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사흘 뒤, 왕도 근교의 시험장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규모였다. 원형 경기장처럼 생긴 곳인데, 콜로세움이라고 해도 먹힐 정도로 컸다. 돌로 쌓은 관중석이 몇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위로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도 있었고, 귀족원 특유의 문장이 박힌 깃발도 있었다.
관중석 절반은 귀족들, 절반은 귀족원 소속 관리들로 가득 찼다.
웅성웅성.
그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들 나를 구경거리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저 사람이 A등급 마수를 잡았다는···"
"3년간 실적이 저조했다던데 갑자기?"
"들리는 말로는 코인 등급이 이례적이라던데."
귓속말이 여기까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다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표정만 봐도 대충 무슨 소리인지 짐작이 갔다.
아니, 시선들아. 나도 나름 억울한 인생을 살고 있단다. 3년 동안 실적이 저조했던 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원래 이 몸이 그렇게 태어난 거고, 갑자기 잘 나가는 건 순전히 어떤 미친 게임 시스템 때문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여기서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걸었다.
관중석 맨 앞줄, 특별히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었다. 금색 실로 자수가 놓인 예복을 입은 노년의 남자였다. 흰 수염을 가지런히 다듬은 게 딱 봐도 이 나라에서 뭔가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귀족원 원장 서명훈입니다. 이번 시험의 최종 심사관입니다.】
원장이라니. 시험 하나 치르는 데 이렇게 거창한 인물이 나올 일인가.
서명훈이 손을 들자 경기장 중앙 바닥이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 철제 우리가 올라왔다.
끼이이익.
쇠가 긁히는 소리가 뼈까지 울렸다. 저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에 갇힌 것은 처음 보는 형태의 마수였다. 새 같은 몸통에 발이 여섯 개, 부리 대신 톱니 같은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끔찍했다. 몸통은 검은 깃털로 덮여 있었고, 발톱은 낫처럼 휘어 있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딱딱.
【B등급 마수, 육각조입니다. 무리 사냥을 즐기는 개체입니다.】
"무리? 저거 하나만 있는데?"
【우리 안에 세 마리가 더 있습니다.】
아, 그러시겠지. 하나 나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열리자 나머지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네 마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땅을 딛는 발소리가 심장 박동보다 빨랐다. 육각조 특유의 낮은 자세, 목표물을 향해 일직선으로 파고드는 움직임. 저건 사냥이 아니라 처형 같았다.
서명훈이 큰 소리로 규칙을 외쳤다.
"이헌 백작. 이 시험은 단독 처치만 인정된다. 부하의 도움 없이 마수 넷을 상대하라!"
"…뭐요?"
목소리가 저절로 갈라졌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네 마리를 혼자 잡으라고? 아까까진 코인 소환으로 대충 때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관중석에 있던 강도현이 얼굴을 하얗게 굳혔다. 그가 벌떡 일어나 뭔가 소리치려는 것 같았는데, 옆에 있던 경비병이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
황태호와 윤슬아도 자리에서 나서려다 규칙 때문에 멈춰 섰다. 두 사람 다 표정이 심각했다. 특히 황태호는 손에 든 지팡이를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백작님, 코인을 쓰셔야 합니다!]
윤슬아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다급하게 들려왔다. 거리가 있는데도 또렷하게 들리는 걸 보면 그녀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코인 소환은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 다만 소환된 존재의 힘만으로 처치해야 하며, 각하 본인의 직접 개입은 불허됩니다.】
"뭉치 부르면 되는 거잖아!"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뭉치가 나와서 저 육각조 네 마리를 짓밟아 버리면 될 일이었다. 지난번 A등급 마수도 뭉치가 한 발로 눌러 죽였는데, 저 정도야 뭐.
그런데 이번엔 아까와 다른 느낌이 났다. 뭔가 손끝이 뜨겁게 지글거리는 감각. 마치 손바닥에 뜨거운 모래를 한 움큼 쥔 것 같았다.
【코인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뭔 반응인데!"
【분석 중입니다.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아니, 지금 이 상황에 대기라는 말이 나와?"
대기할 시간이 없었다. 육각조 네 마리가 벌써 반쯤 거리를 좁혀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 형체가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섯 개의 다리가 각기 다른 박자로 지면을 찍었고, 그 소리가 겹치면서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듯한 소리.
관중석 어디선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펑!
빛이 터졌다.
그런데 나온 건 뭉치가 아니었다.
뭉치의 그 거대하고 위압적인 실루엣을 기대했는데, 눈앞에 나타난 건 전혀 다른 존재였다.
자그마한,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의 회색 새 한 마리였다. 눈은 반쯤 감긴 채 나를 지루하다는 듯 쳐다봤다.
"···누구세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이건 대체 뭐야. 뭉치는 어디 가고 이런 참새 같은 게 나온 거야.
【신규 소환수 확인. 명칭 미지정. 위협도 측정 불가.】
"측정 불가가 뭐야, 이거 지금 나 죽으라는 거야?"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지금 저 네 마리 짓밟을 존재가 필요한데 이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작은 새가 하품을 하듯 부리를 벌렸다. 마치 이 상황이 전혀 급하지 않다는 듯, 세상 느긋한 몸짓이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소리로 울었다.
삐이익.
그 순간, 관중석 전체가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소음이 마치 누가 스위치를 끈 것처럼 사라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달려오던 육각조 네 마리가 갑자기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듯 굳어버렸다.
발톱이 지면에 박힌 채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마치 벌에 쏘인 사람이 그대로 정지한 것 같았다.
서명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표정이었다. 저 노인네도 처음 보는 광경인 모양이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게 대체 무슨···"
"B등급 넷이 한 번에?"
"저 새 한 마리한테?"
작은 새는 여전히 지루한 표정으로 날개를 접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방금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분석 완료. 해당 개체의 스킬은 '공포 지배'로 추정됩니다. 등급 산정 불가능. 코인 반응이 정상 범위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정상 범위를 초과했다는 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솔직히 그것만 알고 싶었다. 이게 나한테 유리한 상황인지, 아니면 목이 날아갈 상황인지.
대답이 늦게 왔다. 그 잠깐의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몇 초였을 텐데, 체감상으론 몇 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육각조들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고, 관중석의 시선은 전부 내 손바닥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판단 보류. 다만 이 힘이 노출될 경우, 각하께서는 더 이상 평범한 백작으로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평범한 백작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평범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그래도 이 문장이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달랐다. 뭔가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
관중석에서 서명훈이 부하에게 뭔가 다급히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하는 고개를 숙이고 급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이 상황을 어딘가에 보고하러 가는 것이겠지.
육각조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고, 시험장 전체가 나를, 정확히는 내 손바닥 위의 작은 새를 주목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시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감각이란 이런 거구나.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입안이 마른다. 침을 삼키려 했는데 삼킬 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강도현은 여전히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채로 굳어 있었고, 황태호는 지팡이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윤슬아만이 유일하게 침착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 속에서도 뭔가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짜장면 먹을 시간이 더더욱 없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