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로부터 한 달 사이, 이씨 상단은 눈에 띄게 몸집이 커졌다.
체감으로도 확 느껴질 정도였다.
창고에 쌓이는 곡물 자루 수가 늘어났고, 마당을 드나드는 짐꾼들 숫자도 배로 늘었다.
'……이러다 우리 집이 무슨 대형 물류센터라도 되는 거 아닌가.'
아버지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겸아, 이번 달 순이익만 벌써 지난달의 두 배다!" 아버지가 장부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면서 장부를 내 코앞까지 들이미시는데, 마치 성적표를 자랑하는 초등학생 같았다.
"기뻐하시는 건 좋은데, 그 두 배가 어디서 왔는지도 봐야죠." 나는 슬쩍 딴지를 걸었다.
'아버지, 매출이 오르는 거랑 왜 오르는지 아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요.'
박수복이 정리해온 거래처 명단을 다시 훑어보니, 이번엔 좀 더 다양한 곳에서 거래 제안이 들어와 있었다.
동래국 쪽 곡물상, 심지어 서라국 상단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게 눈에 띄었다.
개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규모가 짐작되는 대형 상단도 섞여 있었다.
'……내가 소과 하나 붙었다고 이렇게까지 판이 커진다고?'
차라리 로또에 당첨된 거라면 이해가 갔을 텐데, 이건 성적으로 로또에 당첨된 셈이었다.
"이겸 도련님,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수복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래국 상단이 갑자기 우리 쪽에 관심을 가지는 게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명단 중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쪽은 원래 평민 상단하고는 거래도 안 하던 곳입니다."
"지역 소과 신기록이라는 소문이 벌써 국경을 넘었나 보네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무슨 SNS급이네.'
조달구 아저씨가 그 무렵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숨도 제대로 고르지 않고 마당에 들어서는 걸 보니, 뭔가 급한 얘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겸아, 요즘 시장 바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조달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각 서원에서 사람을 보내서 네 답안지 사본을 구하려고 한다는 소리도 들었어."
"답안지 사본을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거 그냥 시험지인데. 뭐 대단한 유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래. 유가 명륜서원 쪽에서도 관심 있어 하고, 심지어 음양가 오행서원 쪽에서도 물어봤다더라." 조달구가 심각하게 말했다.
"거기다 법가 형정서원 쪽 사람 하나는 아예 저잣거리 서점상들한테 돈까지 뿌리고 다녔다는 소리도 있고."
[상태 변화: 지역 유명 인사 → 5국 서원 관심 인물]
그 문장이 뜨는 순간, 나는 진짜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까지는 그냥 지역에서 좀 유명한 소년 정도였는데, 이제는 5국 서원 전체가 주목하는 위치로 슬쩍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이거, 게임으로 치면 갑자기 랭킹 서버에 이름이 뜬 느낌인데.'
그것도 로컬 서버가 아니라 전 서버 통합 랭킹 1페이지에.
'심지어 길드들이 스카우트 제안 넣기 시작한 느낌이잖아.'
"아저씨, 그럼 저는 이제 서원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는 뜻이겠네요." 나는 물었다.
"그렇지. 보통 소과 붙고 반년 안에 서원 시험을 봐야 하니까." 조달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냥 시험이 아니야. 서원마다 자기 쪽으로 데려가려고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리도 있다."
'……내가 뭐 트레이드 마감 시즌 FA 선수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네.'
나는 그날부터 다시 데이터 작업에 몰두했다.
이천오백여 명의 관료 정보를 다시 꺼내 들었다.
각 서원 출신들의 승진 경로, 나이대별 관직 도달률, 심지어 각 서원 스승들의 정치적 성향까지 다 정리해나갔다.
방바닥에는 어느새 종이 뭉치가 산처럼 쌓였고, 박수복이 그걸 보며 "도련님, 이러다 방이 서원 자료실이 되겠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할 정도였다.
'유가 명륜서원은 안정적이지만 최근 남도현이라는 사람 때문에 힘이 빠지고 있고.'
전통 있는 명문가 자제들이 몰리는 곳이지만, 요즘은 예전 같은 위세가 아니었다.
'법가 형정서원은 실무 능력을 중시하지만 파벌 싸움이 심하고.'
실무 하나는 확실히 쳐주는데, 들어가면 내부 정치싸움에 휘말릴 각오를 해야 했다.
'묵가 겸애서원은 평민 출신에게 우호적이지만 국가 요직에는 잘 못 올라가고.'
문턱은 낮은데 천장도 낮은, 딱 그런 곳이었다.
'도가 청허서원은 아예 관직에 관심이 없고.'
