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 기척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나는 그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벽 바깥에서 들려온 발소리가 짐승인지 사람인지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신경을 긁었고, 결국 나는 텐트 안에서 뒤척이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다. 텐트 천장을 노려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는데, 짐승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고, 사람이라면 대체 왜 슬그머니 다가왔다가 사라졌는지 그 의도가 짐작이 안 가서 더 불안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별다른 습격이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이 됐다. 그래도 아침 해가 뜨자마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채로 일어난 걸 보면, 몸은 몸대로 피곤이 누적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시각, 우리가 있던 야영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다른 반 소환자들과 그들을 인솔하던 교사 몇 명이 임시로 마련한 캠프에서 회의 비슷한 걸 열고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다들 밤을 새워가며 몬스터를 경계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된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도 정보 교환은 필사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2학년 3반 쪽에서 벌써 안전 기지를 완성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고, 그 자리에 있던 한 남교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답했다.
"확인된 사실입니다. 시스템 알림에도 명시되어 있고요" 하는 그 말에, 회의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는 게 나중에 전해진 중론이었다. 누군가는 헛웃음을 흘렸고,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좁혔다는데, 그 반응들이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는 게 나중에 전해졌다.
"그 반에 대체 어떤 스킬 보유자가 있는 겁니까. 전투 계열 스킬로는 절대 하루 만에 저런 규모의 기지를 못 짓습니다" 하고 다른 교사가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말에는 은근한 불안이 배어 있었다는 게 나중에 전해졌다. 다들 소환 직후 각자의 반에서 파악한 스킬 목록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는데, 물, 불, 검, 창, 치유 같은 전투 계열이 대부분이었고 건축이나 제작에 특화된 스킬은 어느 반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종이에 각 반의 스킬 목록을 적어가며 대조했다는데, 스무 개가 넘는 스킬 중에 '제작'이나 '건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단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혹시 반 전체가 협력해서 만든 건 아닐까요" 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곧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협력한다고 해서 목재가 저절로 조립되고 함정이 저절로 파이지는 않습니다. 시스템 알림에도 '제작'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언급되어 있으니, 필시 특수한 제작 계열 스킬 보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는 게 그 자리에 있던 한 여교사의 분석이었는데, 그 말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심지어 "만약 그 스킬이 무기나 방어구까지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전투력 자체의 격차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라는 말까지 덧붙였다는데, 그 한마디가 회의장을 완전히 침묵에 빠뜨렸다는 게 나중에 전해진 후일담이었다.
왜 그런 불안을 느꼈는가 하면, 그 정체불명의 스킬 보유자가 만약 자기 반에만 협조적이고 다른 반과는 교류할 생각이 없다면, 물자와 안전이 극도로 부족한 이 상황에서 2학년 3반만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식량도, 물도, 안전한 잠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반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어느 한 반만 방벽과 함정까지 갖춘 안전 기지를 완성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생존 자체에 대한 위기감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날 회의의 결론은, 은근슬쩍 2학년 3반 쪽에 접근해서 그 스킬 보유자의 정체와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그들의 중론이었다. 다만 그 접근 방식을 두고도 의견이 갈렸는데, 정중하게 협상하자는 쪽과 아예 인력을 파견해서 상황을 살피자는 쪽으로 갈라져서 결국 결론을 못 내리고 다음 날로 미뤄졌다는 게 나중에 들은 뒷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완성된 방벽과 텐트를 다시 점검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밤새 이슬을 맞은 목재 이음새가 조금 헐거워진 곳이 있어서 그 부분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고, 함정 위에 덮어둔 낙엽이 바람에 날려간 곳은 새 낙엽으로 다시 덮으며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는데, 구서연이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어제 그 기척, 뭐였을까" 하고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모르겠어. 짐승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하고 말끝을 흐리자,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방벽 너머 숲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어제부터 계속 신경 쓰였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다른 반 사람들이었다면, 우리 기지를 보고 뭔가 요구하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 가능성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 방벽이니 함정이니, 어제는 그저 우리 생존을 위해서 만들었을 뿐인데, 그게 다른 반의 시선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셈이었다.
"뭘 요구한다는 거야" 하고 되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기지를 나눠달라거나, 아니면 너를 데려가려고 하거나" 하는 그 말에, 나는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하고 겸손 아닌 겸손을 떨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말이 완전히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라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어제 만든 방벽과 함정, 그리고 몬스터 무리를 격퇴한 사실이 시스템에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뭔가 심상치 않은 신호였으니까. 최초 사례라는 그 표현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이건 곧 다른 누구도 아직 못 해낸 일이라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 사실이 다른 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거나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구서연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이 시점에서는 이미 반쯤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부족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야영지 근처의 작은 개울까지 다녀왔는데, 물통을 몇 개씩 나눠 들고 왕복하는 길이 생각보다 고됐다. 물을 길어 올 때마다 팔이 뻐근해지는 감각이 반복됐는데, 그 와중에도 다들 서로 물통을 바꿔 들며 투덜거리는 여유는 잃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강다홍이 불쑥 물었다.
"야, 근데 너 그 스킬 말고 다른 것도 만들 수 있어? 예를 들면...뭐, 무기 같은 거" 하고 그녀가 물었는데,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목검이나 화살촉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 어깨를 팍 두드렸다.
"오, 그럼 나 검 하나 더 만들어줘. 아까 그거 진짜 쓸만하더라" 하는 그 말투가 지나치게 친근해서,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학교에서는 눈길조차 안 주던 애가 이렇게 스킨십을 곁들이며 말을 거는 게 낯설었으니까. 원래 강다홍은 반에서도 존재감이 워낙 크고 화려한 애들 무리에 속해 있어서, 나 같은 애랑은 접점 자체가 없던 사이였다. 그런데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지 하루도 안 돼서 이렇게 편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사람 관계라는 게 생각보다 더 상황에 좌우되는 거구나 싶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어, 만들어줄게" 하고 얼버무리자, 옆에서 걷던 윤레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홍이 니 진짜 편하게 부린다이" 하고 경상도 사투리 섞인 말투로 놀리자, 강다홍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뭐가, 우리 남편한테 검 하나 부탁하는 게 뭐가 이상해" 하고 태연하게 말했는데, 그 '남편'이라는 호칭에 나는 순간 사레들린 듯 헛기침을 했다.
"남편은 무슨..." 하고 반박하려 했지만, 강다홍은 이미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를 다시 팍팍 두드리고 있었다. 윤레아도 옆에서 낄낄거리며 "그럼 나도 검 하나 부탁해도 되나" 하고 슬쩍 끼어들었는데, 그 말에 강다홍이 "야, 줄 서" 하고 정색하는 시늉을 하는 걸 보니, 다들 이 살벌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구석을 억지로라도 찾아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슬쩍 편승해서 "제작에도 순서가 있어, 예약제로 받을게" 하고 농담을 던졌는데, 그 말에 구서연까지 옆에서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소소한 웃음이 오가던 그 순간, 야영지 방벽 바깥쪽 숲에서 인기척이 다시 감지됐다. 이번엔 어제처럼 슬그머니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나뭇가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 방향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들려왔고, 나무 사이로 낯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여럿 겹쳐 보였다. 어제의 그 정체불명의 발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뚜렷한 존재감이었다. 그중 한 명이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다급한 건지 반가운 건지 아직은 구분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