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철갑 속에 핀 은월

1화

정비고 안은 조용했다. 형광등 하나가 파르르 떨리며 깜빡였다. 그 불빛 아래, 나는 K2 흑표 전차의 궤도 옆에 쭈그려 앉아 렌치를 돌리고 있었다. 밤 근무였다. 다른 정비병들은 이미 막사로 들어간 지 오래였고, 남은 건 나와 이 무거운 강철 덩어리뿐이었다. 정비고 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톡, 톡,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오늘도 야간 점검이라니… 팔자다 팔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궤도 텐션을 확인했다. 렌치를 조일 때마다 손목에 힘이 들어갔고,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정비고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금속 냄새와 기름 냄새가 코끝에 배어 있었다. 익숙한 냄새였다. 입대한 지 벌써 이 년째, 이 냄새는 내 몸 어딘가에 완전히 스며든 것 같았다. 전투복 소매에도, 손톱 밑에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이 냄새가 났다. 나는 렌치를 내려놓고 손등으로 이마를 슥 문질렀다.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여름밤인데도 정비고 안은 서늘했다. 궤도 점검을 마친 뒤 나는 몸을 일으켜 무릎을 두드렸다. 뚝, 소리가 났다. 이 년 동안 쭈그려 앉는 자세가 몸에 익어서인지 관절에서 나는 소리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나는 전차 옆면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고는 상부 해치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차 내부로 들어가 조종석에 앉았다. 의자는 좁고 딱딱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좁음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계기판에 초록빛 숫자들이 잔잔하게 떠 있었다. 엔진 온도, 유압, 탄약 적재량. 모든 게 정상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화면을 몇 번 눌러 점검 항목을 넘겼다.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이 순서는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창밖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평범한 밤이었다. 나는 잠깐 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정비고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바닥에 가늘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 짓도 슬슬 지겨워지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계기판 한쪽 구석에서 낯선 노이즈가 스치듯 지나갔다. 치직. 짧은 잡음이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화면을 다시 눌렀다. (어제 정비할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화면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래된 장비였다. 가끔 이런 잡음쯤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전차라는 게 다 그렇다. 몇 년씩 굴리다 보면 어딘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마련이었다. 나는 다시 유압 게이지에 시선을 돌렸다. 숫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0.1, 다시 0.1, 그리고 잠깐 0.9로 튀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건 좀 이상한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숫자는 다시 잠잠해졌다. 손으로 계기판을 톡톡 두드려봤다. 반응이 없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진단 태블릿을 꺼내 전차 시스템에 연결했다. 케이블을 꽂는 손끝이 미세하게 차가웠다. 화면이 켜졌다. 평소와 다른 로딩 속도였다. 느릿느릿, 마치 뭔가에 걸려 있는 것처럼. 로딩 바가 반쯤 차오르다가 멈췄다. 나는 손끝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먹통 됐나.) 혹시 케이블 접촉 불량인가 싶어 나는 커넥터를 살짝 흔들어봤다. 변화가 없었다. 그 순간 태블릿 화면 전체가 새파랗게 번쩍였다. 번쩍.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귀 안쪽에서 이명이 울렸다. 윙— 하는 높은 소리가 먼저 들리더니 곧 웅— 하는 낮은 진동음으로 바뀌었다. 그 진동음은 태블릿에서 시작해 조종석 전체를, 전차 전체를 타고 흘렀다. (뭐, 뭐야 이거.) 손끝이 떨렸다. 나는 급히 조종석 손잡이를 붙잡았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전차 내부의 초록빛 계기판 불빛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초록으로 돌아왔다. 몸이 살짝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발밑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느낌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짧은 정적이었지만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의 정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계기판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숫자들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창밖으로 보이던 정비고의 콘크리트 벽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봐도 벽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나무들이 서 있었다. 어두운 초록빛 나뭇잎들이 빽빽하게 엉켜 있었다. 달빛이 그 사이로 스며들어 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뭇가지들이 미풍에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사각. 익숙한 소리였는데도 어딘가 낯설게 들렸다. 나는 조종석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밖을 살폈다. (여기가… 어디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손으로 계기판을 붙잡고 다시 한 번 화면을 확인했다. GPS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위치 좌표란은 텅 비어 있었다. 전차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나는 다시 몸을 낮췄다. 뭔가 이상했다. 숲의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습하고, 낯선 향이 섞여 있었다. 풀 냄새와도 다르고, 흙 냄새와도 다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향이었다. 풀벌레 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그 리듬이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했다. 익숙한 소리인데도 박자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나는 조종석 해치를 살짝 열고 밖을 내다봤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달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의 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하나는 은빛, 하나는 옅은 붉은빛. 두 달빛이 겹쳐지며 숲 전체를 이상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이건… 지구가 아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느낌이었다. 이게 꿈인지, 아니면 정말로 벌어진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손등을 꼬집었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움직였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산만한 크기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 형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두 개의 날개, 길게 뻗은 목. 날개를 접었다 펴는 움직임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우지끈, 우지끈. 그 형체가 낮게 울부짖었다. 크르르르— 낮고 깊은 울음이 숲 전체를 흔들었다. 내 몸 안쪽까지 진동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나는 조종석 안으로 몸을 다시 밀어 넣었다.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저게… 뭐야.)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훈련이 아니었다. 시뮬레이션도 아니었다.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전기를 붙잡았지만 잡히는 신호는 아무것도 없었다. 치지직거리는 잡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달빛 아래, 그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나는 그 순간 숨을 멈췄다. 그림자의 눈이, 두 개의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이 정확히 내가 있는 쪽을, 이 강철 덩어리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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