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문고리가 차가웠다.
손바닥에 땀이 뱄는데도 그랬다.
차가운 쇠와 축축한 살갗이 맞닿는 감촉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이 손잡이를 마지막으로 잡은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 안 걸려요."
문 너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낮고, 서두르지 않고, 그러면서도 물러설 기색이 없는 목소리.
한 번 말하고 끝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억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다각.
뭔가 신발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초조함이 아니라 그냥 기다림의 리듬이었다.
저 사람은 지금 이 문 앞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아무렇지 않아 하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 기다림쯤은 계산에 이미 넣어놓은 사람처럼.
나는 그게 이상하게 무서웠다.
협박도 아니고 재촉도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무서웠다.
협박이었다면 화라도 낼 수 있었을 텐데, 저 담담함 앞에서는 화를 낼 자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삼 년 가까이 이 문을 사람 때문에 연 적이 없었다.
택배기사, 관리인, 가끔 오는 검침원.
그들과는 대화도 필요 없었다.
문틈으로 사인만 하면 됐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지옥룡 토벌대의 리더가,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각성자 중 하나가, 내 원룸 문 앞에 서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연예인을 마주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비현실이었다.
손잡이를 돌렸다.
딸깍.
문이 열리자 먼저 들어온 건 향이었다.
비 온 뒤의 흙냄새 같은 것, 그리고 그 밑에 얕게 깔린 쇠 냄새.
던전에서 막 나온 사람 특유의 냄새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 냄새 안에는 뭔가 더 있었다, 아주 옅게, 탄내 비슷한 것.
싸움의 흔적이 아직 몸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은 것 같았다.
키가 컸다.
첫인상은 그거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야 눈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그다음 눈에 들어온 건 손목에 채워진 인식표, 그리고 그 인식표 위로 뻗은 손가락 끝에 남은 옅은 자국들이었다.
마치 오래 반복해서 그린 도형의 잔상처럼, 손끝마다 희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소환진을 그릴 때 생기는 흔적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저 손끝으로 대체 몇 번이나 진을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인식표 등급란에 적힌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소환사.
그 옆에 작게 적힌 등급 표기는 눈에 담기도 전에 그녀가 손을 옷깃 속으로 슥 밀어 넣어 가렸다.
보여줄 필요 없다는 듯이.
"윤이서 씨 맞죠."
그녀가 먼저 말했다.
대답 대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목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았다.
성대가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강하린이에요. 닉네임은 이미 아시겠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웃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당연히 알 거라는 확신이 목소리에 배어 있었고,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지옥룡 토벌대의 강하린을 모르는 각성자 커뮤니티 유저는 없었다.
나는 문틀을 붙잡고 서 있었다.
다리가 살짝 굳어 있었다.
도망칠 것도 아니면서 도망칠 자세를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밤늦게 죄송해요. 근데 이건 낮에 할 얘기가 아니라서."
낮에 할 얘기가 아니라니, 대체 무슨 얘기이길래.
나는 속으로 되물었지만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이 나갔다.
"저... 대면은 안 하기로."
원칙이라고 해봐야 나 혼자 정한 규칙이었지만, 삼 년을 지켜온 유일한 규칙이기도 했다.
얼굴 없는 조합사, 그게 내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알아요. 제가 지킨 게 아니라 알아요, 라고 말할 자격은 없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과처럼 보였는데, 사과라기엔 눈빛이 너무 담담했다.
미안함보다는 사실 확인에 가까운 태도였다.
"5분만요."
5분이 30분이 될 걸 그때는 몰랐다.
***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방을 훑어봤다.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조합대 위에 쌓인 유리병들, 응결 중인 촉매, 벽에 붙은 재료 목록표.
뭔가를 평가하는 눈이었다.
값을 매기는 게 아니라 성능을 재는 눈, 이라고 해야 맞을까.
"생각보다 작네요."
"...죄송해요."
반사적으로 나온 사과였다.
내 방이 좁은 게 왜 내 잘못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아니, 그런 뜻 아니고."
그녀가 손을 저었다.
"이 정도 공간에서 그 물량이 나온다는 게 신기해서요."
칭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됐다.
나는 의자를 하나 내밀었다.
