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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회의실로 되돌아온 문세영이 다시 발언권을 요청하며 손을 들었을 때, 박 상무는 이미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는데, 그 태연함 속에는 이미 상황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확신이 짙게 배어 있었고, 그 확신은 오랜 세월 이런 식의 회의를 수백 번쯤 주도해온 자의 익숙한 관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문 대리, 절차는 절차입니다. C급 다이버의 참고인 발언은 위원회 규정 제17조 3항에 의해 정식 증언으로 채택될 수 없어요." 박 상무가 그렇게 말하며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는 동작에는 이미 결론이 정해졌다는 무언의 신호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을 놓칠 만큼 둔한 사람은 이 회의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건 규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신 거잖아요!" "편의적이라니, 규정은 규정입니다." 박 상무는 서류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른 위원들을 둘러보았는데, 몇몇은 이미 그의 편을 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 고갯짓 하나하나가 마치 사전에 약속된 듯 정확한 박자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문세영은 이 자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조율되어 있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이대로는 정말 끝나겠군.' 문세영은 그 압도적인 침묵의 벽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 애써 주먹을 쥐었고, 그 주먹 안에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통증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진우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는데, 이는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오래도록 억눌러온 어떤 감정이 조금씩 표면 위로 밀려 올라오는 감각이었고, 그 감각은 마치 오래 잠들어 있던 짐승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 것과도 비슷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회의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는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단 한 번도 문세영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안건 자체를 폐기하는 걸로 정리하겠습니다." 박 상무가 서기에게 손짓하며 그렇게 마무리 짓으려는 순간, 서기가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는 손을 뻗던 그 짧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문세영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만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 위원회는 정말로 다이버들의 생존율을 신경 쓰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예산과 인맥만 신경 쓰고 있는 겁니까?" 회의실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는데, 그 질문은 사실상 위원회 전체, 특히 박 상무 개인의 도덕성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고, 몇몇 위원들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뚜렷하게 스쳤으며, 누군가는 서류철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고, 또 누군가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옆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했다. "문 대리, 발언 조심하시죠." 박 상무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처음으로 진짜 위협적인 어조를 띠었는데, 그것은 더 이상 관료적인 여유가 아니라 명백한 경고였고, 그 경고 안에는 지금까지 그가 이 자리에서 쌓아온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완고함이 배어 있었다. "조심해야 할 건 제가 아니라 이 위원회 아닌가요?" 문세영은 물러서지 않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고, 강진우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서도 그녀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를 새삼 되새겼다. '저 아이는 언제부터 저렇게 강해진 걸까.' 강진우의 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쳤는데, 동시에 그 단단함이 지금 이 순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런 태도로는 협회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박 상무가 낮게 흘린 그 한마디에는 명백한 협박의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회의실에 있던 다른 관료들도 그 말의 무게를 알아차렸는지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아예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에만 집중하는 척하며 이 대립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이 사람, 정말로 세영이를 밀어낼 생각이군.' 강진우는 그 순간 손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이는 오래도록 억눌러온 보호 본능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감각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무관심이라는 방벽에 처음으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팔짱을 풀었다. 그 작은 동작 하나가, 무의식중에 회의실 공기의 흐름을 미세하게 바꾸어놓았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던 누구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 위원회는 오래전부터 이런 식이었습니다. 문 대리도 이제 그만 인정하시죠." 박 상무가 덧붙인 그 말에는 은근한 조롱이 섞여 있었는데, 그것은 문세영뿐 아니라 그녀와 같은 처지의 다이버들 전체를 향한 조롱이기도 했다. "인정할 게 아니라 바꿔야 할 문제 아닌가요." 문세영이 곧바로 되받아쳤지만, 그녀의 목소리 끝은 아까보다 조금 더 갈라져 있었다. "그렇게 위협하실 필요까진 없어 보이는데요." 강진우가 낮게 입을 열자 회의실 안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쏠렸는데, 박 상무는 그를 향해 비웃음 섞인 눈길을 던지며 대꾸했다. "참고인은 발언권이 없다고 이미 정리됐는데, 아직도 모르십니까?" "발언권이 없으면, 그냥 구경만 하라는 뜻인가." 강진우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눈치챈 문세영이 슬쩍 그를 돌아보았는데, 평소 무기력하고 무심하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어떤 단단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고, 그 무게감은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스승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이 저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걸 처음 들어.' 문세영의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불안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뭐라구요?" 박 상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강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동작 하나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지는 것을 여러 위원들이 동시에 느꼈고,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살짝 밀어냈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며 나는 작은 마찰음이, 유난히도 크게 회의실 안을 울렸다. 끄으윽··· 그 소리가 오히려 긴장을 더 팽팽하게 조여왔다. '여기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박 상무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강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눈빛 속에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수많은 다이버들과 협회 관계자들을 상대해오며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불편함이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강진우 씨." 박 상무가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물었는데, 그 질문 속에는 이미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당신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 목숨을 숫자로만 취급한다면." 강진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회의실 구석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졌는데, 그 담담한 어조 속에는 이제껏 그가 숨기고 살아온 어떤 힘의 그림자가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지." 그가 그렇게 말을 맺는 순간, 회의실 안의 조명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듯한 착시가 일었는데, 그것이 실제 조명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의 전조인지 아무도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스으으윽··· 그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미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형광등 불빛이 만든 평범한 음영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회의실 바닥을 조용히 잠식해 들어가는 낯선 움직임이었다. 스으으윽, 스으윽··· 그림자는 처음엔 강진우의 발밑에서만 작게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점점 그 경계를 넓혀가며 테이블 다리를 타고 스며들었고, 그 속도는 느렸지만 멈추지 않는 잠식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가장 먼저 그것을 눈치챈 젊은 위원 하나가 의자를 뒤로 밀며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에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선 순수한 공포가 배어 있었고, 다른 이들도 뒤늦게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하나둘씩 얼어붙은 표정으로 숨을 삼켰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았고, 또 누군가는 옆자리 동료의 팔을 무의식적으로 붙잡았다. 박 상무 역시 그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며 처음으로 표정을 굳혔는데, 그것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상대의 진짜 정체를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에서 오는 서늘함이었다. '이게 대체... C급 다이버의 스승이라는 자가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박 상무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그가 강진우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들이 순식간에 재조립되기 시작했는데, 무기력하고 별다른 이력도 없어 보이던 은퇴한 다이버라는 평판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 앞에서 얼마나 허술한 껍데기였는지를 그는 뒤늦게야 실감하고 있었다. '선생님···' 문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는데,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짐작했던 스승의 진짜 힘이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그것도 가장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고, 그 두근거림은 두려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림자는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촤아아아악··· 바닥을 타고 넘실거리던 어둠의 결이 마침내 회의 테이블의 절반을 넘어서자, 위원들 중 한 명이 낮게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 뒷걸음질조차도 그림자의 속도를 앞서지 못했다. 강진우는 회의실 전체를 뒤덮어가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참아온 무언가가 마침내 풀려나는 순간의, 서늘하고도 위태로운 미소였다. "자, 그럼." 그가 낮게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는데, 그 말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회의실 안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채, 그림자는 여전히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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