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숨이 턱 막혔다.
마기가 폐부까지 밀고 들어오는 감각이었다.
목구멍부터 심장까지, 뭔가 시커먼 게 통째로 쑤셔 박히는 느낌.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실제로 옆에 있던 초소 병사 하나는 딱 이 정도 농도의 마기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재가 되어버렸었다.
'나도 저렇게 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몸속 어딘가가 그 마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배 속에서부터 뭔가 꿀렁거리는 느낌, 마치 오래 굶은 사람이 뜨거운 국물을 삼켰을 때 나는 그런 위장의 반응 같았다.
[스킬 각성: 드레인 마법]
'드레인... 마법?'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마법서를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처음 보는 스킬명이었다.
왕립 마법 도서관에서 삼 년 동안 썩어가며 읽은 책이 몇 권인데, 이런 스킬은 목차에도 없었다.
'혹시 이거 금서에나 나오는 거 아니야?'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드레인 마법: 마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전환한다]
[단, 흡수량에 비례해 시간 지각 능력이 왜곡된다]
'...뭐라고?'
나는 순간 헛웃음을 터뜨렸다.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완전 사기캐 스킬인 줄 알았다.
근데 뒤에 붙은 저 단서 한 줄이 사람 뒤통수를 후려친다.
하필 이런 순간에 이런 페널티라니.
마치 최종보스 잡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저주받은 검을 주워버린 느낌이었다.
그것도 설명서를 안 읽고 장비해버린 그런 느낌.
옛날 게임이었으면 되돌리기 버튼을 눌렀을 텐데, 여긴 세이브도 로드도 없는 진짜 현실이었다.
앞에서 마신 군단의 선봉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에 반쯤 무너졌던 몸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재조립되고 있었다.
마치 부서진 레고 블록이 저 혼자 다시 조립되는 꼴이었다.
[경고: 마기 농도 상승 중]
'경고는 나중에 하고 지금 좀 도와줘라.'
시스템은 늘 이런 식이었다.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건 잘하는데, 어떻게 하라고는 절대 안 알려준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이번 시험 어렵습니다"만 말해주고 어디서 나오는지는 안 알려주는 선생님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딱히 별거 없는, 그냥 오래된 참나무 지팡이였다.
손잡이 부분은 오래 써서 반질반질해졌고, 끝에는 흠집도 여러 군데 나 있었다.
동료들은 이거 좀 바꾸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상하게 손에 익어서 못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지팡이 끝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색이었다.
마치 잉크를 물에 풀어놓은 것처럼, 지팡이 끝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흡수한다." 나는 중얼거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마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지팡이 끝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우우욱-!
소리 자체가 이상했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소리 같았다.
동시에 마물의 몸이 마른 낙엽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다이어트 광고 아니야.'
이런 상황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게 웃겼다.
[마기 흡수 완료]
[체력 회복 +40%]
[마력 회복 +65%]
'와, 이거 완전 사기잖아.'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동료들이 앞에 없어서 그런지, 이 압도적인 밸런스 붕괴를 아무도 못 본다는 게 아쉬웠다.
태현이가 옆에서 봤으면 분명 "야 이거 개발자 버그 아니냐"고 소리쳤을 텐데.
도윤이는 또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확인해보자"면서 내 앞을 가로막았을 거고.
그 둘 생각이 나니 살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곧 웃음이 사라졌다.
[시간 지각 왜곡 진행률: 3%]
'이건 또 뭔데.'
체감상 이제 막 흡수를 한 번 했을 뿐인데, 벌써 몸속 시계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밤새 게임하고 방을 나왔는데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는, 그런 시간 감각의 어긋남.
정확히 말하면 그것보다 더 이상했다.
지금 눈앞의 마물이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이, 체감으로는 삼 초 같았는데 몸속 감각으로는 삼십 분처럼 느껴졌다.
'이거 계속하면 나중엔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상이 스쳤다.
혹시 전투가 끝나고 나갔을 때, 몇 년이 지나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건 너무 오버였다.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협곡 안쪽에서 또 다른 마물들이 몰려나왔다.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였다.
마치 놀이공원 개장 시간에 입구로 몰려드는 인파 같았는데, 저건 사람이 아니라 죄다 마신 군단의 병졸들이었다.
'이걸 다 흡수하면 얼마나 왜곡되는 거야.'
계산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스킬 자체가 얼마 전에 각성한 거라, 참고할 데이터도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흡수하지 않고 정직하게 싸우다 죽거나, 흡수하면서 시간 감각을 갈아 넣거나.