그녀는 앉지 않았다.
앉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사람처럼, 서 있는 자세가 편안했다.
서 있는 채로, 그녀가 본론을 꺼냈다.
"다음 달에 우리 길드가 게이트 하나를 열어요."
"게이트를... 여신다고요?"
"S급 던전이에요. 등록된 지 삼 년째 아무도 클리어 못 한 곳."
방 안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 신경 탓인지 진짜인지 모를 정도로.
깜빡, 다시 깜빡.
나는 그 불빛을 괜히 한 번 올려다봤다.
"내부 상황은 거의 알려진 게 없어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봤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눈이 안 떨어졌다.
"들어가면 밖으로 못 나와요. 클리어하거나, 죽거나."
***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S급.
뉴스에서나 듣던 등급이었다.
일반 던전 토벌 실패로 죽는 각성자가 매년 나온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S급은 그 이야기가 다른 층위에서 벌어지는 곳이었다.
뉴스 자막 아래 흐르던 사망자 수, 그 숫자 뒤에 붙는 등급이 늘 S였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저한테 왜..."
"물약이 필요하니까요."
그녀는 담백하게 말했다.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양으로."
"얼마나요."
"상급 회복포션 삼백. 해독제 백오십. 그리고..."
그녀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정지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존재하지도 않는 촉매 하나."
"네?"
"용의 숨결에도 안 녹는 병. 그런 게 필요해요."
나는 그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조건이었다.
용의 숨결에 안 녹는 병이라니, 그럼 나보고 드래곤 애프터케어 상품이라도 만들라는 건가.
머릿속에서 게임 아이템창이 잠깐 스쳤다, 전설급 재료 미보유.
그런데 그녀 눈빛은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세요."
"진심이 아니면 이 시간에 여기 왜 왔겠어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삼백 병이라는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려봤다.
한 병에 응결만 사십 분.
삼백 병이면 이만 분.
하루 이십사 시간을 다 부어도 이 주 넘게 걸릴 계산이었다.
지금 밀려 있는 다른 주문은 논외로 치고.
손가락으로 허공에 숫자를 짚어가며 계산하는 나를, 그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같기도 했고, 시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 혼자서는..."
"알아요. 그러니까."
그녀가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입꼬리만 아주 조금.
그 미소가 왠지 더 무서웠다.
"길드로 오세요."
그 말이 방 안에 툭 떨어졌다.
***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목 뒤가 서늘해졌다.
길드로 오라니.
그건 지금까지 수십 번 들었던 스카웃 제안과 다른 무게였다.
메일함에 쌓여 있는 스카웃 제안서들은 다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귀하의 실력을 눈여겨보았습니다로.
그런데 이건 문장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문 앞까지 걸어와서 던진 말이었다.
"거절할게요."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삼 년간 훈련된 반사신경, 이라고 해야 하나.
누가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 할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유는 안 물을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하나만 확인하고 싶어요."
"뭘요."
"이 던전, 만약 실패하면 우리 애들 중 절반은 안 돌아와요."
그녀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담담함이 아니라, 눌러 참는 무언가.
그 감정의 결이 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무게는 느껴졌다.
"제가 지금까지 산 포션들. 그거 없었으면 그 절반이 벌써 몇 번은 죽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내가 만든 물약이 누군가의 목숨줄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동안 숫자로만 계산해왔다.
주문량, 납기일, 단가.
그 뒤에 실제로 숨을 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렇게 정면으로 들이민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거절해도 돼요. 근데 오늘 밤은 생각 좀 해봐요."
그녀가 명함을 하나 꺼내 조합대 위에 올려놨다.
금속 재질에 각인된 길드 문양, 그 아래 개인 연락처.
숫자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연락 기다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구두 굽 소리가 다시 다각, 다각, 문 밖으로 멀어졌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명함 위 문양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반짝, 반짝 흔들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명함을 집어 들었다.
금속이 손잡이보다 더 차가웠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그 두 글자가 이렇게 무겁게 들릴 줄은 몰랐다.
나는 명함을 조합대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아직 끓고 있는 촉매를 그대로 둔 채, 오랫동안 명함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등급란에 가려졌던 그 두 글자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