나는 이 상황이 단순한 놀란 말의 반응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는데, 검은 물체가 뱀처럼 생긴 작은 마물이라는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손끝의 고삐가 완전히 빠져나가 버린 뒤였다. 그 마물의 비늘은 기름을 바른 듯 번들거렸고, 붉은 눈이 나를 향해 번쩍이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이런 게 정원에 있었다니,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런 원망 같은 생각이 스치는 사이에도 몸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차은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도련님! 몸을 낮추십시오!" 그 외침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보리는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등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필사적으로 목덜미를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손가락 사이로 갈색 털이 미끄러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떨어지면 안 돼, 떨어지면 안 돼.'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는데, 정작 몸은 그 생각을 따라주지 않았다. 오솔길을 벗어난 보리는 숲 가장자리의 바위 지대로 뛰어들었고, 나는 그 순간 몸이 크게 기울어지는 걸 느끼며 균형을 완전히 잃었다.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고,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으며, 다음 순간 등이 무언가에 세게 부딪히는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아, 이번엔 진짜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치는 사이, 나는 바닥을 몇 바퀴 굴렀는데, 왼쪽 얼굴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그 통증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 전생을 포함해도 —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마치 얼굴 반쪽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손을 뻗어 얼굴을 만져보려 했지만,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시야의 왼쪽 절반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거 눈이잖아, 이거 눈이…….'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정신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입안에서는 흙과 피가 섞인 맛이 느껴졌고, 코끝으로는 축축한 풀냄새가 스쳤다. 온몸의 감각이 하나씩 꺼져가는 것 같았는데, 그 와중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죽으면 장례식은 화려하게 해줄까. 백작가 아들인데.'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다. 멀리서 차은호가 달려오며 무언가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해졌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느껴졌고, 누군가 내 몸을 붙잡는 손길도 느껴졌지만, 그 모든 감각이 실이 하나씩 끊어지듯 멀어져갔다. '차은호, 자네 표정이 지금 어떤지 좀 보고 싶은데.'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눈앞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은 뜨겁고 축축한 무언가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피라는 걸 깨달은 순간 시야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귓가에서는 차은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음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전생에는 지하철에서, 이번 생에는 말 위에서.' 나는 그 아이러니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완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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