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철갑 속에 핀 은월

5화

그 문양은 새겨진 게 아니라 낙인처럼 보였다. 검붉은 비늘 표면에, 마치 불에 지진 흔적처럼 남은 원형의 무늬였다. 중심에는 날개를 펼친 용의 형상이, 그 주위로 톱니 같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다. 나는 몸을 낮춰 사갈의 사체 옆에 무릎을 꿇었다. 타다 남은 살점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역겨웠지만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이 문양이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표면을 조심스럽게 훑었다. 비늘 위인데도 이상하게 서늘했다. 마치 얼음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끝에서부터 팔뚝까지 소름이 올라왔다. (이건 그냥 문신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손을 거두고 다시 그 문양을 눈으로 훑었다. 톱니 모양의 테두리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누군가 정성을 들여 새긴 흔적이었다. 우연히 생긴 상처나 흉터가 아니라는 걸,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마른 잎을 밟는 소리였다. 다은과 하늬가 함께 다가와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아직 긴장이 채 가시지 않은 기색이 남아 있었다. 하늬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녀의 시선이 사갈의 몸통에 새겨진 문양에 고정되었다. "이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발끝이 흙바닥을 스치며 작은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감싸듯 움켜쥐었다. "뭔데요?" 나는 하늬를 돌아보며 물었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눌러 물었지만, 급한 마음이 새어 나오는 걸 감출 순 없었다. 하늬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적염용국의 인장이에요." "적염용국?"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머릿속에서 지도를 그려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은이 대신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서쪽 산맥에 있는 용들의 나라예요. 그곳 용들은 계급이 아주 엄격하대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저 문양은… 그냥 아무 용이나 새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통령의 직접 명령을 받은 용만 새길 수 있다고 들었어요." (통령이라니.) 나는 사갈의 사체를 다시 내려다봤다. 낮게 가라앉은 밤공기 속에서, 그 낙인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그 문양 자체가 살아서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 통령이라는 게…" 말끝을 흐리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하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대답을 하기 전에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흑염군주 헤란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다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두 소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주변의 공기마저 순간적으로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풀벌레 소리조차 잦아드는 듯했다. (이름 하나에 이 정도 반응이라니.) 나는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치는 걸 느꼈다. 그 감각은 좀 전에 비늘을 만졌을 때 느꼈던 서늘함과 닮아 있었다. 우연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헤란은… 그냥 강한 용이 아니에요." 다은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녀의 두 손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자존심이 세고, 자기 명령을 어기는 걸 절대 못 참는다고 들었어요. 부하 하나가 이렇게 죽었다는 걸 알면…"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말끝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 뒷말을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짐작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침묵을 대신 채우듯 물었다. "그럼 이 습격이… 그냥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하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사갈이 왜 이 조용한 마을을 굳이 노렸는지, 저희도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을 쪽을 돌아보았다. 무너진 지붕들과 아직도 그을음이 남아 있는 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작고 조용한 곳을 굳이 노릴 이유가… 없었어요. 자원도 없고, 큰 세력도 없는 곳인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배어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먼 곳에서 불에 탄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쿠웅. 그 소리에 다은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나는 사갈의 사체를 다시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문양, 계급, 통령, 자존심.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었지만, 그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왔다면… 이걸로 끝이 아닐 수도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이 뻐근했다.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마을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남은 화염의 흔적들이 아직도 붉은 잔광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때, 하늬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이 거리에서도 보였다. "저기…" 그녀의 손끝이 하늘 한쪽을 가리켰다. 떨리는 손가락이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두 개의 달 사이, 서쪽 산맥 방향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낮게 떠 있었다. 너무 멀어서 형체를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그 크기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갈보다 훨씬, 몇 배는 더 컸다. 밤하늘의 별빛조차 그 그림자 주위에서는 유난히 어둡게 가려지는 것 같았다. (설마.) 숨이 턱 막혔다.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다은도 그 그림자를 발견했는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의 다른 손은 무의식중에 하늬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림자는 잠시 그 자리에서 정지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쪽을, 정확히는 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순간적으로 사라진 듯했다. 풀벌레 소리도, 멀리서 들리던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도, 모두 정지해 있었다. "저건…" 하늬의 목소리가 완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겨우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자꾸 끊어졌다. "헤란의… 진짜 힘일지도 몰라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마주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는 몇 초간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천천히 산맥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다은과 하늬도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본 채로 굳어 있었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밤바람이 불타 버린 마을 위로 낮게 스쳐 지나갔다. 타고 남은 재가 그 바람에 실려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 재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갈의 몸에 새겨진 낙인, 그리고 방금 하늘에서 사라진 그 거대한 그림자. 이 두 가지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다시 사갈의 사체 쪽을 내려다봤다. 그 낙인은 여전히 검붉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를 향해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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