여기는 아예 후보에서 제외해야 했다. 관직 나가려는 사람이 은둔형 서원에 들어가는 건 배달 앱 켜놓고 굶는 꼴이었다.
'음양가 오행서원은 지금 남도현이 실세인데, 유가 쪽을 눌러가며 세력을 넓히고 있고.'
가장 화력이 센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계단식으로 조건을 늘어놓다 보니 답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각 서원마다 장단점이 명확했고, 특히 음양가 쪽은 지금 세력이 강하지만 남도현이라는 인물과 정면으로 부딪힐 가능성이 컸다.
'……이건 뭐 최종 보스 옆에 취업하는 느낌이잖아.'
승률은 높은데 대신 보스 눈치를 매일 봐야 하는 자리라고 해야 할까.
"이겸 도련님, 뭔가 어려운 표정이십니다." 박수복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는 옆에 앉아 내가 정리한 자료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다 도련님이 직접 조사하신 겁니까? 이거 하나만 정리해도 몇 달은 걸릴 분량인데."
"서원을 고르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네요."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수능 배치표 보는 것보다 백 배는 복잡하다니까요, 아저씨.'
그날 저녁, 아버지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표정이 평소보다 한층 밝아 보였다.
"겸아, 상단 자금이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만 냥 구멍은 완전히 메웠고, 오히려 남는 돈이 생겼어."
[자금 안정화 완료: 상단 순자산 대폭 상승]
드디어 저 문장을 보게 됐다.
'……일단 이 부분은 해결이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이만 냥 구멍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걸 생각하면, 이건 거의 감격스러운 수준이었다.
뇌물로 생긴 구멍은 화제성과 신용도 상승으로 메워졌고, 이제는 오히려 든든한 자금이 뒤에 생긴 셈이었다.
'적자로 시작해서 흑자로 끝나는 이야기, 이거 완전 성공 신화 다큐 각인데.'
"이 돈으로 뭘 하면 좋겠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는 게, 마치 이번엔 또 무슨 재밌는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서원 시험을 준비할 사설 학당을 하나 차리는 게 어떨까요." 나는 제안했다.
"조달구 아저씨나 박수복 아저씨 같은 분들을 데려다 정보망도 겸비하고요."
겸사겸사 학당 명목으로 정보 수집소도 하나 만들어두면, 앞으로 서원 쪽 동향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을 거였다.
'학원 차리면서 학원 정보망도 같이 얻는 거, 이거 완전 일타쌍피 아닌가.'
"허허,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아버지가 반색했다.
"그럼 당장 자리부터 봐야겠다. 내가 아는 목재상한테 물어보마!"
아버지는 벌써부터 신이 나서 뭔가를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작은 거점이지만, 이제는 정보와 자금 두 축을 다 확보한 셈이었다.
'이 정도면 서원 선택도 좀 더 유리하게 준비할 수 있겠네.'
불과 몇 달 전까지 이만 냥 빚 걱정하던 놈이 이제는 학당 차릴 궁리를 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사람 일이란 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조달구 아저씨가 급하게 다시 찾아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부터 평소와 달랐다.
"이겸아, 방금 시장에서 들은 얘긴데." 조달구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숨소리가 거친 걸 보니 여기까지 뛰어온 게 분명했다.
"남도현이라는 그 구경이, 이번에 지방 서원 선발 규정을 바꾸는 상소를 올렸다는 소리가 있어."
"규정을 바꾼다고요?" 나는 되물었다.
'……벌써? 아직 서원 시험 신청도 안 했는데.'
"그래. 소문으로는 상인가 출신 응시자에 대한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자는 내용이라던데." 조달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목은 '공정한 선발을 위한 심사 강화'라고 하는데, 시기가 하필 딱 지금이라 다들 이상하게 보고 있다."
[경고: 남도현, 상인가 출신 응시자 규제 상소 제출]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히 관심을 가지는 수준이 아니라, 벌써 견제하기 시작한 거잖아.'
소과 신기록 하나로 시작된 화제가, 이제는 5국의 실세 구경 한 명의 정책까지 흔들고 있었다.
'상인가 자식이 서원 시험 볼까 봐 아예 법을 손보겠다는 거잖아, 이거.'
게임으로 치면 신규 유저가 조금 잘한다고 밸런스 패치 예고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그 패치안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하나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까지 모은 데이터로도 이 상소가 정확히 언제, 어떤 조항으로 통과될지는 알 수 없었다.
박수복도, 조달구도, 심지어 아버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앞으로 서원 선택의 문이, 나 하나 때문에 훨씬 더 좁아질 참이었다.
'……이거 진짜, 안 그래도 좁은 문을 내 손으로 더 좁혀놓은 셈이잖아.'
조달구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이 일이 단순한 소문 수준이 아니라는 게 더욱 실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