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섯 살, 검을 쥐다

5화

천 조각을 손에 쥐고 그대로 굳었다. 색이 같았다. 어머니의 옷과 똑같은 색. 숲 도망길에서 걸치고 있던 회색 겉옷 자락과 같은 천이었다. 손끝으로 결을 만져보았다. 익숙한 질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십 번은 붙잡고 매달렸던 그 옷자락. 잠들 때 코를 파묻으면 나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이건 아니야." 천 조각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찢긴 자국이 선명했다. 가위로 자른 것도,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진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붙잡혀 억지로 잡아채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찢긴 끝이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힘껏 당겨서 뜯어낸 흔적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는 걸 잊었다. 주변을 살폈다. 발자국이 여러 갈래였다. 하나는 큰 어른 신발. 여러 개는 병사들의 부츠. 그리고 하나는 여자 신발이었다. 여자 신발의 흔적은 질질 끌려간 것처럼 이어져 있었다. 땅에 깊게 파인 자국과 얕게 남은 자국이 번갈아 있었다. 버티려고 했던 흔적이었다. 발끝이 땅을 파고든 자리가 두 번, 세 번 반복되었다. 그 흔적을 따라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흔적은 숲 바깥쪽, 성이 있는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완전히 끊겼다. 마치 그곳에서 사람을 들어 올려 옮긴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발자국이 갑자기 없어진 그 지점을. 땅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차가웠다.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엄마!" 목이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다시 걸었다. 숲을 헤매며 이름을 불렀다.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도, 발이 돌부리에 부딪혀도 멈추지 않았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가시덤불에 팔이 긁혀 피가 났다. 아프다는 감각조차 늦게 왔다. 한참 지나서야 팔뚝이 화끈거린다는 걸 알았다. "엄마, 어디 있어요." 목소리가 점점 갈라졌다. "대답해줘요, 제발." 바람 소리만 들렸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저 멀리서 짐승이 우는 소리. 사람의 목소리는 없었다. 어느 순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갈림길. 어머니와 헤어졌던 그 자리. 같은 곳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발밑에 낯익은 나무뿌리가 있었다. 아까 넘어질 뻔했던 그 자리였다. 세 번째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손에 쥔 천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까는 이 조각이 어머니가 도망치다 흘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누군가 어머니를 붙잡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붙잡히면서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소리 내지 않고 끌려갔다. 왜 그랬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 내가 돌아올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나도 붙잡힐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를 살리려고, 끝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숲의 소리가 한꺼번에 멀어졌다. 바람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고 손에 쥔 천 조각의 거친 결만 지나치게 선명했다. 가슴 한가운데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슬픈지 무서운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손이 닿지 않는 듯했다. 그 무감각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손에 쥔 천 조각을 가슴에 대고 눌렀다. 심장 소리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빨랐다. 너무 빨랐다. "엄마." 작게 불렀다.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불렀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엄마 말대로 도망쳤는데." "그런데 왜 엄마가 없어요." 밤이 깊어질수록 숲은 더 조용해졌다. 달도 구름에 가려졌다. 온몸이 떨렸다. 추위인지,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발끝도 차가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얼굴만 뜨거웠다.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천 조각을 그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아직 어머니의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무 아래 웅크려 앉아 있을 때, 눈앞이 갑자기 하얗게 밝아졌다. "또 만났네." 여신의 목소리였다. 눈을 들었다. 하얀 형체가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윤곽만 뚜렷하고 안은 흐릿했다. "이번엔 무슨 볼일이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확인하려고." 여신이 말했다. "네가 산 힘이 제값을 하는지." "제 엄마는 어디 있어요." "몰라." 너무 즉각적인 대답이었다. 감정도, 망설임도 없었다. 되묻고 싶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당신은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냐고. 그런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따져봐야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저를 도와주세요." "안 돼." 여신이 말했다. "그건 계약 조건에 없어." "그럼 뭐가 조건인데요." "네가 검을 계속 쓸 건지 아닌지, 그것만 궁금해." 여신이 한 걸음 다가왔다.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다. 가까이서 봐도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늘 곰을 죽였지." "제가 아니라 이 힘이요." "그 힘도 네 거야." 여신이 짧게 받아쳤다. "쓰기 싫으면 지금 돌려줘. 그럼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 "처음이라는 게 뭔데요." "무재능인 채로, 아버지 손에 죽는 것." 숨이 막혔다. 목구멍이 좁아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손이 다시 떠올랐다. 칼을 들고 다가오던 그 얼굴. 무재능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향해 겨눈 그 눈빛. 그 장면이 눈앞에서 다시 재생되는 것 같았다. "검을 계속 쓰면요." "살 확률이 올라가." 여신이 말했다. "대신 이미 낸 대가는 돌려받지 못해." "그 대가가 뭔데요." "아직 몰라도 돼." 손이 떨렸다. 대가.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곰을 죽였을 때 몸에 흘러들었던 그 이상한 힘. 그게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대신 가져갔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혹시 어머니와 관련이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엄마가." "몰라." 여신이 다시 잘랐다. "그건 대가와 상관없어." 정말 상관없는 걸까. 아니면 상관없다고 말해야 내가 계속 검을 쥐게 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신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가가 무엇인지,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아무것도. 그런데도 선택해야 했다. 검을 돌려주고 무력한 아이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힘을 계속 쥐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인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서하야. 엄마가 있잖아.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숨이 가빴는데도 웃어 보이던 얼굴. 손을 놓으면서도 놓지 않으려고 애쓰던 손가락의 힘. 엄마는 없었다. 지금 이 숲에는, 나 하나뿐이었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언젠가 어머니를 다시 찾아야 했다.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계속 쓸게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래." 여신이 짧게 대답했다. "잘 생각했어. 이제 이 거래는 완전히 성립된 거야." "이제 뭘 해야 하는데요." "살아." 여신이 말했다. "그거면 돼." 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 그 말 속에 숨겨진 게 얼마나 많을지, 지금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신의 형체가 서서히 흐려졌다. "다음에 또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얀 빛이 사라졌다. 숲은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검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에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차갑고, 단단하고, 낯설었다. 이 힘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니면 빌려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천 조각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어머니의 흔적이 남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잠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언제 이 숲으로 들어올지 몰랐다. 그때,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횃불이 아니었다. 등불 같은, 흔들림이 적은 빛이었다.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검 손잡이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병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숨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 그 불빛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나를 도우러 온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일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발소리가, 이제는 선명하게 들릴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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