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을 넘는 의붓동생

1화

강태호는 그날, 병실 냄새를 온몸에 묻힌 채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소독약과 알코올,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희미하고 단 냄새—태리가 마지막으로 먹었던 딸기 시럽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냄새를 떼어내려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 복도의 형광등 불빛도,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던 손 소독제 스티커도, 심지어 자신이 신고 있는 운동화 밑창에 밴 그 냄새마저도 전부 태리와 이어져 있었다. 동생은 여덟 살이었고, 병명은 흔치 않은 데다 손을 쓸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으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채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는 게 그는 지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을 잃는 데 그렇게 짧은 시간이면 되는 걸까. 의사가 담담하게 병명을 설명하던 그 순간, 자신은 손톱 밑을 뜯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도 태호는 삼 년을 살아냈다. 회사에 다녔고, 밥을 먹었고, 가끔은 웃기까지 했다. 그게 이상했다. 태리는 없는데 자신은 계속 웃었다는 것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그는 습관처럼 휴대폰 속 사진첩을 열었다. 병실 침대 위에서 웃고 있는 작은 얼굴, 링거 줄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장난치던 손, 오빠 이 노래 알아 하고 묻던 목소리—그 모든 것이 사진 한 장 안에 눌려 있었고, 태호는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신호가 바뀐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사진 속 태리는 콧줄을 꽂은 채로도 눈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화면 안에서 그대로 멈춰 있다는 사실이 태호에게는 잔인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흘렀는데, 사진 속 시간만은 멈춰서 그를 붙잡고 있었다. 경적 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아주 짧고, 아주 크게. 누군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지만,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인지조차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시야가 하얗게 번지면서, 태호는 이상하게도 두렵다는 감정보다는 안도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꼈는데—이대로 가면 태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유치하고 절박한 계산이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을 스쳤다. 그 계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었던 건 바로 그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뜬 곳은, 전혀 다른 냄새를 가진 공간이었다. 나무 향과 밀랍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스며드는 차가운 바깥 공기. 천장은 낮고 어두운 목재로 짜여 있었으며, 그 결마다 세월의 흔적처럼 옹이가 박혀 있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은 거칠지만 두꺼웠고,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니—작았다. 손가락이, 손바닥이, 팔의 길이가 전부 낯설도록 작았다. 손끝으로 뺨을 짚어보았을 때, 그 뺨은 어른의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었고, 손목을 감싼 뼈마디도 가늘고 여렸다. '뭐야, 이거.' 침대 옆 작은 탁자에는 유리잔과 놋쇠로 만든 촛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촛대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윤은—아니, 그 순간까지는 아직 자신을 강태호라 여겼던 그 정신은—몸을 일으키려다 팔의 힘이 예상보다 형편없이 약한 것에 놀라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려 했을 뿐인데도 팔이 후들거리며 꺾였고, 그 바람에 옆에 놓인 놋쇠 촛대가 흔들려 쨍그랑 소리를 냈다. 창밖으로 낯선 지붕들이 겹쳐 있는 풍경이 보였는데, 그 어느 것도 그가 알던 도시의 실루엣이 아니었다. 뾰족한 첨탑과 회색 돌벽이 늘어선 풍경은 마치 어느 세트장에서 뚝 떼어온 배경 같아서, 이게 현실이라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기억은 뒤섞인 채로 밀려왔다. 태리의 마지막 숨소리, 자신의 몸이 아스팔트 위로 던져지던 순간, 그리고 지금 이 몸이 겪었을 어떤 삶의 파편들—열 살의 도윤이 이 저택에서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툭툭 끼어들었다. 승마 연습을 하다 낙마했던 기억, 식사 자리에서 포크를 잘못 쥐어 혼났던 기억, 유모의 손을 잡고 정원을 걷던 기억까지도 낯설면서 동시에 익숙했다. 자신이 이 몸으로 이미 몇 해를 살았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방금 전까지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뿌옇게만 남아 있었고, 도윤이라는 이름과 설란이라는 성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손에 익어, 마치 오래 입어온 옷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름을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설란 도윤. 발음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느낌이 어색했지만, 동시에 이 몸의 주인이 원래부터 그렇게 불려왔다는 사실이 뼛속 어딘가에 새겨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흠칫 몸을 굳혔다. 나무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도윤은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겼는데, 그 동작마저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듯 자연스러웠다. "도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소리가 나던데." 중년의 하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와 그를 살폈고, 그녀의 손에는 물이 담긴 대야가 들려 있었다. 도윤은 그 얼굴을 보면서도 여전히 어지러운 머리로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반가운 듯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게 몸에 남은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순전히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위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 것뿐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그는 자신이 방금 겪은 것이 단순한 낙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하녀는 그의 이마를 짚어보고, 열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심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하녀가 나가고 방문이 다시 닫힌 뒤, 도윤은 오래도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무로 짜인 낮은 천장, 그 결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그는 생각했다—이곳이 어디든, 자신이 누구든, 태리는 이제 없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손끝으로 이불의 거친 결을 문질러 보았다. 그 감촉이 낯설고도 생생해서,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몸이 먼저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마치 그 아이가 아직 어딘가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눈을 감으면 태리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았지만, 눈을 감아도 들리는 건 창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창밖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고 하얀 조각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사라지는 모습을, 도윤은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도 눈은 하얗다는 사실이, 도윤에게는 이상하게 낯설고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늘도, 눈도, 창틀도,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인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시린 걸까. 그리고 그 시림 속에서, 도윤은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이제 자신은 강태호가 아니었다. 강태호였던 무언가와, 설란 도윤이었던 무언가가 한 몸 안에서 뒤섞여버린,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앞으로 자신을 어떤 삶으로 밀어넣을지, 그는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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