'후자다.'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동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지금 이 협곡을 넘으면 바로 왕도로 이어지는 관문이었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며칠 안에 왕도 성벽 앞에 마신 군단이 진을 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마물 하나가 달려들었다.
콰가강!
나는 지팡이로 그 몸통을 받아치며 동시에 흡수 마법을 걸었다.
주우욱-!
마물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흩어졌다.
재가 흩날리는 모양이 꼭 불꽃놀이가 끝난 뒤 남는 잔재 같았다.
낭만적인 비유를 붙이기엔 상황이 너무 살벌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보였다.
[마기 흡수 완료]
[시간 지각 왜곡 진행률: 9%]
'벌써 9퍼센트라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방금 전 3퍼센트에서 두 번 만에 세 배가 뛴 셈이었다.
이대로 흡수를 계속하면, 언젠가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났는지, 한 달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그거 완전 재수생 시절이잖아.'
정신없이 문제집만 풀다가 문득 창밖 보면 계절이 바뀌어 있던 그 시절.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위험한 버전인 것 같았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마물들이 계속 밀려왔다.
한 놈을 흡수하면 세 놈이 더 튀어나오는 꼴이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에서 두더지 잡을 때마다 구멍이 두 개씩 더 생기는 그런 느낌.
'이거 밸런스 조정 좀 해줘라.'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팡이를 휘두르고, 흡수하고, 다시 휘두르고.
그 반복 속에서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체력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때, 마기의 핵 — 협곡 균열의 중심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시커먼 안개인 줄 알았는데, 안개가 점점 뭉쳐서 사람 형태 비슷한 것으로 변해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보다는, 옛날 만화에서 보던 최종보스의 실루엣에 더 가까웠다.
마신왕의 잔재가 뭉쳐서 새로운 존재로 재구성되려는 조짐이었다.
[경고: 균열 확장 진행 중]
'저게 완전히 열리면 끝이다.'
왕도까지 마신 군단이 밀려들 것이다.
태현이도, 도윤이도, 그들의 가족도 전부.
지금 이 순간 왕도 안에서 태평하게 저녁 먹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 못 막으면 그 사람들 전부 이 마기에 삼켜진다.
나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지팡이가 미끌거렸다.
'막아야 해. 어떻게든.'
[스킬 감지: 심연 역류(제한적 사용 — 흡수 한계 초과 마기 필요)]
'심연... 역류?'
처음 보는 스킬명이었다.
또 처음 보는 스킬이라니, 오늘 하루 만에 신규 스킬 두 개를 발견한 셈이었다.
이럴 거면 튜토리얼이라도 좀 만들어주지.
설명을 확인하니, 흡수 한계를 초과한 대상의 마기를 한꺼번에 역류시켜 균열을 강제로 틀어막을 수 있는 스킬이라고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대상의 마기가 내 흡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
'그럼 답 나왔네.'
계속 흡수하면서 버티다가, 대상의 마기가 내 흡수 한계를 넘으면 그걸 역류시켜 균열을 틀어막는다.
말은 간단했다.
체력 게이지 관리하듯이, 흡수 한계까지 버티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 감각이 얼마나 무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9퍼센트도 벌써 이 정도로 어지러운데, 흡수 한계에 닿으려면 대체 몇 퍼센트까지 가야 하는 걸까.
50퍼센트? 아니면 100퍼센트?
'그리고 100퍼센트 찍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시스템은 그것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항상 나중에, 그것도 사후에 알려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탈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책만 읽던 놈이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왕립 마법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장이나 넘기던 인생이었는데, 지금은 협곡 한복판에서 마신왕의 잔재를 앞에 두고 흡수 마법을 쓰고 있다.
인생이란 참, 예측 불가능한 전개투성이였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게 현실이라는 말이 맞았다.
"좋아." 나는 지팡이를 들고 선봉을 향해 걸어갔다.
"한번 해보자, 이거."
말은 자신 있게 뱉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버틸 수 있는 만큼만 버티고, 안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
계획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나은 계획은 없었다.
협곡 안쪽에서, 새로운 마물의 무리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나를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숫자가 방금 전보다 훨씬 많았다.
땅이 울릴 정도로 발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마치 콘서트장 스탠딩석에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는 소리 같았는데, 저건 팬미팅이 아니라 죽으러 오는 손님들이었다.
'이게 진짜 선봉이었나.'
지금까지 상대한 건 그야말로 맛보기였다는 뜻이다.
나는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버텨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채로.
등 뒤에서, 균열의 중심에 뭉쳐 있던 안개가 서서히 사람의 형태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 형체가 완전히 눈을 뜨기 전에,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