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국선 파티에 배정된 이 저택에서 살게 된 지 5년째였지만, 도윤은 여전히 서윤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시장은 오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차 바퀴가 진흙탕을 튀기며 지나가고, 좌판마다 상인들이 목청을 높여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그 풍경 속에서, 서윤은 유독 눈에 띄었다.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은발과, 안개 낀 새벽 숲을 담아놓은 듯한 붉은 눈동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목검 하나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마치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이라도 감상하는 듯 진지한 얼굴로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이거, 얼마짜리야?" 서윤이 낡은 목검을 들고 물었을 때, 도윤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는 이미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땀에 절어 색이 변해 있었다. 누가 봐도 몇 번은 되팔린 물건이었다.
"동화 세 개."
"동화가 뭔데."
도윤은 순간 말을 잃었다. 성검에 선택된 용사가 화폐 단위를 모른다는 게, 신분 차이를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저 목검 하나 값이 자신에겐 이틀 치 식비인데, 서윤은 그것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왕실이 관리하는 저택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시종이 대신 사다 주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 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그, 동화 열 개가 은화 한 개고, 은화 열 개가 금화 한 개야. 우리 이번 달 생활비가 은화 다섯 개인데, 이 목검 세 자루면 벌써 동화 아홉 개 나가는 거고."
"그게 많은 거야?"
"당연히 많지! 그, 그 돈이면 일주일 치 감자를 살 수 있는데."
서윤은 그 말을 듣고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목검과 도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처럼. 도윤은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럼 안 살래." 서윤이 목검을 도로 좌판 위에 내려놓았다.
"아니, 이미 산 거잖아."
"환불할래."
"환불이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도윤이 중얼거렸지만 서윤은 이미 상인 쪽을 향해 당당하게 돌아서 있었다.
결국 도윤이 상인에게 사정사정해서 반값에 되팔고 나서야 소동이 끝났는데, 상인은 처음엔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서윤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긋이 바라보자 슬그머니 자세를 낮추며 값을 깎아주었다. 도윤은 그 광경을 보며 성검의 용사가 가진 진짜 무기는 검이 아니라 저 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 와중에 서윤이 도윤의 팔을 붙잡고 시장 골목을 걸으며 계속 "이건 얼마야?" "저건 얼마야?" 하고 묻는 통에, 도윤은 종일 화폐 강의를 하는 기분이었다. 배추 한 단, 가죽 장화 한 켤레, 유리로 만든 목걸이, 심지어 길거리에서 파는 군밤 한 봉지까지 서윤은 놓치지 않고 물었고, 도윤은 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이상한 건, 그게 그렇게 귀찮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싼데 왜 안 사?"라거나 "이게 이렇게 비싸다니, 이상한 세상이네" 하고 중얼거릴 때마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 *
저녁이 되어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정훈이 그 얘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식탁 위에 놓인 스튜 그릇이 흔들릴 정도로 웃어대는 통에, 국물이 살짝 넘칠 뻔했다.
"서윤이 진짜 그랬어? 아이고, 우리 용사님 세상 물정 모르는 거 귀엽네."
"형님, 서윤이 앞에서 그런 말 하시면 큰일 나요." 도윤이 진지하게 말렸다.
"왜, 화낼까 봐?"
"그건 아닌데……" 도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서윤은 화를 내는 대신 그냥 무표정하게 정훈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유 없이 정훈의 방패에 미세한 균열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몇 달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정훈이 서윤의 검술 자세를 두고 "무슨 나무 막대기 휘두르는 것 같다"고 놀렸다가, 다음 날 방패 정중앙에 손가락 하나 폭의 균열이 생겼더랬다. 정훈은 지금도 그게 우연이라고 믿고 싶어 했지만, 도윤은 확신했다.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무튼, 형님이 그런 식으로 놀리시면 나중에 방패값 물어내야 할지도 몰라요."
"방패값이 얼만데?"
"금화 열두 개요."
정훈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 * *
다음 날, 저택 뒷마당에서 검술 훈련을 하던 서윤이 문득 도윤에게 물었다. 아침 햇살이 마당의 축축한 흙바닥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서윤이 휘두르는 검이 그 빛을 가르며 지날 때마다 작은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다.
"넌 왜 그렇게 돈에 대해 잘 알아?"
"나야 뭐, 평민이니까." 도윤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서윤의 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붉은 눈동자가 도윤을 정면으로 응시했고, 그 시선이 어딘가 아파 보였다. 마치 세필로 정교하게 그려낸 그림 속 인물이 갑자기 살아나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평민인 게 왜 죄야."
"죄, 죄는 아니지." 도윤이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무거워질 줄은 몰랐다. "그냥, 나는 너처럼 태어날 때부터 뭘 걱정 안 해도 되는 삶은 아니었다는 거지. 밥값 걱정도 하고, 집세 걱정도 하고 그런 거."
"나는 걱정 안 해봐서 몰라." 서윤이 검을 든 손을 슬쩍 내리며 말했다. 그 말투에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하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게 어떤 느낌이야?"
도윤은 잠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매달 은화 개수를 세면서 잠드는 밤이라거나, 시장에서 감자값이 동화 한 개 올랐다는 소식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기분을. 성검의 용사에게, 그것도 이 세계로 소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존재에게 그걸 설명하는 건 마치 색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붉은색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항상 조금씩 불안한 느낌이야." 도윤이 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검을 검집에 꽂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어딘가 결연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네가 걱정 안 해도 되게 해주고 싶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도윤은 그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그저 서윤이 파티원으로서 하는, 흔한 격려의 말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당에 부는 바람에 서윤의 은발이 가볍게 흩날렸고, 도윤은 그 모습을 그저 무심히 바라보며 다음 훈련 일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 도윤은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걱정 안 해도 되게 해주고 싶다니, 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단순한 격려의 말이라면 왜 그렇게 진지한 얼굴이었을까.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고, 도윤은 그 감정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그냥 이불을 뒤집어썼다.
창밖에서는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